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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은 것은 터지기 마련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을 읽는 중에,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자발적 퇴교선언’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부끄럽고 참담했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세대,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모는 사회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큰 배움없이 취업을 위한 자격증 시장이 되어 버린 대학, 투자 대비 수익이 되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앞에 죄송하고, 젊은 놈이 제 손으로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한 세대,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한 세대..." (김예슬 학생, 대자보 중에서)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20대의 자화상이자, 현주소다.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20대라는 나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원초적 불안에 사회경제적 불안까지 가세되어 불안의 극심지대를 살고 있는 세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창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20대다. 김예슬 학생은 단지 이 화약고에 불을 당겼을 뿐이다. 찬, 반 양론을 떠나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무언가 잘 못 되어도 크게 잘 못 되고 있다’, 다들 생각은 하면서도 아무도 말하려들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하여 입에 발린 위로만이 무성할 뿐, 정작 우리사회의 20대가 처한 상황의 그 핵심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던 이들에게 부끄럼과 자책과 반성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녀의 행동은 충분히 훌륭하다.  고맙고 미안하고 대견할 따름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이들이 있다. 불안한 사람들은 쉽게 속고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은 학부모의 불안을 이용하고, 출판시장은 유례없는 청년실업시대를 맞아 불안의 중심지대에 있는 20대를 타겟으로 삼는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 <대한민국 20대, 스펙을 높여라>, <20대여 지금 당장 주식에 투자하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20대 맨손 창업>, <20대 직장인 부동산에 빠져라>, <대한민국 20대, 일찍 도전하라>, <20대, 취업은 연애다>,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성공하라--세상 밖을 꿈꾸는 거침없는 글로벌 청춘 대한민국 20대들의 국경 없는 성공기>, <20대, 미쳐야 살아남는다>,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스무살, 모든 것을 걸어라>, <스무살, 세상에 지지마>, <20대 인생에 관한 26가지 거짓말> 등등, 검색창에 ’20대’ 혹은 ’스무 살’을 치면 쏟아지는 책들이다. ’더, 더 경쟁력을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닦달하거나, 20대의 한복판을 지나 온 이들이, 인생의 멘토를 자처하며 건네는, 피가되지 못하고 살이 되지 못하는 위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나, 몸값, 화려한 스펙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오늘날의 스무 살은 경쟁이 강요하는 삶 속에서 피곤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그 곤고한 삶에 또 하나의 경쟁 이데올로기를 더하고 싶지는 않다"(저자 서문 中)고 한다. 지금의 20대가 처한 그 고통의 한 복판을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말라고 한다.

’삶의 고통이 커질수록 우리는 보다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삶의 참담함을 견뎌 낼 내공의 힘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와 공부다. 사람에 대한 공부, 나와 타인과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공부... 그것은 돈이 되지 않는 공부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엔 더더욱 도움이 안 되는 공부다. 세상에나, 자격증을 위한 공부나, 취업에 유리한 영어공부를 하라면 모를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람! ’간지 나는’ 의상, ’구리지 않은’ 휴대폰, ’필이 꽂히는’ 음악이 나만의 매력을 만들어 주는 시대에, 미디어의 시각적 텍스트에 더 많이 노출되는 20대에게, 내공의 힘을, 내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치부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돈이 되지 않는, 당장 취업에는 소용이 없는, 그러한 "공부의 내공이 길을 만든다"고 한다.

"오래 읽고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나의 가치관은 변화를 거듭한다. 그리고 가치관의 화학변화를 거듭 겪다 보면 나름대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삶의 길이 열린다. 배우고 생각하면 깨달음이 생기고, 그 깨달음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또한 사물과 인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내가 읽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 길을 만드는 것이다."(263쪽)

비단 자신의 길찾기만이겠는가.
’왜 우리는 경쟁해야만 하는가’. ’왜 꼭 성공 아니면 실패여야 하는가’. ’남들이 가져야 한다고 해서 왜 나마저 그것을 가져야 하나?’, ’현재의 만족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면서 왜 우리는 자꾸만 삶을 미래로 미루는가?’, ’작은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을, 왜 더 화려한 삶만을 꿈꾸는가?’ 라고 묻기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또한 개인의 행복한 삶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제대로 화를 내기 위해서도 공부와 내공은 필요하다." 저자는 그러한 공부와 내공이 바로 "철학의 힘"이라고 한다. 그러나 철학은 난해하다. 접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20대의 삶에 밀착해 정체성, 불안, 선택, 운명, 고독, 친구, 놀이, 욕망과 행복, 사랑, 성공에 대해 쉽고도 맛깔나게 풀어낸다. 철학이 이렇게 말랑말랑해질 수 있다니! 그것은 아마도 풍부한 독서와 충분한 사색이 길어올린, 저자만의 내공의 힘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20대들이여, 철학으로 자신을 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