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다. 적지 않게 리뷰를 써온 나이지만 이 책만큼 리뷰 쓰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책이 없었던 것 같다. <창조적 글쓰기>란 제목에 낚인 기분. 퓰리처상 수상 작가라는 저자의 이력에 속은 느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지성이 형편없이 모자라는 것은 아닐까란 의심을 해야 할 판이다. 이 작은 책이 나에게 별의 별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확실히 기존에 봐왔던 글쓰기에 관한 가이드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차원이라는 것이 내게는 버겁기만 하다. 책 뒷표지에 실린 추천글을 보고 있자면 내가 한없이 바보 멍청이같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도덕경>처럼 간략하면서도 강력한가?(USA 투데이 추천글 중) 글쓰기 전반에 관한 간결하고 멋진 가이드가 될 만한 구절이 있었던가?(보스턴 글로브 추천글 중) 글쎄다. 적어도 나는 이 추천글이 과장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 마치 논술시험대비용 수험서같은 글쓰기에 관한 가이드북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 책은 정말 시험을 위한 글쓰기에나 필요하지 비단 문학이란 장르를 위한 글쓰기에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 자명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창조적 글쓰기>란 책은 그 제목에서부터 나의 시선을 잡았고 무엇보다 저자가 문학을 공부하고 문학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당겼다.

하지만 저자의 문학관이 너무나 고차원인 걸까. 아니면 나의 지성이 너무 저차원인 걸까. 나에게는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지혜가 도통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완전히 못 알아 듣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가슴을 파고드는 지혜 또한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글쓰는 사람은 작품을 부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 작품의 처음 시작부분을 던져 버려라. / 글쓰기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일단 멈추고 하루고 일년이고 풀리지 않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 꾸준히 글쓰는 작업을 유지하되 속도조절을 하라. / 글을 쓰는 속도를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말라. / 진척중인 작품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무시해라. 그 느낌은 실제 수준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 / 다음 문장을 쌓기 전에 각 문장을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그 이유는 첫 부분에 의해 형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책이 문학적이면 문학적일수록 책을 읽는 독자는 더욱 책을 선호(다른 매체에 비해)하는 것 같다.

위의 내용은 이 책 제1장 ‘글쓰기의 미학’에서 저자가 다른 장에 비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해주는 조언들이다. 그런데 잘 읽어보라. 아마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갖고 있거나 직업으로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명제들이다. 아마 한 번쯤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들이고 그리고 스스로 찾아낸 해결책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것을 과연 지혜라고 할 수 있을까? 비단 이런 책을 읽을 때는 내가 해왔던 질문의 재차적인 복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좀 더 지혜라 여겨지는 조언을 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한 걸까.

제2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대부분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상상력의 에너지를 말하고 글쓰기의 몰입과 비전을 이야기하며 열정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지루할 정도로 긴 자신의 경험담 사이로는 그래도 들어줄만한 조언도 있긴 하다.

상상력의 에너지는 작가마다 그 충전의 근원이 다를 수 있다는 점, 글쓰는 작업에 대해 신은 나 있으되 흥분해서는 안 되고 충분한 신념을 가지되 너무 과신해서도 안 된다는 점,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결코 주도권을 작품에 내어주지 말 것, 글쓰는 이는 자신의 비전을 재생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사람들 앞에서 빛날 수 있도록 매번 노력해야 한다는 점, 자신에게 글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지면과 지면, 그 끝없는 공백이라는 점, 작가는 자신의 영역, 즉 했던 일, 할 수 있었던 일, 한계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것을 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점, 글을 쓸 때는 매번 즉시 좋은 것을 모두 써버려야 한다는 점 등

이 조언들을 자세히 보라. 어디 하나 독창적인 것이 없다. 다만 이런 상투적인 점들이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에 은근슬쩍 녹아있어 마치 신선해 보이는 것뿐이다. 이 책은 분류하자면 글쓰기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비교적 전문적인 서적이지 저자의 낡은 일기장같은 문학작품이 아니란 말이다. 집필 동기의 제대로 된 구실도 못하는 책을 문학성까지 운운하며 칭찬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은가.(이 책은 미국에서는 문학성까지 인정받고 있다 한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제5장과 제6장이다. 저자는 각각 화가와 곡예비행조종사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글쓰기에 관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그 핵심이 쉽게 다기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저자의 지혜랄 것도 담겨 있지 않다. 각 장의 모호한 소제목만큼이나 뜬구름잡기식의 내용이라니....

저자는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글쓰기는 자기만족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개인만이 소장할 일기같은 책을 집필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국은 독자를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물론 저자도 이 책에서 독자를 항상 생각하라고 말은 한다.) 저자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저자가 글쓰기를 고통스러워하는 이유 중에 독자에 대한 배려는 20%가 될까? 나머지는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한 고통이란 생각이 든다. 창조적 글쓰기에 관한 지혜를 들려준다고 하고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만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면 어떤 독자가 저자의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본인은 좋은 의도로 글을 썼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책 외에는 저자의 다른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없다.(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본 결과) 이 책을 보니 그 이유가 뭔지 알 것도 같다. 그리고 번역에 있어서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문을 해치지 않고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작업해야하는 것이 번역이 아닌가. 하지만 글의 생경한 표현이나 흐름을 끊어놓는 문장을 보면 이는 번역의 문제도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이래저래 좀 실망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