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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진학을 위해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몇 차례 방문한 서울은 내게 슬픔만 안겨준 우울한 도시였다. 1996년, 처음으로 접한 서울은 엄마와 나에게 겁부터 안겨주었다. 어디서 무엇을 타야 할지도 모르겠고 길을 물어도 사람들은 모른다고만 하며 우리 모녀를 지나쳐 갔다. 겨우 택시를 타도 목적지를 설명하기에는 난해하기만 하고 이런 갓 상경한 모녀에게 대부분의 운전사들은 불친절한 말을 내뱉으며 우리 모녀를 불안으로 내몰았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철석같이 따르고자 하셨던 나의 부모님은 이렇게 삭막한 서울에 나를 보내야 할지 말지에 관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이 거대한 도시에 넘겨주었다.

20살.. 30분 도보로면 시내를 충분히 구경하고도 남을 시골에서만 살다가 갓 서울로 상경한 나는 내가 앞으로 머물게 될 동네가 나 살던 시골 전체 보다도 복잡하고 크다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두려움부터 생겨 한 동안은 서울살이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선배들과 갔던 명동 첫나들이에서 길 한복판에다 나를 두고 선배들이 모두 숨어버려 나를 지켜봤더랬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멍하니 서있다가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나는 촌놈으로 찍히긴 했지만 덕분에 4년 내내 거의 밥값을 내지 않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문학 속에 서울은 이방인들의 도시이다. 서울 본토박이 보다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서울로 가야 한다는 속담에 홀려 낯선 서울을 고향 삼으러 떠나온 이방인들.. 하지만 서울은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다. 서울은 같은 사람들이어도 내가 아니면 가족들도 단절시키는 묘한 기류가 감도는 도시이다. 서로를 향해 웃고 있지만 뒤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망각의 도시다. 돈이 신보다 우선시되는 그리하여 모두 돈이란 종이 한 장에 울고 웃는 삐에로들의 도시다. 어느 도시보다 휘황찬란한 밤을 갖고 있지만 그 밤 속에는 어느 곳보다도 많은 눈물이 흐르는 도시다.

하지만 문학 밖의 서울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서울은, 비록 이방인들의 눈물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시간이 더할수록 퇴화하는 것이 아니라 회춘하는 도시이다. 뭐하나 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의 편안함이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는 도시이다. 극과 극의 경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경계의 중간에서 노력으로 선을 지워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도시이다. 여러 이유로 인해 생채기가 난무하는 얼굴이지만 점점더 빠르게 상처를 치유하는 신통함을 가진 도시이다.

나는 이렇게 두 얼굴을 지닌 도시 서울에서 12년째 살고 있다. 20살 서울에 대한 첫경험은 비록 어둡고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31살 독신 직장인인 나에게 있어 현재의 서울은 미래의 내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희망도 품을 수 있게 해준다. 1960년대 서울로 흘러 들어온 이방인들에게는 이제 이 서울은 제 2의 고향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울을 제 1의 고향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을 이 곳에 묶어 놓았던 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결국 그들은 서울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는 서울을 고향으로 안겨주었다. 아마도 50년 가까운 세월을 그들은 혹한 겨울을 이겨 내보자는 오기보다는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서울살이를 하였을 것이고 2000년대의 그들은 그 간절함을 이루었을 거라 희망해 본다.

문학 속에 서울이 유난히 어둡게 그려진 이유는 아마도 서민을 걱정하는 그 당시 작가들의 권력있는 자들에 대한 소리없는 반항이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눈앞에서 끼니를 굶어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도 꿈쩍 안하는 윗사람들에게 자신의 펜을 무기삼아 투쟁을 해온 양식있는 작가들에게 고개숙여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