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느 특강에서 ‘사람은 단 한명도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 대부분 이런 이야기는 활자화되어 책의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여기 활자화된 책이 아니라 직접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이 있다. 바로 런던의 ‘리빙 라이브러리’가 그곳이다.

이 책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는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 영국의 어느 특별한 도서관인 ‘리빙 라이브러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 책을 대여하여 30분 동안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물론 질문도 가능하다. 책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리고 조금은 특별하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란 얘기다. 이 사람 책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조금은 특별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다시 말하면 편견을 갖고 있거나 가질 수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구비하고 있는 책이다.

그럼 잠깐 ‘리빙 라이브러리’만의 도서 목록을 대강 살펴보자. 싱글맘, 예순 살의 가출 인생, 레즈비언, 우울증 환자, 신체 기증인, 휴머니스트, 완전 채식주의자, 정신분열증 환자, 트랜스젠더. 자~~ 이만하면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은 대여하고 싶을 정도로 궁금증이 일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 책만의 특징은 바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묻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사실 묻기 껄끄러웠던 그런 질문들을 사람 책들은 더 환영한다.- 상관없이 물을 수 있다.

대여자가 궁금한 것을 물으면 사람 책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성의껏 대답해 준다. 솔직한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대여자는 어느새 사람 책에-그리고 그런 종류의 사람들-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나 선입견이 줄어들어 있다. 이것이 이 ‘리빙 라이브러리’를 최초로 기획한 로니가 바라는 결과이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였다.’(p.9)  

비록 직접 내가 사람 책을 대여해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나 또한 내 선입견이 얼마나 컸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런 선입견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취해보는 것. 그리 큰 노력이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거의 행하지 않는다. 왜일까? 곰곰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개개인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고, 한 사람, 한 개인의 의사와 결정을 존중할 때 우리 사회는 훨씬 긍정적인 사회가 된다.’(p.187)고 저자는 믿는다고 한다. 나 또한 믿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고 또 인정받는 것. 자신의 의견이 소중하듯 타인의 의견도 경청하는 마음가짐. 열린 마음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하나 있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 열한살짜리 친구들 4명이 함께 레즈비언인 사람 책을 대여하여 이것저것 물어보고 함께 걱정해주는 모습이 그것이다. 자신들과 다른 친구를 왕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걱정을 나누는 어린 친구들의 모습. 이런 친구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내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니, 너의 생각과 마음은 어느 정도 열려있니, 라고. 묻긴 물었는데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이상 이 넓고 다양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나만의 손해임을 새삼 깨닫고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가짐을 리셋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런던에 사는 사람 책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영국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이 책 곳곳에 실린 좋은 명언과 영국인에 관한 재치있는 글귀는 덤이다. 영국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사진 또한 눈을 즐겁게 해준다. 여기 영국인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짧은 글 하나로 리뷰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 이건 영국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최고의 상식이다._ 바텐 포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