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단편집 <검은 기쁨>은 현대에 나오는 문학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의 소설집이다. 나만의 느낌인지 몰라도, 전 작품에 걸쳐 디테일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인물들의 개성이나 행동에 대한 표현이 거의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미지가 명확하게 떠올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단편집에는 4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4편에 걸쳐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모두 등장인물의 심적 갈등이 주요한 소재라는 점이다. 특히 어떤 기회나 사건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등장인물의 심리가 180도 돌변하게 되는 상황이 주요한 소재이다. 아마도 이 점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각의 작품마다 디테일한 묘사나 행동이 거의 없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단편소설이라기 보다는 작품을 구상한 스케치 또는 요약된 줄거리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첫번째 단편 생 소를랭의 이상한 여인은 4편의 단편 중 가장 공들인 캐릭터 마리 모리스티에가 등장한다. 많은 비밀을 간직한 (팜므파탈이라는 단어가 맞는 지는 모르겠다. 매력적인 용모는 아니고 들어나지 않은 범죄경력을 가지고 있는 으시시한 분위기의 여자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여인이 매력적인 신부에 끌려 죄를 고백하려다가 그만두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실 그녀의 비밀이나 과거 행적이 무척 궁금하고 이야기거리도 훨씬 많을 것 같은 인물을 작가가 창조해 놓고 단순히 남자의 매력에 빠져 마음이 흔들리는 과정만 소설화한 것을 잃다보니 엄청난 자원의 낭비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번째 검은 기쁨은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과거가 어느 정도 표현되어 다른 작품보다는 나았고, 등장인물의 돌변하는 마음에 대해 공감할 수도 있어 다른 작품에 비해 이해하기가 좋은 편이었다. 이 작품 역시 소설의 줄거리만큼 흥미로운 것은 초반 사건이 발생할 때의 두 주인공의 성격과 세월이 흐른 다음 만난 둘의 성격이 뒤바꼈다는 점인데, 소설에는 간단하게 처리하여 조금 아쉬운 느낌을 주었다. 

좀더 상세한 묘사와 갈등을 추가하고,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이 소설집처럼 심리변화에만 주목하는 작가가 있는 것도 인상적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