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 생에서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가지고 있는지.
만약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p8
별스럽지 않은, 특별하지 않은 문장인데,
순간 명치끝을 찌르르 날카로운 그 무엇이 지난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하루.
스무 살 갓 넘긴 내게
불과 몇 시간 전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믿을 수 없던, 이명처럼 귓가에 뭔가 계속 윙윙거렸던 그날.
비눗방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듯이
분주하게 오가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짐승의 그것처럼 울부짖는 이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잊어야 했기에,
기억에서 지우면 살아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허둥지둥 지우는 데만 급급했었던 그날.
비슷한 지명이나 심지어 교통수단으로 언급되는 것조차
심박동 수가 세차게 뛰어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만큼
격하게 아팠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하루'의 문장 앞에서,
왜 그 하루를 떠올린단 말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처절한 후회와 돌이킬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표현하지 못한, 쓰다듬지 못한,
제대로 보아주지 못한
그 마지막의 기억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버린 지금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순간엔
제대로 나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군가를 위해 애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하루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 못한 무수한 말들을 전하고,
제대로 그의 부재를 슬퍼했을 것이며,
아프고 상처투성이인 사랑하는 이들을
돌아볼 수 있으리라.
아득한 기억을 선명하게 내 앞에 놓고
세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글,
짊어진 배낭의 무게든,
삶의 무게든 휘청거리며 걷는 그의 발걸음에서
한 문장 한 문장 풀어지고 있다.
최 갑수.
그의 비교적 초기작품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출간년도를 보니 2010년.
시인으로 등단하고 나서 막 전업 작가의 길 위에 올라선지
얼마 되지 않은 풋풋한 시기에서 쓴 책,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잘 지내요?'
라고 묻고 싶은 사람을 계속 떠올리며 읽게 되는 책.
애써 덮어두었던 그리움들이 솟구치게 하는 글들.
가 닿을 수 없는, 쓰다듬지도,
미소지어보일 수도 없는 이를 자꾸 떠올리며
가슴 저리게 만드는 사진과 문장들.
초기작의 서툶과 매끄럽지 못한 단어와의 조합들이
전혀 걸림이 되지 않게 읽히는 책.
굵은 빗줄기가 서늘해진 가을 공기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이 계절에 감성이 더 오소소 돋게 한다.
이젠 피하지도 일부러 끄집어내어
상처에 약을 바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모습과 그 목소리는 선연하다.
그리고 미안함과 그리움 또한 옅어지지 않는다.
인디언의 속담 중에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말 위에서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는지를 찬찬히 살피는 것이라고.
우리의 삶에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긴박한 메시지가 수없이 오가는 나날일지라도
가끔 이렇듯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성찰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몸의 이상이나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기적인 스스로의 자가 점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의 중심은 타인이지만,
성찰의 중심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잘 지내냐고 묻고 싶은 사람’을 곁에 둔다는 건
덜 외롭고 쓸쓸한 일임엔 틀림없다.
#2018-77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p175
세상의 모든 길은
당신 앞에서 시작하며,
오직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당신의 새로운 주소다. p303
https://blog.naver.com/loving202
잘_지내나요_내_인생,
최갑수_산문,
눈부시게_빛나던_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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