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신인상이었나? 당시 마흔의 나이였던 그의 첫 데뷔작 ’프랭크와 나’는 솔직히 문학적이라기 보다는 스토리텔링에 가까웠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는 시나리오 작가였으므로.  솔직히 그 작품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물론 재미는 있지만 이런류의 작품이 문예지 신인상에 당선이라니.(물론 나는 '프랭크와 나' 류의 소설을 다른 한국 소설들 보다 더 좋아한다. 단지 문예지 당선 풍토에 비추어 볼 때 의외였다는...) 하지만 그는 나의 쓸데없는 기우를 말끔히 씻어준다.  다음해 같은 문예지에 장편을 응모해 다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래’ . 이 작품에서 좀더 깊고 무거워진 그의 작품세계를 만나게 된다. (심사위원 전원 찬성으로 당선된것이 단편 '프랭크와 나'였는지 장편'고래'였는지 헤깔린다)

 전직 시나리오 작가가 쓴 소설은 스토리에 강하다. 그야말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쉽게 철학을 드러내거나 사색에 잠기는 일을 삼간다. 중의적 숨은 의미는 독자가 알아내거나 발견할 몫이고, 그런게 있거나 말거나, 일단 독자는 그냥 이야기를 즐겁게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가 그랬고 신데렐라가 그랬고 오즈의 마법사, 오헨리의 단편들, 로알드 달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문득 단문인 그녀만의 독특한 문체로 꼬물꼬물 작은 이야기들을 툭툭 단백하게 뱉어내는 작가 ’윤성희’가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특징도 라면처럼 꼬인, 끊임없는 이야기의 연쇄반응 처럼 연결되는 작품인데... )

 스토리텔링이 강하려면 재미가 있어야한다. 동네 아저씨 아줌마 사랑방에 모아놓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할때,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다음 대목을 기대하게 만들려면 재미가 있어야한다. 흥미로운 배경과 개성있는 등장인물, 그리고 약간의 복선과 위기와 무엇보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화끈한 반전. 여기에 더해 작가 ’천명관’은 그 만의 무기가 있다. ’유쾌한 위트’. 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그는 독자를 유쾌하게 희롱하고 독자는 기꺼히 즐거움에 동참한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그의 단편 ’프랭크와 나’를 닮았다. 장편’고래’에서 다소 무거운 깊이를 느꼈다면 이번엔 즐겁고 가벼운 반전위주의 이야기들이다. 앞서 말했듯 ’오헨리’나 ’로알드 달’의 이야기를 닮았다. (개인적으로 로알드 달은 기복이 심해서 모든 단편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천명관의 이야기는 사람을 붕 뜨게 하는 묘한 매력이있다. 슬금슬금 그의 손을 잡고 낮선길을 따라가다 어느새 혼자 익숙한 길인양 달려가게 된다. 그리고 막바지에 끝이없는 절벽으로 뛰어내리지만 번지점프처럼 반전이라는 끈이 나를 하늘로 튀어오르게 만든다. 그때 느끼는 바람에 스치는 상쾌함이란.

 더 멀리뛰기 위해서 몸을 움추리듯 그의 작품은 반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뛰는 한마리 개구리 같다. 시작부터 반전 하나만을 노려보며 한참을 움추린다. 우린 계속 궁금하다. 마침내 튀어오르는 개구리의 등위에서 롤러코스터를 맛본다. 그것이 ’유쾌한 반전 마리사’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