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는 과학책만 봐도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과학을 싫어했다.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까지 잘생긴 총각선생이 담당을 했어도 과학과목만은 내가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어느 정도의 점수를 받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없는 일이다. 대학에서는 과학은 물론 수학조차 볼 필요가 없었기에 사실상 나는 20살 이후로 두 분야에 관해서는 아예 문을 닫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과학 관련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니 사실 이것 또한 이해불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엘리건트 유니버스』『과학혁명의 구조』『인간없는 세상』『눈먼 시계공』『이기적 유전자』『블랙홀 이야기』『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연과 필연』등등 책장의 2칸을 차지할 정도의 과학 관련 책들이 있다는 건 사실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런 책들 중 읽다 중간에 이해불가로 내팽개친 책들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과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불가능은 없다』가 최근 과학 관련 서적 책장에 더해졌다. 그것도 완독을 한 목록에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불가능은 없다’라는 단순하지만 어떤 운명적인 힘마저 느껴지는 제목 때문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과학적이고 전문적이어서 접근부터 쉽지 않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SF소설이나 미래형 영화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한 것들을 화두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선뜻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의 저자 미치오 카쿠는 <평행우주>라는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저명한 과학 저술가이자 이론물리학계의 석학이라고 하는데 물론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는 저자가 이 분야에서 얼마만큼 유명하고 큰 업적을 남기고 있는지는 사실 거의 알 길이 없다. 나같은 일반인이 과학자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노벨상의 수상여부인데 약력을 보니 아직까지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저자가 실험실에만 있지 않고 TV프로그램 등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는 점인데 아마 이 책도 그런 그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나는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다분히 상대적 개념임을 깨닫게 되었다. (p.14) / 지금 당장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수천, 수백만 년 후에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p.15) /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판명되지 않는 것들은 언제든지 가능해질 수 있다!” (p.20) / 지금 당장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과학기술들이 수십, 수백 년 후에도 여전히 불가능한 과제로 남아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p.21)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을 위와 같이 밝힌다. 절대적인 불가능이란 없으며 지금 당장 불가능하다고 하여 미래에도 불가능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의 이야기는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불가능의 정도’를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글을 이끌어간다. 세 가지 부류를 말해 보자면 <제1부류 불가능>은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지는 않는 것들로 21세기~22세기 안에 어떻게든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고 <제2부류 불가능>은 물리법칙의 위배 여부가 아직 분명치 않는 것들로서, 만일 위배되지 않는다면 수천 또는 수백만 년 후에나 실현될 수 있는 기술들이며 <제3부류 불가능>은 현재 알려진 물리학 법칙에 위배되는 것들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부류에 속하는 항목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제1부류의 불가능에 속한 항목들을 보면 사실 정말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것들이다. 역장, 투명체, 공간이동, 텔레파시, 염력, 로봇, 외계인과 UFO, 우주선 등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와 미래형 영화, 드라마 그리고 소설에서 한 번씩은 다루어졌던 그런 소재들이다. 사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자주 접하면서도 이런 일들은 무조건 불가능하고 단지 가상의 현실에서나 가능할 법한 것들이라고 의심 한 번 해보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과학계에서는 이런 황당한 것들이 멀지 않아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하니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제2부류 불가능 항목의 내용은 내가 사실 조금 관심 있어 하는 우주에 관한 분야라 어렵지만 그런대로 흥미롭게 읽었다. 시간여행이란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부터 블랙홀에 관한 설명, 그리고 최근에 과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초끈이론까지 사실 몇 십장의 글로는 절대 설명 불가능한 것을 저자는 나름 일목요연하게 핵심만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몇 년 전 초끈이론이라는 것이 궁금해서 『엘리건트 유니버스』란 책을 사긴 했었는데 도저히 이해불가라 그 이후 들여다볼 생각은 아예 엄두조차 내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초끈이론에 대한 대강을 듣고 보니 그리고 어쩌면 이 이론이 모든 과학자들이 염원하는 ‘만물의 이론’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저 책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3부류 불가능의 항목으로 내세운 것은 에너지 손실 없이 작동하는 영구기관과 미래의 일을 미리 감지하는 예지력 둘 뿐이다. 영구기관의 경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영구기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실제로 만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이 모든 것들이 사기극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열역학의 법칙들을 위배하는 영구기관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예지력은 인과율이 철통같이 지켜지는 뉴턴의 법칙에 부합되지 않고 양자이론에서는 과거로 가는 물질 즉 반물질이 존재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인과율은 위배되지 않으므로 인과율에 위배되는 예지력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손으로 쥘 수 없고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 있는 무언가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자연의 기본법칙이 유한하며, 인간의 능력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미래의 물리학은 차세대 입자가속기와 중력파탐색기 등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과거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종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물리학의 출발점에 서 있다. 앞으로 무엇이 발견되건 간에, 과학의 지평선은 항상 저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p. 461)

언뜻 생각해보면 과학이란 분야는 상상력과는 전혀 무관한 아니 오히려 그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저자를 통해 과학이란 분야야말로 상상력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그저 지면이나 스크린을 통해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입증하고 이론화하는 것이 바로 과학자와 일반인들의 차이점라 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할 것이고 이러한 목마름이 결국은 우주의 신비와 창조의 신비를 벗겨내는 첫 걸음이 되어 기적과도 같은 앎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내용은 그리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단지 몇 백 페이지로 설명하려니 그저 개념만을 설명한 것이나 다름없을 진데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지 않았나 싶다. 그 방식은 일반인들이 친숙할 만한 영화나 소설, 신화의 이야기로 서두를 꺼내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교적 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과 어려운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그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 나같은 과학의 문외한도 완독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책을 보다보니 문득 이런 바람이 생겼다. 내가 죽기 전에 ‘만물의 이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는 것. 분명 그럴 것이라 믿는다. 세상에 절대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믿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