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독서광이라 칭하는 경지는 어떤 것일까. 저자는 독서를 ‘애인’과의 만남과 같다고 이야기 하며, 자신을 지독한 독서광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가, 지난 20여 년간의 WTO 북클럽 회원으로서의 독서경험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과 작품해석을 넘어,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모인 다양한 멤버들과의 독서 토론을 통해 얻은 다채로운 시각을 한 데 녹여 냈다.

그러한 다양성에 힘입어서 인지, 여러 고전들에 대한 풍부한 시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당대의 불편한 시선은, <로마사 논고>등의 다른 저서들을 통해 드러난 마키아벨리의 급진적인(?) 현대적 정치사상(민주정의 옹호 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 처형의 진정한 이유는 영혼의 불멸성을 강조한 철학이 당시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의 오랜 독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전이 담고 있는 인간의 정서의 단면와 스토리 구성에 대한 깊은 해석도 흥미롭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의 지루함에 대한 단상. <햄릿>으로 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한계(주인공의 고뇌에 찬 언어와 비견되는 수동적 결말) 등은 저자의 폭넓은 시각과 독서량을 보여준다.

저자는 읽어야 할 딱 한 권의 책으로 <레 미제라블>을 꼽고 있다. 일찍이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얇은 번역본으로만 접했던 책이었다. 최근에 영화의 성공과 함께 완역본이 출간되어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그 분량의 방대함에 압도된 터였다. 저자는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순수한 사랑과 워털루전투를 가장 세밀하게 묘사한 책으로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면서, 성서보다도 더욱 성스러운 책이라고 평한다.

저자는 30여권의 고전들을 영어원문으로 접했음을 밝히고 있다. 고전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원문을 만나보는 일이 중요함을 고전 입문서들을 통해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사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저자가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피츠제럴드의 문장의 수려함에 감탄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시보다 아름다운 산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