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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우울과 몽상>이라는 에드거 앨런 포 소설전집을 구입하였다. 배송된 책을 보는 순간 우선 그 두께에 조금 놀라고 표정 없는 포의 초상을 담은 까만 표지를 보고 조금 의아해했다. 결국 아직까지 나는 이 책에 담긴 포의 단편들은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포의 그림자>를 읽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하다. 저자인 매튜 펄의 전작 <단테클럽>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책의 내용이 아니라 저자를 보고 주저없이 선택한 책이 바로 <포의 그림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한마디로 책을 평가하자면 이 책을 통해 ‘에드거 앨런 포’라는 작가의 작품과 생애가 무척 궁금해 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소재는 아주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애드거 앨런 포’는 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1849년 마흔한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문학은 크게 네 갈래로 요약된다고 한다. 상상력과 서정성을 겸비한 시편들, 정교하고 모범적인 단편들, 날카롭고 독창적인 산문들, 그리고 우주와 자연의 신비에 대한 강의록과 산문들 (<우울과 몽상>(황금가지) 포 소개글 참조). 하지만 그는 힘겨운 삶을 살았다. 가난, 알코올중독, 정신병, 마약복용 등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천재성을 동시대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최후에 관한 미심쩍은 행적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책은 바로 마지막 방문지인 볼티모어를 방문한 포가 배에서 내린 뒤 선거일에 라이언스에서 사체로 발견되기까지 이후 닷새 동안 그의 행적을 밝혀내는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문학의 거장인 포의 최후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은 저자의 남다른 포부와 또 두 권의 책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발로 뛰며 자료조사를 했을 그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포의 그림자>는 총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놓았기 때문일까, 읽는 동안 포라는 작가의 평전의 일부분을 보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포라는 천재 작가의 초라한 죽음을 우연히 목격한 퀜틴 클라크라는 인물이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실존했던 인물임에 비해 정작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클라크는 가상의 인물이다. 게다가 포의 죽음을 풀어가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오귀스트 뒤퐁트와 뒤팽 남작 또한 가상의 인물이다. 아마도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 세 사람의 등장인물은 가상인물로 설정하였기에 저자는 좀더 과감하게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펼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반면 포라는 실존 작가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로 등장하는 묘지 관리인 조지 스펜스, 포의 사촌인 닐슨 포, 헨리 헤링, 헨리 레이놀즈, 존 모런 박사, 쇼코 힐 금주 형제단의 벤슨, 스노드그래스 박사 등은 실존 인물이다. 저자는 이들에 대한 묘사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포의 평전을 읽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가공인물과 실존인물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끌어가고 있다. 게다가 포의 작품 및 실존 작가들의 작품의 인용은 이 이야기를 소설로 받아들이는데 혼란을 줄만큼 적재적소에 위치해 있어 이 글이 사실에 가깝다고 느끼도록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1, 2권을 합쳐 600페이지 남짓한 책의 양에도 불구하고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이는 매튜 펄이란 작가만이 펼칠 수 있는 지적 추리물의 최대의 장점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고 나서 애드건 앨런 포라는 천재 작가의 작품 세계로 빠지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본문중에서)

“독자들은 포의 작품에 등장하는 뒤팽이 천재이기 때문에 진상을 파악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그것은 일부 이유에 불과하다. 그가 진상을 파악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다면 C. 오귀스트 뒤팽도 없기 때문이다.” (p.197)

“자네도 알겠지만 이 세상에는 자기기 처한 환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되고 싶어도 행방불명자가 될 수 없는 걸세. 나는 여기에서나 파리에서나 지금까지 행방불명자가 될 수 없었고, 무수 포도 죽을 때까지 마찬가지였네. 그런데 자네는 처음부터 떠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어.” (p.202)

“사람들은 추측이라는 단어를 추론이라는 훈련된 행동에 비해 열등하게 취급하지만, 사실 추측은 가장 고귀하고 견고한 인간의 능력일 뿐 아니라 상상에서 비롯되었다는 면에서 추론이나 논증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기술이라네.” (p.225)

“…… 하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정황을 파악하려면 포와 모든 사람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된 평범한 면, 그의 천재성과 충돌하는 그 평범한 면을 이해해야 한다네. 그속에 해답이 있을 테니.”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