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임사체험에 관한 TV 프로그램도 꼭 챙겨보고 이에 관한 책도 몇 권 읽었으며 영화를 통해서는 사후 세계의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각인 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최근에 종교를 갖게 되면서부터는 나는 온전하게 사후 세계를 믿게 되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만으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시간이 한결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많은 위안이 된다.

『죽음, 그 후』는 죽음체험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이다. 내가 이 책에 주목한 점은 과학을 중시해야 할 의사가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과 그가 죽음체험을 연구한 방법이다. 즉 종교적 측면이 아닌 과학적 측면에서 임사체험을 연구하고자 했다는 점과 다양한 임사체험 사례를 모으기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어 나이, 성별, 국적, 종교 등을 초월한 다양한 사례를 모았다는 방법적인 측면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 신뢰를 갖게 된다.

이 책은 의사인 저자가 자신이 만든 임사체험 웹사이트(NDERF.org)를 통해 10년간 모은 1,300명의 죽음체험자를 연구한 일종의 보고서이다. 연구 기간도 그렇거니와 사례자의 수도 지금까지 나온 유사한 책 중에서도 단연 최고가 아닌가 싶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모은 체험자들의 사례뿐만 아니라 그동안 임사체험이라는 분야에 관해 나온 많은 논문과 서적 등의 관련 자료들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이래저래 이 책은 임사체험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최초의 死後生 보고서인 이 책을 통해 죽음체험의 12단계를 9가지 증거로 정리하여 자세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임사체험이란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임사’란 특정인이 육체적으로 위태로운 상태가 되어 여건이 나아지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실제 죽음체험자들은 대개 의식이 없고 심장박동이나 호흡이 정지해, 의학적으로 분명히 사망한 상태였다. ‘체험’은 그들이 임사상태일 때 일어난 것으로 ‘한정’했다. 또한 체험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으로만 한정했으며,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기억들은 제외했다. (p.15) 그리고 임사체험의 12단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01단계 : 유체이탈, 즉 의식이 몸에서 분리된다.

02단계 : 모든 감각이 매우 예민하게 고조된다.

03단계 : 감정이나 느낌이 격렬하고 대체로 긍정적이다.

04단계 : 터널로 들어가거나 터널을 통과한다.

05단계 : 신비롭거나 눈부신 빛과 만난다.

06단계 : 신비로운 존재, 죽은 친척, 친구와 재회 한다.

07단계 :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08단계 : 주마등처럼 삶을 회고한다.

09단계 : 비현실적인 영역을 접한다.

10단계 : 특별한 지식을 접하거나 알게 된다.

11단계 : 경계나 장벽을 만난다.

12단계 : 자의나 타의로, 몸으로 되돌아온다.

임사체험자들은 위 12단계를 모두 겪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죽음에 대한 체험은 저마다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겪은 체험을 종합하여 단계적으로 나열하면 위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위의 단계별 체험에 대하여 개별적인 체험자의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에는 자신이 연구해온 체험자들의 통계치와 체험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 그리고 때때로는 임사체험 회의론자들의 반박과 다시 이에 대한 저자의 반박 설명이 함께 실려 있다.

죽음체험자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이 책에 담은 근본적인 목적은 ‘임사체험’의 사실성을 논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논증하는 일이 ‘현재 삶의 의미’를 웅변하는 일, ‘우리 삶의 가치’를 탐구하는 일이 되었다는 데 놀라움을 느낀다. (p.78)

저자는 단지 과학적인 논증을 위해서 죽음체험자들의 사례를 오랜 기간 동안 모으고 그것들을 분석해 왔지만 정작 그가 이 연구를 수행해 오면서 깨달았던 것은 현재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일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이 나에게 큰 감명을 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단지 과학적인 논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죽음체험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특별한 체험으로 인해 현재의 삶이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죽음 후의 세계가 온전한 평화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현재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실히 굳혔다. 그리고 비록 내가 직접 죽음체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죽음체험을 연구하면서 느낀 것을 마지막으로 여기에 다시 한 번 옮기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하고 동시에 지금의 삶에도 충실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인류가 그토록 오랫동안 풀려고 했던 수수께끼의 고리가 이 연구를 통해서 풀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것은 먼지처럼 덧없이 흩어지기 전까지 그저 생존하고 경쟁하기 위한 냉혹한 목적이 아닐 것이라는 신념이다. 인간은 심오한 가치를 실현하고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들과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며, 궁극적인 존재는 우리를 단죄하거나 처벌하기 위해 눈을 부라리는 징벌적 초월자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고 품어주는 인류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류의 지성을 창조한 천재들의 활동에서부터 여기 옆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연민의 손을 내미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으며, 우리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이 세상에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