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띠지에 속지말자 마음을 먹었어도 어쩔 수 없이 띠지에 눈길이 먼저 닿는 책이 있다.『쓰리』같은 경우는 띠지의 카피들이 모두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들이라 더욱 이 소설에 관심이 간 것이 사실이다. ‘천재 소매치기 vs 절대 악의 화신’,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오에 겐자부로가 직접 뽑은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 이라는 카피에 표지에 그려진 그림의 주인공만큼이나 잘생긴 실제 작가의 사진까지... 이정도면 정말 완벽한 띠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화려한 카피문구에서 오는 궁금증을 다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적은 분량과 만화책 혹은 하이틴소설을 연상케 하는 표지는 좀 의외였다.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가 직접 인정한 소설이라고 하니 믿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오에 겐자부로 문학상의 권위에 대한 의심마저 들더란 말이다. 왜 이 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는지 오에 겐자부로의 심사평이라도 실려 있었다면 나의 궁금증이 좀 덜했을 것 같은데 당연 있어야할 심사평마저 없고 보니 과연 이 소설을 오에 자신이 선정한 것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제목인 쓰리는 원제 掏摸(도모)에서 알 수 있듯이 소매치기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매치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니시무라는 도쿄에서 부유한 사람들을 상대로 남의 물건 특히 지갑을 슬쩍 하는 소매치기이다. 그는 그저 그런 소매치기가 아니라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정도로 솜씨가 좋은 쓰리꾼이다. 그에게는 이 계통에서 일하던 이시카와와 함께 했던 조직에 의한 어떤 일로 인해 친구인 이사카와는 죽음을 맞게 되고 그 자신은 도쿄를 떠나야했던 과거가 있다.

다시 도쿄로 돌아와 소매치기를 하던 니시무라는 우연히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모자를 알게 되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년에게 마음이 간다. 그리고 그는 도쿄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한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이시카와를 죽인 사람으로 어떤 조직의 보스인 기자키라는 남자다. 기자키는 니시무라가 도쿄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소매치기 모자를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니시무라에게 세 가지 일을 시킨다. 그 일을 무사히 해내지 못하면 니시무라는 죽고 이 일을 거절하면 두 모자가 죽게 되어 있는 피할 수 없는 임무를 니시무라는 멋지게 성공하지만 결국 기자키는 어느 외진 곳에서 니시무라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다.

줄거리만 보면 이 소설은 전형적인 삼류 액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이 말인즉은 이야기가 그리 재밌거나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디테일이 남다른가 하면 그 또한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주인공 니시무라가 소매치기를 하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하긴 하지만 천재 소매치기란 인물이 부각될 정도로 정확한 묘사도 그렇다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 또한 내면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주인공의 심리도 납득이 될 정도의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소설은 밥이 되지 못한 죽이라고나 할까. 아예 처음부터 죽인 것을 알고 먹었다면 죽도 죽 자체로 괜찮은 한 끼가 되겠지만 이미 밥이라고 모든 것을 말해 놓고는 (이는 심히 띠지의 영향이 크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죽이면 그 실망은 배가 되는 법...

몰론 억지로 꿰어 맞추자면 주인공 니시무라는 천재 소매치기고 조직의 보스인 기자키는 절대 악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천재 소매치기로서의 니시무라도 절대 악의 화신으로서의 기자키도 개성적인 인물이라고 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고 약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일을 두고 운명을 운운하기에는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단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을 받게 된 심사평마저 없으니 과연 이 정체 모를 소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