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달력을 보니 벌써 12월 12일, 어,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됐네, 할 정도로 이제 크리스마스가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요즘은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질 않는다. 나 어릴적만 해도 크리스마스라고 요즘 아이들처럼 산타한테(부모님한테^^) 선물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집 안에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해도 12월만 되면 거리에는 리어커에서 귤을 파는 아저씨와 군고구마를 파는 총각, 그리고 빨간 구세군 냄비 사이로 징글벨~ 징글벨~ 하는 캐롤이 울려 퍼지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곤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크리스마스엔 꼭 봐줘야만 했던 영화 <나홀로 집에>가 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놓은 듯한 영화 속 캐빈네 집과 뉴욕에 있다는 장난감 가게, 그리고 거리의 모습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그 영화를 볼 때만큼은 나도 미국 한 번가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영화 속의 그 모습들을 존 그리샴의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주인공 루터 크랭크 가족이 살고 있는 햄록 스트리트는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동네로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진짜 전나무를 사서 트리를 만들고 만여 개의 전구로 집 둘레를 장식하고 뱃 속에 2백 와트짜리 전구를 환하게 켠 2.5m짜리 눈사람 프로스티를 집집마다 지붕에 세워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행사에서 최고의 장식을 한 거리에 주는 1등상인 푸른 리본을 두 번이나 받은 동네다.

 

하지만 올해 루터와 노라의 딸인 블레어가 페루로 자원봉사를 떠나게 되고 공항에서 블레어를 배웅하고 돌아온 루터는 그날 밤 무시무시하게 엄청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올해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에 루터 크랭크 가족은 크리스마스 경비로 6100달러를 썼다. 6100달러! 장식품, 전구, 꽃, 새 프로스티, 캐나다 산 전나무 같은 것에다가! 소방관들과 긴급 구조대가 방문 판매하는 생크림케이크와 경찰 조합 사람들이 가지고 온 달력에다가!

 

루터는 저 돈을 끔찍하게 아까워하고(사실 좀 많은 것 같기는 하다, 아니 아주 많다. 루터도 세무사인 자기 한 달 수입의 90%라고 했을 정도다), 해마다 지겹게 반복되는 크리스마스를 탈출하고자 아내인 노라를 설득해 크리스마스 당일날 출발하는 카리브해 유람선을 예약하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어떠한 일도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로 간단해(?) 보이는 루터의 이 계획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써 루터와 노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은근한 압박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급기야는 긴박함과 팽팽한 긴장감까지 가져다 주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갈 무렵 과연 루터는 아내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무사히 '건너뛸수'있을 것인가하는 궁금증이 한껏 고조되었을 때, 블레어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 사이 페루에서 사귀게 되어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와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미국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약혼자에게 '진정한'크리스마스를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같다. 급하게 파티에 초대한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할 때는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고, 루터가 이웃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어스름이 깔릴 때를 기다려 프로스티를 몰래 지붕에 세우려 할 때는 킥킥, 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실 루터가 그토록 피하고자 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내게는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해 보인다. 뭐, 지출이 좀 과하고 매번 같은 레퍼토리라 할지라도 우리 인생을 통틀어 보면 일 년에 한 번 뿐인 크리스마스가 기껏해야 몇 십 번밖에 안 된다. 존 그리샴이 책 속에서 잠깐 블레어의 입을 통해 '우리 문화의 무심한 물질 숭배'라고 직설적으로 비꼬기도 하지만 결국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는 루터처럼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포근하고 행복한 날이다. 아이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