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구현(社會正義具現)’과 ‘정의사회구현(正義社會具現)’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각각 검색해보니 1980년 4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社會正義구현 國民 운동 金泳三총재 新民중심 民主勢力단합’이란 제호의 기사와 같은 해 10월 11일 매일경제에 실린 ‘正義社會具現위한 大決斷 公職者 財産登錄 실시계획을 보고’라는 제호의 기사가 눈에 띈다. 이렇게 보면 큰 차이가 있을 법 한데 그해 1980년(최규하 대통령 당시)까지는 정부 여당 역시 크게 차이를 두어 생각진 않은 것 같다. 같은 해 6월 13일 동아일보에 ‘道義政治 ․ 社會正義 구현목표「國家紀綱확립」具體化작업’과 제호의 기사가 실린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뚜렷한 차이를 내보이게 된 건 이듬해인 1981년, 전두환(전두환의 등장은 다시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YH여공들의 마포의 신민당사에서의 농성과 폭력진압, 김영삼 총재직 정지와 의원직 제명에 이은 10월 부마민중항쟁, 계엄선포..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극에 달한 한편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 10월 26일 김재규 총탄에 박정희가 죽어 유신체제는 무너졌지만 빌미삼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전두환이 들어앉으면서 신군부 세력의 집권에 길을 튼 것임. 이후 전두환 등은 육군참모총장이자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를 연행하기로 결정, 12월 12일 행동에 옮기며 신군부 세력이 실권을 쥐게 됨)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경찰서, 파출소 등을 비롯한 관공서에 내걸린 현판, 거기 큼지막한 글씨로 씌어있던 ‘정의 사회 구현’,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애당초 별개일 수 없는 걸 ‘정의 사회 구현’만을 제 기치로 내세워 뚜렷하게 구별 지었던 전두환, 정권의 성격을 드러내는 전조는 이미 앞서 언급한 제호의 기사들 그러니까 정부 여당이든 야당이든 ‘사회정의구현’을 사용하던 시기인 1980년, 4월 18일과 6월 13일 사이에 있었다. 그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두환과 기타 등등의 쿠션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같은 일들이 몇몇 직접적인 피해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저지른 자들만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건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가 저지른 일을 그 누군가 이외에는 아는 이가 없고 알려고 드는 이도 없다면, 만일 그 일들로 인해 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임에도 정작 그 일을 저지른 당사자인 그 누군가 외에 아는 이가 없다면 알려고 드는 이조차 없다면 그 누군가는 어떻게 할까?

이 때문이다. 바로 알고 바로 알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드러내주는 바른 역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사실을 사실 그대로 판단할 줄 아는 눈과 귀, 머리가 있는 역사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폭정에 굴복하고 권력에 아첨하느라 사관(史官)이 사관(史觀)을 왜곡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관(史觀/史官)이 바를 때 발분(發憤)은 개인을 초월한 공분(公憤)의 여론이 되어 제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여론의 바른 판단아래에서야 비로소 그릇된 일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관(史官)은 개인의 비극과 울분을 넘어 그 같은 왜곡이 초래할 엄청난 비극을 막아야 하는 사명을 인식하는 자여야만 한다. 사관(史官)이 사실에 근거한 사관(史觀)을 뚜렷이 해야만 모든 것이 바로 잡힐 수 있고 바로 잡을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비극과 울분을 넘어서는 사관(史官)이야말로 ‘죽음을 태산보다 무겁게 여기는 자’일 것이다.

그러한 이를 하나 꼽을 수 있다면, 그가 곧 ‘사마천’일 것이다.

정의(正義)를 갈구(渴求)한다면서도 여전히 보신(保身)과 안위(安危)만을 생각하기 바쁜 이 때, 이 시대를 깨울 사표(師表)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찾아야만 할까.. 사람의 길이 책 속에 있다한들 들추어 보지 않으면, 읽고나서도 행함이 없으면 별무소용이리라. 미련한 위정자들의 지혜롭지 못한 처사로 참혹한 세월을 겪은 민중의 역사(歷史)를 보고도 발분(發憤)함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통찰(通察)은 결단코 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새겨본다. 비참이 끊이지 않는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표를, 그토록 필요로 하던 정의를 ‘사기(史記)’ 자체에서보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의 태도에서 찾게 될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P68)

따라서 이 책『완역 사기』는, 본기(本紀)만으로도 장장 15권이라는 대장정.. 실로 엄청난 작업이 아닐 수 없는 이 여정을, ‘보 임안 서(報 任安 書)’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를 배치하는 데서 시작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높이 평가할 만한 일 아닐까 생각한다. ‘사마천’이 죽기보다 수치스러운 궁형(宮刑)을 택하면서까지 ‘사기’ 저술에 매달렸던 이유, 그가 지난 일을 서술하여 후세 사람들이 보게 되길 바란 자신의 뜻(P72), 읽어주길 바란 그의 뜻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며 읽어나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P72)

구천인지제究天人之際,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성일가지언成一家之言

사마천의 역사 서술 방법과 목적 그리고 사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명구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총체적 활동과 그 변화를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역사가의 책무이며, 역사가는 이를 통하여 자신의 역사관을 표출하는 것이다.(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