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공지영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 내가 개인적으로 그녀를 아는 것도 아닌 처지에 누가 누굴 좋다, 싫다 하는 것도 좀 우습지만 그녀는 이미 유명인이니까 내가 그 정도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그냥 작가나 작품에 대한 취향 정도로 넘어갔으면 한다.

 

내가 그녀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작품으로 처음 읽었던 <고등어>가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과 책보다는 텔레비젼을 통해 만나본 그녀의 모습에서 웬지 나와는 맞지 않는, 이질감을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무릎팎 도사에 출연해서 그녀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자신의 나이가 70살(?)쯤 되면 빨간 원피스에 스카프를 휘날리며 뚜껑 열린 스포츠카를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소위 '겉 멋이 든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지금도 능력이 될텐데 지금은 아니하고 꼭 그렇게 할머니가 되어서 그리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다는 것으로 들렸으니까. 그러니 나처럼 누가 쳐다 볼세라 마음 졸이는 소심쟁이가 그녀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것은 차라리 작가에 대해 별 아는게 없이 읽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을 선입견을 미리 가지고 있어서인지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트집 잡는 시어머니처럼 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봉순이 언니>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씌여진 것 같은데 아마도 일부 소설적 요소를 빼곤 거의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썼을 때 작가의 나이가 서른 다섯 쯤, 그리고 첫 번 째 이혼을 준비중이었던 때인 것 같다. 글을 읽다 보니 주인공 봉순이 언니를 두고 하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 세상에 아비 다른 애들 넷을 놔두고서 남부끄럽지도 않은지......"

 

' 아니, 엄마. 쉰이 다 된 그 나이에 정말이란 말이에요? '

 

그런데 지금 공지영 작가의 나이가 쉰 살에 그간 세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세 아이를 둔 것으로 알고 있다. 쉰 살의 나이에도, 아버지가 다른 아이가 셋이나 되어도, 변함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여전히 자신의 가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그녀도 지금은 깨달았으리라. 물론 다시는 결혼같은 것을 하지 않겠다, 했지만 그것은 사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중 화자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감동을 얻기보다는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인 1960년대 서울의 한 귀퉁이 모습과 나도 또한 '언니'나 '이모'로 부르며 함께 살면서 '식모'라 불렸던 이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다.

 

 

1963년 겨울. 하지만 봄이 오고 여름이 시작되자 서울에는 작고 귀여운 채송화도 피었고 강아지풀도 자랐으며 조금만 걸어가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모가 심어진 좁은 논도 있었다. 오리가 있고, 거머리가 많던 작은 개울들. 모래내 역 앞을 천천히 지나가던 마차와 마부들, 지금은 지하철 충정로 역이 된 서대문 근처를 쨍그랑쨍그랑 종을 울리며 지나가던 전차. 무꽃 피어 나비가 날아다니던 개천둑, 우리는 난지도로 수영을 갔고, 모래내 강둑에서 스케이트를 배웠다. 신촌 로터리 둥근 분수 가장자리를 장식했던 보라색 팬지꽃은 그때 얼마나 이국적이었는지.(p25)

 

 

그랬구나, 나는 서울에서도 변두리 외곽에서 자라났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도 그 땐 그랬었구나, 하는 감회가 밀려든다. 요즘들어 자꾸만 어릴적 생각이 나서 파주 헤이리에 있는 근현대사사 박물관을 혼자 두시간이 넘도록 구경을 하며 행복해 했던 나에게는 잠깐이나마 옛날로 되돌아 갈 수 있는 타임머신과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