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시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찾아 보는 시사 프로그램 하나가 있다. 바로 MBC에서 방영하는 ‘최윤영의 W’이다. W는 뉴스에 매일 나오는 국내 시사가 아닌 국제 시사를 주로 다룬다. 특히나 이 시사프로그램은 인권이 침해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과 여자들, 그리고 노동자들과 같은 약자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프로그램에서 봤던 어느 아프간 여성 아나운서의 죽음, 일명 ‘명예살인’이란 내용의 방송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 방송은 아프간 여성의 인권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그녀들의 삶을 보고 적잖이 놀랐고 또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었다.

하지만 2년 전에 방송에서 봤던 아프간 여성의 인권침해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막연한 이야기로만 희미하게 잊혀져 갔다. 그리고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온갖 전쟁이 끊이지 않는 그저 불쌍한 나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저 운나쁘게 그 곳에 태어난 그녀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런 값싼 동정심이 아니라 왜 그녀들은 여전히 부르카 속에 자신들의 슬픔과 분노, 인권에 대한 요구를 감추어야만 하는 걸까라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책 읽는 내내 느껴야 했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나는 W를 통해 소설보다도 더 비참한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보았기에 이 소설이 단순히 허구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주인공 마리암와 라일라의 삶이 그저 흰 백지 위의 거짓된 삶이 아니라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여인들의 생생한 삶이란 생각이 나를 괴롭게 했다.

마리암은 잘릴이라는 부유한 집안의 남자가 자기 집의 나나라는 가정부를 범하여 낳은 딸이다. 태생이 그러한지라 그녀는 엄마인 나나와 함께 외딴 곳에서 살면서 그 곳을 종종 방문하는 잘릴을 기다리는 낙으로 산다. 어느날 그녀는 잘릴을 직접 만나기 위해 나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가 수모만 당하고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그녀가 발견한 건 목을 매고 죽은 나나의 시체. 고아가 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잘릴과 함께 살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라시드라는 늙은 남자와 강제로 결혼을 하여 카불로 떠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라시드의 폭행을 참아가며 살아가던 어느날 이웃에 살던 라일라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면서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라일라는 단란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녀의 두 오빠가 소련군에 대항한 지하드(성전)를 하러 가서 목숨을 잃자 어머니는 더 이상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앓아 눕는다. 점점 심해지는 전쟁으로 인해 오랜 연인인 타리크와 하룻밤을 보낸 뒤 그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녀의 식구들도 전쟁을 피해 카불을 떠나려던 중 폭격을 당해 간신히 라일라만 마리암과 라시드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는다. 그녀는 타리크의 뱃속 아이를 지키기 위해 라시드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마리암과 함께 살게 된다.

태생도 자라온 환경도 나이대도 다른 마리암과 라일라는 이렇듯 전쟁이 맺어준 인연으로 인해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한 남편을 둔, 결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들은 엄마와 딸처럼 서로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들이 자신들의 삶과 목숨까지 희생해 가며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부조리한 삶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강한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라일라의 딸인 아지자는 더 이상 자신들과 같은 비참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저자는 한 개의 태양만으로는 이 세상을 골고루 비추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프간 여성과 같이 세계 곳곳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비추어 따뜻하게 감싸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천 개의 태양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것도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말이다.

한 개의 태양이든 천 개의 태양이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들만의 태양이 있기를 바란다. 그 태양으로 인해 삶의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래 본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

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눈은 우리 같은 여자들이 어떻게 고통당하는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거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걸 우리는 소리 없이 견디잖니.” (p. 125)

“라일라, 우리 아프간 사람이 쳐부술 수 없는 유일한 적이 있다면 그건 우리들 자신이란다.” (p. 185)

그곳에서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는 사랑이라는 것이 해로운 착각이요, 그것의 공범인 희망은 믿을 수 없는 환상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독성이 있는 그 쌍둥이 꽃들이 메마른 땅에서 돋아나기 시작할 때마다 마리암은 그걸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녀는 그것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뽑아서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난 몇 달 동안, 라일라와 아지자-이 아이도 알고 보니 자신처럼 하라미(후레자식)였다-가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마리암이 그렇게 오랫동안 견뎌왔던 삶이 이제, 그들 없이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p. 344~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