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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의 내 내면은 이 세상 그 어디보다 어지럽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가득차있었다. 오로지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고 관심있던 그 시절, 데미안은 내겐 첫사랑의 또다른 이름이었고 나는 싱클레어였다. 그때의 내가 데미안을 읽고 전율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치기어린 장난으로 곤란에 빠진 싱클레어에게 다가온 데미안은 그를 그 곤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카인의 표식'을 이야기하며 그의 삶의 지표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모든의 내면에 집중해야하며 모든 문제의 해답은 결국 자신 안에 있다는 철학적이면서도 난해한 데미안의 말에 싱클레어는 끌리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카인의 표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까. 싱클레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지독한 성장통을 겪게 된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던 유년시절과의 갑작스러운 감정적 이별과 무의미하고 방탕한 시절을 지나 숭배와도 같은 사랑의 시기를 겪고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결코 서로 같을 수 없는 친구를 잃은 후에야 비로소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재회한다.

그리고 데미안이 보냈던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라는 메시지가 지닌 뜻을 깨닫게 되고 잠시나마 평온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곧 데미안은 또 다른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으로 이 책을 끝이 난다.

오래전 이 책을 두번째로 읽었던 시절에 나는 싱클레어와 같이 나를 둘러싼 세계를 깨고 나라는 자아의 날개를 힘껏- 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방법을, 세계를 깨뜨리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직도 나는 내 안의 목소리에, 자아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 우울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둘러싼 세계에 의해 움직여왔던 이 걸음을 잠시나마 멈추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은 자신을 둘러싼 알의 껍질이 너무 두꺼워지기 전인, 십대시절에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 시절에 이 책을 읽고 전율하며 내 안의 소용돌이의 핵을 발견했던 것처럼, 분명 내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