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한국 칙릿 작가는 계보로 정리할 때 정이현- 백영옥- 서유미 순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얼마전 주문한 이지민(필명 이지형)까지. 물론 작품을 읽은 순서와 동일하지만 그들의 출현도 역시 이러한 순서인 듯 하다. 이지민은 2000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했으니 물론 저 중간에 끼겠지만 작품을 아직 읽지 못한 이유로 아직까지 맘속에선 뭐라 판단 내리지 못한 어정쩡한 인물이다.

 정이현보다 더 톡톡튀는 발랄함에 '어, 요거바라' 했던 백영옥에 비하면 서유미는 유순하다. 칙릿이 여성들의 수다처럼 유난스럽다고는 해도 그 안에도 차분함과 좀더 들이대는 분위기는 조금씩 틀릴테니. 요즘 칙릿에 빠져 연달아 계속 여성 작가들의 수다스런 이야기들을 접하게 돼는데 분명 그안에 내가 알지 못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개미지옥과 쿨하게 한걸음을 동시에 사서 번갈아 읽으면서 서유미라는 작가 역시 나의 흐믓한 작가명단에 올려진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판타스틱 개미지옥보다 한걸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쿨하게 한걸음은 인쇄시점이 판타스틱보다 좀더 후 이긴 하다. 둘다 2007년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긴 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출품시기가 달랐다고는 해도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쿨하게 한걸음이 좀더 나중이 아닐까 추측되어 진다.

 쿨하게 한걸음은 개미지옥보다 조금더 인간 내면의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느낌에서 자연스럽고 깊이있게 파고드는 것 같다. 그런데 동남의 죽음. 잘 모르겠다. 그부분은 좀 어색하달까 너무 급작스러운 느낌이 들긴 했다. 어떤 공식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기 승 전 결에 맞추고 최고조에 누군가의 죽음을 배치시켜 극에 달한 후 다시 삶이 회복되고 진정되면 결국 그렇게 마무리 되는. 그래도 중요한 건 안정감. 안정적인 구성 안에 나름대로 재치있고 발랄한 표현들. 작가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모습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 팔랑대며 폴짝폴짝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장과 단어들을 거침없이 툭툭 던지는 그런 정이현이나 백영옥식 칙릿이 아닌, 중심을 어느정도 잡고 잔잔한 미소로 자근자근 읇조리는 그러면서 여성적 수다스런 스타일을 잃지않는. 전체적인 레이아웃이 안정되있다. 무엇보다 두권의 책에서 느껴지는 서유미 특유의 개인적 심리묘사. 이것은 정이현 백영옥과 닮은듯 틀리고 비슷한듯 독특하다.

어쩌면 지루할수도 있을 법한 상황묘사, 심리묘사들은 잠시 시간과 이야기의 흐름을 정지시켜놓지만 잠시 멈춤상태의 화면을 뒤로하고 차분히 하나씩 짚어가며 주변과 현재 시점의 부분들을 어루만진다. 그 섬세한 재미가 결코 지루하거나 지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템포에 맞춰 같이 차분하게 한 걸음씩 나갈 수 있게 한다. 그 속도감이 어색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흡입력이다.

 쿨하면서 차분히 한걸음씩,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성큼 진행되고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보다는 조금 더 깊은 관찰과 새롭고 신선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일상 속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엮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전체적 주제와 맞물리게 하는 능력 역시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