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의 의지로 과연 할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상처입은 사람들의 경우에 가끔은 그 상처를 일부러 기억에서 차단시키기도 하고

또때로는 오래전 아주 기억에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시간들을 재생해내기도 한다.

서이나님의 글은 [흰가운속사정]에 이어 두번째인데 일단은 감각이 괜찮은것 같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주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것은 김수지님의 [미온의 연인]이었다.

여기서는 남주가 '안면실인증'을 겪고있지만 미온의 연인에서는 여주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며칠전에도 누군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문제는 그럴경우 나는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로 모르겠다는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몰라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내가

별로 인간관계가 별로 넓지않아서 어울리는 사람들이 그닥 많은 편이 아니다.상대방이 나를

몰라보면 기분이 어떨지 잘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기분은 아닐것 같다.

그런데 몇번을 만나도 계속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미치고 팔짝

띌 노릇일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한번, 그래 몰라볼수있지..내 존재감이 약했나..

두번 저번 인상이 별로였네..세번..지금 나 무시하는거야..등등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남주...

 

화려한 결혼식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처음 손을 놓아버린것처럼 여전히 차갑기만 한

여자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래 당신따위 내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주겠어...

 

생전 하지도 않던 화장에 요사스러운 옷차림에 힐까지..비틀거리는 걸음으로 VIP룸을 찾은

단아를 잡아끄는 한남자가 있었다. 잘못 찾은것같은데 어히려 단아를 일행으로 만들어버리면서

룸에서 빠져나가는 남자에게 집중할새도 없이 작전이 시작되고 오직 범인을 놓칠수없다는

일념하에 단아는 몸을 던진다.그리고 그 근방에 사는 애인이 생각났다. 본지도 오래된것같은데

얼굴한번 볼까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거는 단아의 눈에 들어오는 한남자.

'전화받지마..전화받지마..'그러나 그런 단아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전화를 받고 그렇게

단아의 사랑이 끝이 난다. 술에 취한채 옆에 있던 남자와 진한 키스를 나누는 단아...

 

포포그래퍼 태하에게는 안면실인증이라는 질병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그 질병이 엄청난 핸디캡임에도 불구하고 태하는 사람의 동작으로 그리고

느낌으로 모델들을 알아볼수있었고 그래서 태하가 기억하는 모델이라면 특별하다는 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게된다. 그런만큼 태하의 주가는 더 치솟았고..그런 태아에게 스멀스멀 기어와서

자신대신 맞선에 좀 나가달라는 준의 부탁을 태하는 매몰차게 거절하지못한다.

단아역시 나나의 대타로 맞선을 보게되는데 또 그남자다.그런데 이 남자 단아를 몰라보고

대타로 나왔으니 차나한잔 하고 들어가란다.'저눔의 시키 알아보는거야, 못알아보는거야'

 

단아에게는 목숨같은 동생이 있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삶의 버팀목이던 동생이 경찰재직중

살해당하게되자 동생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경찰이 되었다. 동생의 복수를 하기전에는

가슴속에 행복이 자리하면 안된다는 책임의식으로 사람에게 틈을 안줬던 모양이다.

꼬리를 잡는데만도 수개월 이제 인하를 죽음으로 내몰게한 왕손이의 꼬리를 찾을것같은데

그러기위해서는 일단 기자로 위장해 태하의 주변에 있는것이 가장 좋다는 지시가 내려오고..

또 모른척이다. 이런 사람을 놀리는것도 아니고 뭐야..허 장난이 아니고 질병이란다.

 

사람에게 상처입는것이 두려워서 누군가를 기억하는것을 아예 깡그리 지워버린 태하에게 단아라는

여자는 자꾸만 부딪쳐오며 자신을 기억할것을 강요하는것같다.모른다고해도 기억이 나지않는다해도

자꾸만 아는체를 해오던 여자의 움직임을 어느새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소유하기를 꺼려서

그렇지 소유하면 집착하게 되는 자신의 상태를 잘아는 태하는 단아에게서 멀어지려고하지만

자석처럼 이끌리듯 단아를 사랑하게된다. 거짓만 말하지않는다면 사랑은 굳건할것 같았다.

그러나 단아가 기자가 아니라 경찰이라는것을 알게되면서 굳건했던 믿음은 모래성처럼 흩어진다.

 

태하와 단아 두사람이 서로에게 익숙해져가는 과정들이 심심치않게 그려진다.

태하의 주변을 맴도는 혜리의 존재도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단아를 지켜보는 한열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단아로 인해 이제야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태하와 그렇게나 염원하던

동생의 복수를 끝내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는 단아의 어울림이 보기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