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제목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래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들을 연상시킨다. 저자의 전작이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이다. 삶의 의미를 그 근원에서 출발하기보다 종말로부터 찾고자 한 점이 이채롭다. 인문학 서적의 제목 같지만, 이 책은 우주의 기원과 우주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별과 우주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시공간에 대한 막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수시로 우리 태양계를 우리 거실 안으로 집어 넣는다. 이제 태양은 고작 지름 1밀리미터이고, 행성들은 그야말로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별이 4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저자는 우주를 이해하고자 했던 고대 철학에서부터, 우주로의 탐험을 시작한 현대의 과학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례와 인문학적 관점들을 한데 녹여내 일반인을 위한 우주 이야기를 펼쳐낸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달부터 태양계와 은하(1부) 그리고 우주(2부)에 다다르다가, 이윽고 우주의 기원인 빅뱅(3부)에 이른다.

137억년 전 우리는 모두, 우주의 시작인 빅뱅의 순간, 함께 했다. 별과 우주를 이룬 원자는 지금 우리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의 기원 속에서, 인류의 탄생이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필연의 산물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물질적이고도 물리적인 이러한 과학적 접근이 과연 '인류 탄생'의 신비를 풀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생명체의 탄생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박테리아나 인간이나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주와 별의 기원과 함께 한 원자로 구성된 생명체라는 발견은 신비롭긴 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우연성에 기댄다. 같은 구조라면 무엇이 되었더라도 상관없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우주생물학’의 권위자인 만큼 이런 생각은 더욱 짙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우주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