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박복한 직업이 의사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에 많아야 열번이 넘지 않을 죽음을 만나는 일이, 일상이니 말이다.
그쯤이면 담담하고 무디어질만도 한데 필자는 생 하나하나에 온 필력을 다해 애도를 표하고 있어 살짝 놀랍기도 했다. 
자판을 두드렸을 손가락조차도 송구스러움을 품은 듯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서 온기가 느껴질 지경이다.

시골의사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필자의 책을 새삼스레 읽게 된 건 엊그제 방영된 TV프로그램때문이다. 
방송인 김제동, 안철수 교수와 함께 출연해, 편안하지만 꽤나 인상깊은 입담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투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비겁자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필자의 짤막한 소견은 
정치, 경제, 사회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강렬한 메세지로 다가온다. 도대체 내공의 깊이가 어느 정도면 
떡볶이를 오물거리면서도 저런 멘트를 던질 수 있을까..?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는 필자가 병원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만나고 헤어진 착한 이웃들의 
착한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병원을 무대로 하면서도 전작과는 달리 ’메디컬 에세이’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다. 
이 책은 그러 내 삶의 무대인 병원에서 만난 이웃들의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숙연한 이야기를 담았을 뿐, 의사로서의 내 역할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책에서 내 소중한 이웃들의 삶에서 결정적 순간들을 지켜본 ’내레이터’의 입장이 될 뿐이다.

사투리가 섞인 필자의 억양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읽어갔다.
당혹스럽게도 첫 이야기부터 울컥 눈물이 맺힌다. 가볍게 경고하자면 공공장소에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감출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마지막 임종의 순간, 큰 아이가 창백한 엄마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 엄마, 잘 가요. 엄마, 참 애썼어요. 우리도 이만큼 컸으니 이제 아빠 보살펴드리러 가세요.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조용히 엄마를 품에 안았다. 그 아이는 절규도 몸무림도 치지 않았지만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엄마’라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이야기를 극적으로 각색한 건 아닐까 싶을 만큼 한편 한편에서 애틋한 사랑과 잔잔한 감동과 매운 꾸짖음이 느껴진다. 
의사가 되고픈 아이한테 뛰어난 의술보다 먼저 새겨야 할 첫째 덕목이 무엇인지 알려주기에도 좋은 책이다. 
부자가 되고픈 어른에게 내 통장관리만이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님을 알려주기에도 좋은 책이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필자의 전작 <아름다운 동행>도 이 겨울이 가기전 꼭 읽어봐야 겠다.



착한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