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나들이를 하고 온 날이 부모님이 의도한 것처럼 재미있고 좋은 날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어렸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원하지 않는 가족 여행에 동참해야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자주 여행을 다니셨다. 그리고 그것을 좋은 추억으로 가지고 계시고 지금도 많이 말씀하신다. 아이 셋을 데리고 설악산을 비롯한 여러 산들, 유원지, 바닷가로 여행을 가는 일은 부모님께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기까지 신경도 많이 쓰고 고생도 많이 하셨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보거나 즐기지 못했던 것 같고 기억 속에도 그것들을 좋은 추억으로 많이 간직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간 것이 아니고 가서도 부모님을 따라 다니는 데만 급급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좋은 명산대천도 내가 즐기고 향유해야 내 것이 되는데 어릴 때는 내 방식으로 즐기기 보다는 부모님의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어느 책을 읽다보니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동물원에 갔는데 아이가 바닥에 줄지어 가는 개미에만 오래도록 관심을 가지고 오히려 동물들에 관심을 갖지 않아 엄마가 허탈해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럴 때, 아이를 재촉해서 동물들을 보라고 해야 할까? 어떤 경험이든 아이에게 의미있는 경험이 되려면 아이 방식으로 느끼고 향유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관대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우리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다녀와 뭐가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면 좋아하는 친구가 과자를 준 이야기, 선생님이 뽀뽀해 준 이야기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소풍 장소나 체험 학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 입장에서 재미있다고 느껴진 것들이 아이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 좋은 것들을 안 보고 고작 그런 것만 좋아하니'라고 충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족들은 동물원에 간다. 누가 생각해도 즐거울 수밖에 없는 가족 여행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가족들은 교통 체증과 아버지의 매표소에서의 실랑이, 먹고 싶은 것을 아버지의 독단으로 먹지 못하는 상황들에 지쳐간다. 동물들도 차라리 TV에서 봤던 것이 더 재미있고 직접 보니 오히려 불쌍해 보인다.

결국 아이들은 음식을 먹은 것과 원숭이 모자를 써보게 된 것을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는 집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엄마는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니고 사람을 위한 곳이라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고 만다.

가족들의 여행이 재미있으려면 과연 뭐가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가서는 아이들의 속도와 관점에 맞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배고프거나 힘들어하는 것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그 여행은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 남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