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한마디로 재밌는 강의록이다. 저자가 러시아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란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구어체가 간간이 섞인 글은 책의 두툼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잘 읽힌다.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실제로 저자의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강의를 직접 한 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문호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저자는 ‘돈’에서 찾고 있다. 사실 다른 책들을 통해서 돈이 궁해서 집필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어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녹아있는 돈의 의미를 그의 실생활과 적절히 비교해가며 분석해 보여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떤 인물인가? 가난한 귀족가문의 출신으로 절약정신이 투철한 아버지 밑에서 소위 ‘있어 보이는 척’을 하기 위해 낭비를 즐기던 사람이다. 생색내기 소비를 하던 그였던지라 항상 수중에는 돈이 부족했고 그래서 쓰지도 않은 소설을 저당잡힌 채 선불을 받아 평생을 살았던 작가이다. 돈을 구걸하는 입장에서 선불을 받았기에 다른 작가들의 원고료보다도 턱없이 모자라는 원고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중에 돈이 없을 때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내용이 담긴 멋들어진 편지를 수 십 통이나 썼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렇게 선불받고 혹은 꾼 돈들을 어디에다 썼을까? 정작 본인인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만을 위해 쓴 돈은 거의 없다. 대신 같이 출판업을 하다 죽은 형이 남긴 빚을 갚거나 형의 유가족과 자신의 망나니 의붓아들을 위해 돈을 썼다. 그리고 그 어려운 형편 중에도 부인을 위해 사치품을 사거나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돈을 사용했다. 저자는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필요로 하긴 했지만 그것을 사랑한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그 필요로 한 돈마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쓰기 보다는 아내를 포함한 타인들을 위해 사용했다.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참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대목에서는 어디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돈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모아서 그 고생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의 원고료가 턱없이 낮게 책정되었다 하여도 그 당시의 물가와 비교해 보면 중간 이상의 생활이 가능했던 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돈을 모으지 않음으로써 돈에 이끌려 다니는 생활을 죽을 때까지 했던 것이다.

이렇듯 본인이 늘 돈이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심리를 도스토예프스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심리는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갔다. 그렇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 때문에 고뇌했던 것을 돈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이 책의 제목이 결코 독자를 자극하기 위해 과장되어 지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실생활과 그의 작품을 통해 낱낱이 말해 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하나도 제대로 완독한 것이 없다. ‘죄와 벌’을 반쯤 읽다 만 것이 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나니 오히려 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 싶다. 어차피 한 번은 그의 작품을 모두 읽을 거라 마음먹었던 참인데 이 책이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데는 무엇보다 돈이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돈 때문에 작품을 써야했고 (그랬기에 우리는 이렇게 지금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돈을 노골적으로 작품에 거론함으로써 돈에서 한 순간도 자유로워질 수 없는 전 인류에게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과연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돈에 웃고 돈에 울고 돈에 살고 돈에 죽는 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는 동안 돈 때문에 고생은 했으나 그 때문에 돈의 본질을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자신의 작품 속에 토해내면서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던 자신을 위로하고 더불어 그와 같은 작품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고전’이란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괴로움을 글로 승화할 수 있었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나는 그가 그 어떤 위대한 작가보다도 솔직한 작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돈’이란 필요악 앞에서 위선을 떨지도 그렇다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도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글에다 돈에 대한 그 모든 상념을 토악질해 낼 수 있었던 솔직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