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두 아이랑 시드니 여행을 다녀왔다. 5학년이라고는 하나 소심하고 유들유들한 아들내미와 
어리광으로 중무장한 5살 딸내미와의 자유여행이었다. 걷는 일 앞에선 급격히 자신감을 상실하는 두 녀석과 
함께 하는 자유여행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무시로 멈춰 서야 했고, 아무 곳에서나 쉬어야 했다. 
소파가 편해보이는 카페에 들어가기도 했고, 볕 잘드는 나무계단에 걸터앉기도 했다. 목적지는 있으나 
쫓기는 일정은 없으니 우린 한가로왔고 여유로왔다.  다음 목표치 걸음만큼의 에너지가 충전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했으니, 우린 자연스레 배낭에서 각자의 책을 꺼내들었다. <맹꽁이서당>과 <뽀로로 색칠공부>를
 펴든 두 아이 옆에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읽으며 한참동안 키득거렸다. 
향긋한 커피나 달콤한 핫초코를 홀짝이기도 했으니, 우리에겐 바로 그곳이 북카페였겠지. 

 <북카페 인 유럽>은 베를린에 살고있는 필자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찾아낸 보물섬같은 북카페를 
소개한 에세이다. 책의 말미에 미국과 일본의 북카페도 살짝 소개되어 있으니 <북카페 인 더 월드> 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  반짝이는 베를린의 여름을 보낸 필자는  ’회색구름이 무겁게 땅의 무든 것을 짓누르고, 
마른 나뭇잎들은 그 어느 때보다 허하게 낙하하는’  베를린의 낯선 겨울을 이겨낼 처방전이 필요했고 평안과 
위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책이 가득한 카페를 좋아했다. 사람들이 만든 온기와 적당한 소음, 내가 고르지 않은 음악,
 커피 한잔, 그리고 많은 책들이 있는 곳. 바로 북카페. 이때부터 나는 베를린에서 북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바닐라향에 취하거나 혹은 커피 볶는 향에 매혹된 베를린의 북카페, 헤르만 헤세의 발자욱이 남은 작은 도시 
칼프의 북카페, 더위를 만나 지친 여행자에게 필자가 권해주는 함부르크 알스터 호숫가의 북카페, 
골동품 같은 여행가방이나 커피원두 포대에 조심스레 책을 담아둔 함부르크의 문학카페까지 어디쯤에서 
숨을 내쉬어야 할지 잊을만큼 몰입하여 읽었고 내내 부러웠다. 그윽한 커피향과 고서의 눅눅한 기운을 
고스란히 느꼈을 필자도 부러웠고 우아함 넘치는 북카페가 존재하는 그 도시와 그곳 사람들도 부러웠다.  

헤세가 묘사한 것처럼 따사한 볕 아래 눈을 깜박이는 초록빛 도마뱀을 만나는 나른한 공기의 오후, 
뭉게구름을 얹은 카푸치노 한잔, 그리고 한 손에 들린 그의 문고판 시집 한권. 이보다 평화로운 
여름 휴가풍경을 꿈꿀 수 있을까.

독일의 여러 북카페와 함께 소개된 유럽의 북카페를 만나는 일은 더 설레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에서,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나라 독일에서 북카페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투우의 나라 
스페인에서,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에서 북카페를 만나는 일은 왠지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를 탄 기분이었다. 그중 필자가 체코의 여름까지도 사랑하게 만든 ’내가 원하는  그 이상의 
이상의 이상’이라고 감탄해 마지않던,  ’노트 하나 펼치고 낙서하는 글쟁이에게는 거품 많이 낸 뜨거운 
카푸치노를 주세요. 한껏 부풀어오른 커피잔 넘칠 듯한 우유거품을 보는 사람은 영감을 받지...’라고 기어이
소네트를 끄적이게 만든 프라하의 근사한 북카페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작가라는 턱수염이 덥수룩한 미국아저씨를 떠올리며 필자와 가장 강렬한 동질감을 느낀다. ^^

일단 밀란 쿤데라의 책은 건너뛰고, 또다른 프라하의 대문호인 카프카의 책들을 들었지만... 
인간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파고들어간 그 깊이를 당장 여기서 소화시키기는 버거웠다, 
자연스럽게 밀란 쿤데라의 소설적 기법에 말랑말랑함을 부여한 알랭 드 보통과 
프라하에서도 인기가 대단한 빌 브라이슨의 코너를 맴돌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다소 불편하지만 공감해야 했던 대목이 있다. 아시아에 너무 인색한거 아닌가 싶게 
필자는 인도 카레향이 퍼지는 암스테르담의 북카페를 외면했고 중국 꽃등이 걸려있는 스위스의 북카페에 
실망스러움을 표했다. 그래, 아시아에 인색해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만나길 원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독일에선 기품있고 웅장한 독일느낌을, 스위스에선 아름답고 세련된 스위스느낌을 기대했기에, 
먼지 풀풀 날리는 학교운동회날, 미니스커트에 뾰족구두를 신고 등장한 이웃엄마를 만난 것마냥 
당황스럽고  뜨악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다. 외국인들이 만나는  우리나라의 카페는 
어떠한가 말이다. 지도상 위치가 대한민국임을 제외한다면 뉴욕의 그곳이나 빠리의 그곳이나 
무엇이 다를까 하는.. 좌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전통차를 마시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한번쯤 인사동 아닌 다른 곳에서도 정갈하고 단정한 한국느낌을 전할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인슈타인 카페에서 모짜르트 케잌을 먹으며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불가능한 것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는 
헤세의 속삭임을 듣는 하루가 그들의 평온한 일상이라지.  율곡 이이가 성장한 고장에서, 베토벤 바이러스를
촬영한 예쁜 공원을 지나 강마에가 앉아 책을 뒤적이던 도서관 서가에 머물다가,  ’쓰기 전에 글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김탁환 작가의 차분한 강연을 듣는 나의 일상도 나쁘진 않구나.^^

한번쯤 유럽여행을 꿈꾸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더구나 이제는 배낭하나 둘러메고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내며 
싸우듯 떠나는 배낭족의 시절을 훌쩍 넘겨버린 우리 세대에겐 일생을 두고 실현하고픈 꿈이다. 
소심하고 유들유들하기만 했던 아들내미가 호주여행을 마치고 한결 씩씩해졌다. 
올해엔 유럽여행을 가고프시단다. 아들내미가 열광하는 프랑스와 엄마가 소원하는 그리스엘 가보자며 
말도 안되는 루트를 짜면서도 독일은 단한번도 우리의 여행에 초대받지 못했었다. 내가 읽던 <북카페인유럽>책을
어깨너머 들여다본 아들내미가 "오홋!! 유럽의 북카페 완전 멋진데.."하면 반색을 한다. 
올 여름  독일 어디메서, 혹은 프랑스 어디메서 자그만 책 한권을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는 어리버리 가족이 있다면
 누구든 아는 척해주시길.... 
떠나기도 전 든든한 길동무를 얻은 듯, 존재만으로도 향기가 풍겨나는 라떼빛깔 친구를 만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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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사진을 보고 있자니 느낌이 비슷하다 생각되는 사진이 있어서...^^



< ’알스터 호수 옆 낭만북카페’ 편에서- 함부르크 / p62 >





<호주 에얼리비치에서 / 2010. 08>

북카페인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