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정이현이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에서 풍기는 느낌이 다분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톡톡튀는 문장과 시대의 트랜드를 읽어내는 감각과 센스가 그렇다. 수많은 시대적 상황과 명품이 등장하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주로 강남적인)문화가 이야기의 전반적 배경에 깔린다. 무엇보다 한국을 배경으로 출판된 한국적 칙릿(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중에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이면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정이현은 자전적소설 <삼풍백화점>에서 강남에서자라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광경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했고 백영옥은 압구정동 토박이인 주인공이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한 뒤 심한 트라우마와 정신적 방황을 하게되는 배경을 이야기의 전반적 기본 상황의 소재로 삼았다. 게다가 톡톡튀고 도도하며 도시형 여성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문장이 어찌나 정이현의 문체와 흡사한지. 다만 문득문득 뭔가 2% 부족함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렇게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느낌이 오히려 둔탁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묘한 매력이 있다.

 어느 한가지를 고집하지않고 서로의 취향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각각 스타일의 존중성을 표방하는 작가의 의도도 그럴듯 하고 무엇보다 기본적인 갈등상황을 흥미로운 소재와 적당히 어우러지게 하는 구성력이 초보작가치고 만만치 않다. 사진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깍쟁이 같은 모습으로 미루어볼때 글도 겉멋에 지나치지않을까 했던 우려는 일단 편견이었다고 고백하고싶다.

 정이현의 글보다 미흡했던점은 좀더 타이트하게 조여지는 깔끔한 플롯의 전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들게 했던 점은(개인적인 흥미였지만)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전문적인 패션용어들, 여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실제 명품들의 목록들, 그리고 수없이 등장하는 식당이나 거리, 지역의 실제 지명들이었다. (이정도로 상품이나 지명이 실명으로 많이 등장하는 소설은 전에 보지 못했다. 그 점이 더 특이하고 새로운 느낌을 증가시킨다)  상상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삶 바로 그곳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좀더 집중력을 높이고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칙릿이라고 하면 여자들의 허황된 사랑이야기나 허영의 판타지를 상업적인 부분에서 교묘히 조화시켜 심리적 보상을 통한 만족감을 그리려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분명 소녀취향의 허황한 로맨스 소설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역시 복선과 갈등 그리고 위기의 해결과정이다. 월트디즈니의 가족드라마가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것은 쉽고 안정되면서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하는 일괄적인 스토리라인이 정서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뻔한 구성은 아무래도 성인들에겐는 지루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칙릿은 아동물이나 로맨스문고본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심리적 갈등이 있는 것이다. 여성의 수다를 풀어 나가듯 가볍게 쓴 소설이라고해서 그야말로 너무 가볍게 볼수는 없는 것이다. 칙릿의 의미는 무엇보다 여성성이다. 여성의 취향과 심리세계, 그들만의 상상, 고민, 방황을 이야기하는 것. 그런데 남성만의 세계를 말하는 특화된 용어의 소설은 없는지 문득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