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이라는 다소 무거운 제목의 책이 읽고 싶어졌던 것은 팝캐스트인 빨간 책방을 듣고나서부터였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문장을 쓰는 이동진 기자가 오래전부터 이승우 작가의 팬으로 자처해온 그의 문장은 어떤 것일까,  김중혁 작가가 '물 한방울 샐 거 같지 않은 강철 같은 문장' 이며 '새가 둥지를 짓듯이 공을 들여 적은 글'이라고 말한 이승우 작가의 글은 어떤 느낌일까. 글을 쓰는 두 사람이 입을 모아서 말하는 그토록 단단한 문장이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고  그 중에서도 그의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생의 이면'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 나는 '개정판에 부쳐' 란 짧은 글을 읽고나서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작가가 자신의 글의 불완전함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겠으나 이토록 단단한 문장들로 촘촘하게 소설을 이뤄낸 그 역시도 이 소설을 여러번에 걸쳐 고치고 싶어했으며 개정판을 내기에 앞서 고친 이후에도 그는 불완전함에 한탄한다. 아주 오랫동안 벼르고 벼른 칼을 사용하면서도 날카롭지 못하다고 괴로워하는 작가의 모습에 나는 전율 비슷한 걸 느꼈다. 나는 최근에 들어 이토록 눈물겨운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지상의 모든 눈물겨운 것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 눈물겨운 것들 중에서 나의 이 감정도 포함되었음을 나는 수줍게 고백해본다.

그 이후에도 나는 바로 본소설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의 문장들에 대단히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문단의 리듬은 너무 매끄럽고 끊임이 없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동진 기자와 김중혁 작가가 말한 그 문장이 어떤 것인지 나는 본소설을 읽지도 않았는데 이미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말만 읽어도 그 책이 어떤 책인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은 기분이었다.

'생의 이면'은 형식적으로도 아주 독특한 소설이다. 이 글의 화자는 작가이다. 그는 박부길이라는 한 작가가 살아온 삶을 그의 작품과 연결하여 추적해보라는 원고 청탁을 받아 그의 살아온 삶을 약력과 그의 소설 혹은 그의 고백을 바탕으로 씌여진 글이 바로 이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작가가 세 명 존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박부길이라는 한 명의 작가가 있다. 그는 책의 곳곳에 인용되었을 뿐 아니라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소설로 설정되었으며 이 책의 중간 파트인 '지상의 양식'을 지은 작가다. 그리고 그런 박부길 작가의 글과 대화를 통해서 그에 대해서 말하는 화자인 작가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지은 이승우 작가가 있다.

그 관계성이 이 소설을 독특하게 만들어 마치 박부길 작가가 이승우 작가 본인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부른다는 점에서 이 형식이 매력적이었다. 글은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는 사람을 투영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매력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었는데 박부길의 이야기가 이승우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면서도 독자는 마치 그의 자전적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어서 나는 이 책을 덮는 순간부터 이승우 작가의 모든 글들이 읽고 싶어졌던 것이다.

물론 그런 매력이 아니더라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박부길이 작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비극적인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필연적 이유들이 촘촘하게 짜여진 문장으로 이뤄져 어느 한 부분에 쉼표를 찍지 못한 채 끝까지 달리도록 해주었다. 쉼없이 달렸음에도 지치지도, 힘겹지도 않았던 것은 역시나 문장이 가진 리듬이 탁월했음이라.

의식적으로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데 아주 오래간만에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만 소설을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소설을 다시 읽게 해 준 아주 고마운 소설로 이 책을 기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