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는 신문의 2면을 차지한 ‘열림’의 격주 연재를 했던 모양이다.

6년 동안 122명의 인물탐구를 해 왔다는 꾸준함과

그녀만의 집요함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우연찮게 신문의 신간소개코너에서 발견했고

​122명의 인물을 인터뷰했다는 숫자 앞에서 잠시 멈칫해서

몸을 더 바짝 당겨 앉아 찬찬히 읽어보게 되었다.

 

‘인물을 선정하게 되면

그 인물에 대한 모든 자료와

그간의 영상을 모조리 살펴

질문지를 작성하는데

꼬박 일주일을 쓰고,

인터뷰 후 평균 5시간이 넘는 녹취록을 풀어

글을 구성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인터뷰와

추가 자료 조사를 하고 글을 구성하는데

다음 일주일을 쓰게 됩니다.’

 

편집자의 이 문장을 보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신간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허나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이 집념의 작가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힘으로 122명의 인물을 선정하고 자료를 샅샅이 찾아서 읽어

그녀만의 관점에서 궁금한 질의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리고 ‘문학 동네’카카오 스토리에  ​

​‘이 진순의 인터뷰 특강’ 공지소식을 읽고 냉큼 신청했다.

 

​어떠한 글을 써왔는지에 대한 사전정보 제로 상태에서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미리보기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단어와 글과 문장의 구성력이 어떠한지,

​어떤 성향의 맥락을 풀어놓았는지를.

​

금요일의 오후 휴가를 얻어 일찍 도착한 서점의 한 코너에서

두어 시간 그녀가 풀어놓고 다시 말끔히 정리된 글을 읽었다.

122명의 인물 중 12명을 선정하여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으로 다시 엮어낸 책.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 혜연,

​정부의 어떠한 지원을 요구한 적 없는

자원봉사 민간인 잠수사의 진의를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아 달라는 그녀.

 

국민적 영웅,

천재적인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교수,

   

최근작 ‘포레스트’로 조금 더 알려진,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연민과 이해의 폭이 넓은 임 순례 감독

​

32년의 공직생활을 허겁지겁 접고

촛불집회로 무소불위 정권의 막을 내린

역사적 사실에 한없이 부끄럽다는 노 태강.

 

47세에 커밍아웃 선언에 이혼하고

독거노인의 생활과 정서적 안정을 돕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최현숙.

 

‘엄마, 난 여자가 좋아’의 여느 아이와 다른 딸의 성 취향에

따뜻하게 품어 안아 준 성소수자 딸아이의 엄마 이 은재.

 

시설에 따로 격리시켜 18년 동안 생활해온

장애의 동생과 함께 동거하며

그녀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영상으로 담아

세상의 변화를 조금씩 알리는 장 혜영 다큐 감독.

​

강남의 부유한 동네에서

핑크빛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미련 없이 떨쳐내고 화려하게 화가의 삶을 살아가는 윤 석남.

​

백의민족,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한 번도 침략국가 였던 적이 없는 우리의 감추어진 민낯을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사건’연구자료 공개로

일대 경악케 했던 베트남 역사연구 활동가 구 수정.

​

좌파, 보수 등 이분법적인 의제가 아닌

진정 무서운 정적은 ‘무관심’과의 싸움이며,

​이는 눈물, 분노, 연민, 환희 등

원시적인 감각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는 손 아람 작가.

 

다른 어느 수사를 붙여도 만족스럽지 않은

한국대표문인 황 석영.

 

‘정답’은 과거 박정희 정권의 정체성과 독재를 위한 잔재임에 청산해야 하며,

​이 세상은 정답이 아닌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이기에

끊임없이 찾아내고

또 발견해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라는

이 시대 따끔하고 아프게 매를 들 수 있는 진정한 어른, 채 현국.

 

지금껏 인터뷰한 인물 중

​‘가장 훌륭한 인물은 꼽는다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이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없어요.’

​

평범하게 가난하고 남루하고 때론 초라한 인연들과 부딪치면서도

그 삶의 부정이 아닌 긍정하고

사랑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이 그녀의 탐구 대상이다.

 

그녀는 인터뷰이와 만나는 그 순간이

마치 자신의 불순한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누가 해도 똑 같은 인터뷰가 아니라

천인천색일 수 있고,

​그녀라는 도구로서 주관적으로 쓰고

각각의 주관성이 만나는 교집합,

​즉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인터뷰는

단순히 질문하고 답하고의 질의응답이 아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천인천색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추는 춤사위는

뭉근히 끓인 누룽지의 구수하고

진한 목 넘김이 부드러우며

헛헛한 빈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듯 담백하다.

 

12명의 인물,

​그 어느 누구도 얕게 읽히지 않았지만,

​성소수자 딸을 둔 뽀미라는 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은재의 글들은 아프게 읽혔다.

‘나라면……’이란 감정이입이 더 많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내용이기도 했다.

​

​

청중들의 상찬과 갈채는 짧고

그를 무릎 꿇리려는 현실의 거대한 벽은 완강하고 압도적이다.

​그가 힘겹게 이뤄낸 제도의 성과는

잇속을 차리려는 이들의 잔칫상에 공출된다.

첫 날은 새벽 4시,

​둘째 날은 새벽 5시까지 그의 곁에 머무르며

나눈 이야기가 25개 녹음파일로

동강동강 저장되었다.           

                                    - 이 국종 교수 - 

                                                             p40

​

 

누구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데 근원적인 에너지가 되고,

​그게 사회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난 그걸 분리하라고 한 거예요.

​사랑하는 걸 숨기고 살라고

아이는 온통 ‘세상에 맞서 나 홀로 싸움’을 하고 있는데. 

​                                                          - 뽀미 이 은 재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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