단풍을 밟으러 가볼까, 헌책방에 들려볼까, 몇개월만에 찾아 온 토요일 오후의 시간 행복해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는 책상 한켠 따로 빼 놓았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고서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책을 읽으며 보내자고.. 그러고는 옥탑방 침대에서 울다가 멈추다가 다시 또 울다가 멈추다가, 껄껄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보니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평소에 질질 짜게될 것 같은 무언가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글쎄, 언제부터 내가 우는것이 싫었다. 내 사정거리 안의 일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는것을 제외하고는, 내 무언가의 행위로 인해 눈물이 나게 하는 것, 그것 만큼은 허락하고 싶지가 않다. 책을 몇장 넘기지 않았는데 가슴에서 복부까지 학창시절 시험을 칠 때나 나타나는 증상이 계속 이어졌다. 가슴과 배쪽이 자꾸만 오글거렸다 나아지고 오글거렸다 나아지고, 그런데 참 희안한게 페이지를 계속 넘기고 있었다.

의사라는 사람, 병원이라는 곳, 그곳을 찾는 환자들, 환자들의 사연, 삶과 죽음. 거의 매일 아침 라디오를 통해 짧막한 헤드라인 뉴스를 전해 듣는다. 뉴스에는 굿보다는 배드가 늘상 꽉 차있다. 그 중에는 오늘 누가 죽었다, 이것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참으로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기에 단순히 그냥 '죽었다'에서 몰인정하게 흘려 넘겼던 나를 책을 읽으며 새삼 발견한다. 한참 사춘기일때 동생을 잃었었다. 그때 그일 이후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음에 대한 사고 소식이 전해져 오면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는 했다. 그런데 참 사람이라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또 망각의 동물이 아니기도 한 것 같다.

책에 나온 사연속에 만난 사람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였던 시간, 그리고 그 사투를 함께했던 가족을 보면서 나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나보다. 그것은 내가 어떤 책에서 말하는 고통의 공장이란 것을 지어놓고 그 옛날의 있었던 일을 끄집어 내어 고통의 재생을 반복해서가 아니라, 그들앞에 놓여진 처참한 상황 속에서 그들과 함께 그 고통을 나누는 사람과 사랑이 내 마음을 적셨기 때문이다.

이 책 안의 사연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개 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불우한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부유한 사람에게 가혹한 일이 있어야한다는 뉘앙스는 아니지만, 왜 꼭 그들이어야 하는가.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통중에 상대적 박탈감이 그 하나일 것이다. 내가 결코 다른 사람보다 부유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가난하게 느껴지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박탈감 같은 것. 많은 환자를 통해 다시금 느낀다. 상대적 박탈감은 경제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니라, 가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진정 가난함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 또 다른 이들은 매일 아침 일용직 노동 집합소에 대기를 하고 있는 중에도 매일같이 웃음을 짓는다.

자기것을 내어 고마움을 전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들은 나보다 부자였다. 울고 웃었던 시간속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지금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의 삶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끼며 나를 되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