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생인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이랬다. 남자아이들과 같은 학원을 다녀도 편을 나눠 앉아야 했고 거리에서 초등학교때 동창생을 만나도 인사를 나누면 안되었다. 그저 서로 눈짓만 보내고 지나가야 했을 뿐. 남학생들과 마니또 편지를 주고받다가 걸리면 한 달 내내 벌을 서야 했고 혹여 빵집에서 남녀 학생이 얘기라도 나누면 다음날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기다려야 했다.

소도시이다 보니 학생들의 행동반경은 늘 어른들의 레이다망 안이었고 각자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내어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그런 수많은 감시망을 피해가며 이성친구와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나에게 먼 과거의 어느쯤을 떠올리게 한건 바로 이 책 <호기심>이다.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편의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분홍 표지의 춤추는 남녀가 나를 웃음짓게 한다. 교복을 입고 안경을 쓴 여학생은 바로 나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선생님은 바로 내가 3년간 짝사랑하던 안정수 선생님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저자들의 나이를 보니 결코 중고등학생들과 가까울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어른들의 눈으로 그린 10대들의 조금은 과장된 모습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 아닌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나의 기우. 7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정말 작가가 중고등학생이 아닐까란 착각을 계속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하지만 아직은 남자친구의 존재가 조금은 버거운 여고생의 심리를 잘 보여준 [남친 만들기] / 초경파티에서 들은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첫날밤 얘기를 재미나게 이야기하는 여학생의 성에 대한 호기심 [첫날밤 이야기] / 한 여학생의 아픔을 상담하면서 애써 감추고 싶던 자신의 잊지못할 성과 관련된 과거를 돌이키며 상처를 치유하는 상담원의 이야기인 [서랍 속의 아이] /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변 상황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녀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지에 혼란을 느끼는 고등학생 남자의 심리를 보여주는 [쌩레미에서, 희수]

운명이라 생각하며 짝사랑 하던 짝꿍이 유부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그녀를 좋아하는 남학생의 키스받기까지의 과정을 재미난 구어체로 들려주던 [키스 미 달링] / 모범생 친구가 남자친구 때문에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평범한 한 여학생?다] / ‘쪼다’란 별명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우연히 한 방에 갇힌 여학생과의 이야기를 과장하여 부풀린 한 남학생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일곱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웃기도 하고 고개도 끄덕끄덕하게 된다. 나의 10대 시절보다 더 풍부한 감성과 이성을 만날 많은 기회를 가진 요즘 10대들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10대라면 모두 느꼈을 그런 공통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순수한 감정이 피어날 시기인 10대에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거라 생각하면 답답하다. 나도 언젠가 10대를 둔 부모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나 또한 10대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못난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호기심을 제대로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호기심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호기심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성에 대한 노출이나 이성교제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호기심에 대한 행동에 따른 책임감을 함께 일깨워 줄때 우리 10대는 풍부한 감정을 제대로 느끼며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한 아름다운 시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