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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란 감정은 되돌아볼 시간을 건너온 그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모든 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그리움이란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추억이란 단어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추억을 가진 자만이 그리움을 느낄 수 있고 그 추억이 단단하고 많을수록 그리움의 감정도 짙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20대나 30대의 그리움보다는 40대 이상의 그리움이 더 간절하고 진솔하며 애달프기까지 하다.

또한 그리움은 지금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가 싶다. 30,40년 사이 예전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바뀌어 버린 대한민국에서 더는 찾을 길 없는 것들에 대한 향수. 이러한 그리움은 그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마저 사라지면 영영 잊혀질지도 모른다. 사라지거나 잊힌 것들, 혹은 사소하고 당연해서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한 마음어린 회상. 그리움은 과거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움의 발견』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4명의 문인들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과 마음을 다루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기에 보통 사람들보다는 좀 더 감수성 깊은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40대에서 60대의 나이에 접어든 그들이 발견한 그리움은 역시나 좀 더 과거에 닿아 있고 좀 더 자연을 닮아 있다. 책장마다 사람 사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고 결코 인공적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있다.

소설가 오정희 씨의 그리움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60세를 넘긴 나이에 되짚어보는 지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특히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가 소소하고 정겨운 수다처럼 들린다. 그녀가 들려주는 어머니의 딸로서 딸의 어머니로서 느끼는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는 이 땅에 태어난 여인들이라면 공감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또한 30여 년을 써온 가계부와 그 세월동안 써온 글의 양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창작이 요구하는 공간과 일상이 요구하는 공간의 경계에 설정하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창작인과 생활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오정희 씨의 문학 세계는 현명한 조언이 아닌가 싶다.

딸은 나의 지나온 길, 과거이고 어머니는 내 앞에 놓인 길, 미래인 것이다. 문득문득 딸에게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또한 내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알아본다. - p.52

시인 곽재구 씨의 그리움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익숙한 그리움이다. 모스크바 여행 시 헌책방에서 만난 책을 팔러 온 노인의 모습에서 등록금으로 사고 싶었던 책을 사고 결국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다시 등록금을 내기 위해 산 값의 1/3의 가격에 책을 팔아야 했던 이야기며 기생 매창을 찾아가기 위한 지인들과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시인은 여행지에서 느끼는 그리움을 이야기 한다.

시인 고재종 씨의 그리움은 바로 우리 곁에 있으나 그 소중함을 모르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맡았던 아카시아 향기를 잊지 못하고 어느 컴컴한 여름날 친구들과 냇둑에서 훔쳐봤던 여인네의 옛 항아리 같은 하얀 엉덩이를 떠올린다. 자칫 도로 확장이란 개발계획 때문에 고향 담양과 순창 간 시오릿길에 도열한 천 여 그루의 메타세콰이아가 사라질 뻔한 씁쓸한 이야기도 털어 놓는다.

시인 이정록 씨의 그리움은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가난하던 시절 고향에서 장남인 자신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누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이름과 별명에 얽힌 사연, 고향의 꼼뱃재에서 아버지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울었던 기억,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젊은날 가난한 시인이었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 등이 고향집 익숙한 내음처럼 솔솔 피어난다.

4명의 문인들이 들려주는 그리움은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와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훼손되어 가는 자연과 점점 잊혀 가는 고향에 대한 아련함. 새삼 그네들의 그리움을 통해 나의 그리움 또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글과 함께 실린 가슴을 먹먹하게도 하고 따뜻하게도 하는 사진들이 또 한 번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워할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그리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여전히 마음이 푸른 사람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