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으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더니 그 내용은 내 마음을 움직이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PAPER’란 잡지를 딱 한 권 갖고 있었다. 직접 구입한 것인지, 선물을 받은 것인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잡지의 제목과 그 안에 편집자의 글을 따로 복사해서 갖고 있던 기억은 확실하다. 굳이 이런 인연(?)을 언급하는 것은 저자의 글과 내 추억의 감정이 서로 맞닿아 있음을 정말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연 이 글의 내용을 다 경험하고 썼을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한 편의 글도 쓰기 힘들었을 텐데 사랑의 감정을 어찌 그리 감성적으로 잘 풀어내는지 내 감정을 추스르느라 힘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더욱 고양시키는 글과 함께 하는 사진들. 글의 감성을 뛰어 넘지 않을 만큼의 조화가 돋보였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접하며 내게 능력만 있다면 다른 언어로 번역을 해서 소개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을 알아채고는 스스로 깜작 놀랄 정도였다. 중년의 나이를 맞은 지도 꽤 오래된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동요시키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편의 글이 울림이 크지만 그 중 ‘내가 잠깐 움켜쥐었던’이란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

 

“나를 위해 망설일 필요 없다

너의 마음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고

비는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는

서둘러 과거로 보내야 하는 것

 

내가 잠깐 움켜쥐었던

작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사랑

그것으로 나는 오늘 나의 마음을 부순다”

 

덧붙여 ‘그대 뒤에 또 그대’ 란 글의 일부이다.

 

“나무 뒤에 나무

바람 뒤에 바람

그대 뒤에 또 그대

수많은 그대와 이별을 하고

수많은 그대를 다시 만납니다

찾아 헤매인 어느 길 하나

그대 아닌 것이 없었으니

이제 여기서 죽었다 태어나도 괜찮겠습니다”

 

책이 묻고 있다. 지워지는 것도 사랑이냐고. 과거의 어느 사랑이 훗날 기억에서는 설령 지워진다해도 내 무의식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지워지는, 사랑, 황경신, 김원, 소담출판사, 북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