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모든 분야의 소비가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비단 반찬거리 뿐만 아니라 옷도 시장에 있는 옷가게에서 사 입었고 신발도 시장 안에 있는 신발가게에서 사 신고, 하다못해 요강과 늘어진 팬티에 갈아끼울 고무줄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시장에서 구입을 했다.

 

아주 어릴 땐 엄마가 시장에 가실 때 가끔 나를 데리고 나가셔서 시장 안의 옷가게에서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들을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꼭 순대 가게에서 순대를 사주시곤 했다. 활기차고 복잡한 시장안 한 가운데에 순대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분명 순대 이외에도 여러가지 먹거리들이 기다란 줄에 매달린 주황색 백열등 불빛 아래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던 기억이 있건만 나는 엄마랑 꼭 순대를 한접시씩 먹었던 기억밖에 안 난다. 그 순대는 나에게 유일한 외식거리였고 엄마가 혼자서 시장엘 다녀오시는 날엔 나를 위해 꼭 순대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돌돌 말린 신문지를 풀면 고춧가루가 섞여서 색이 빨간 소금과 함께 그 때까지도 따뜻한 순대가 들어 있었다.

 

지금도 어릴적 생각을 하면서 가끔 순대를 사다 먹는데 상가에서 집까지 불과 5분 거리도 안되건만 플라스틱 통에 담겨 비닐봉지에 담겨진 순대는 집에 와서 뜯을 땐 벌써 식어버려서  " 아, 이 맛이 아닌데..." 하면서 자꾸만 옛맛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조금 더 커서는 나에게 짐도 들게 하고 든든하게 딸내미를 의지하면서 데리고 다니셨는데 대식구의 살림을 꾸리셨던 터라 나물도 근이 아니라 관으로 사셨기 때문에 제법 시장에선 큰 손님(?)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내성적인 성격의 내가 무척 견딜 수 없었던 건 그 시장통에서 엄마가 상인분들과 벌이셨던 흥정이다. 처음에 값을 깎고 마음에 안 차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큰 소리로 싸움까지 하셨던 엄마. 옆에 있는 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안 팔고 만다, 다신 안 산다,등의 말이 거칠게 오가고 다신 그 집과 거래를 안하실 것만 같이 서로 등을 돌리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엄마는 한 바퀴 시장을 휘 두른 후 다시 그 집으로 가서 물건을 사시는 거다. 그럼 또 파시는 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물건을 내 주신다.

 

그 땐 그런 모습들이 이해가 안되고 너무너무 창피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바로 우리네 시장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속으로는 덤을 통해 건네어지는 인정이 있었던 곳.

 

기분좋은 QX에서 펴낸 <한국의 시장>덕분에 집 안에 앉아서도 행복한 시장 나들이를 다녀온 기분이다. 전국 팔도의 유명한 전통 시장을 이렇게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들여다 보고 있으니 책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입도 짧으면서 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각종 먹거리 사진 앞에서는 이거 먹으러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날씨가 풀려서 좀 따뜻해지면 복잡한 것을 질색하는 남편을 졸라 시장 나들이 한 번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