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생각없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시선을 붙잡는 출연자들의 모습때문에 하던일을

잠시 멈추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 [렛미인]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성형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측면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모나 체형때문에 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출연자들에게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례자들 가운데 비만으로 고통받는 출연자들이

나온 장면을 잠깐 보게되었다. 비만은 질병이라는 인식보다는 자기절제의 실패로 보여지는

측면이 많아서 그런지 비만인을 바라보는 사회인들의 편견은 그들은 자꾸 움츠러들게 만든다.

[무게- 어느 은둔자의 고백]은 바로 그 비만을 평생 끌어안고 사는 남자의 고백이다.

처음 은둔자의 고백이 흘러나왔을때만 하더라도 대학의 교수를 지냈던 사람이 제자와의

추문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왜 스스로를 고립된 집안에 넣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아서의 고백이 점점 깊어질수록 그가 입은 상처의 뿌리가 드러나면서 이해하게된다.

 

십년동안 아서는 밖으로 나가지않은채 오로지 집안에서만 고립된 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모든것이 주문가능한 상황에서 지내다보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마르지않는

통장잔고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그런 아서에게 변화의 조짐이 불어온다.

시작은 한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전화벨이 울렸다. 고립된 생활을 하는 아서의 전화벨이

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더군다나 아서라는 이름을 콕집어 전화벨이 울리는 경우는

더욱 드문 경우에 속했다. 아서의 집을 울리던 전화벨은 바로 오래전 추문으로 아서를

대학교수에서 밀려나게 만든 샬린이었는데 열일곱살이 된 아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샬린은 아직 아서가 대학교수로 재직하는줄 알고 전화를 건 모양이었으나 아서는

샬린의 그런 오해를 바로잡아줄수 없었다. 마치 입이 딱 붙어버린것처럼...

그러나 샬린의 오해를 바로잡아주는것이 마땅했고 오해가 바로잡아준 후에라도 샬린이

아서를 방문하기를 원한다면 미리 준비태세에 돌입하는것이 옳았다.

십년이란 시간동안 집안구석구석이 쓰레기장을 방불하게 할 정도로 어지로운 모습이라

아서는 청소도우미의 도움으 받기로 한다. 집안으로 사람을 들이는것은 참 오랫만의 일이다.

 

샬린은 술에 취해 있었다. 늘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하고, 이전의 샬린은 켈에게 좋은

엄마이기도 한 때가 있었을테이지만 어느순간부터인가 끝없이 켈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버지가 있던 시절은 조금 달랐었던것 같기도 하지만

그 이후로는 늘 맑음과 흐림을 반복하며 살아온것 같다. 샬린이 술에 취한 모습을 볼

때마다 켈은 운동으로 도망을 쳤다. 야구를 하는것으로 모든 켈을 둘러싼 문제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집에 돌아가보니 집안분위기가 이상하게 음산했고

엄마의 방문에는 이상한 메모가 매달려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반복되는 상황들을 만들어

오던 엄마가 이번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만 것이었다.모든것이 끝나는 무서운 느낌.

 

집안으로 청소도우미를 들이면서 아서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정신없이 너저분한 집안을

보여주는것도 혼자서는 가까스로 거동을 할 수 있을만큼 거구의 몸이 된 자신을 보여주는것도

모든것이 창피할따름이었다. 아직 어린티를 벗지못한 도우미 욜린다는 그런 아서의

모습에도 상관없이 점점 아서의 삶속으로 들어온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공감을

나누는것, 그것은 지난 십년간 아서가 스스로에게서 빼앗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허기진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허기진 마음으로 또 폭식을 하고 그렇게 집안을 은신처로

삼다보니 몸은 점점 더 거구의 몸이 되어가고 한발 나아가는 법을 잊어버리고 아예

싹 기억에서 지워버린듯이 그렇게 지내온 십년이었다.그리고 아서의 그 오랜 폭식뒤에는

어린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가 회복되지못한채 그대로 자리잡고 있었다.

비만인이던 어머니와 어린 아서를 두고 아버지는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않았다.

다만 생활비는 떨어지지않게 보내주었지만 아버지가 떠난후 어머니는 언제이고 아버지가

돌아올것이라는 희망을 놓지않은채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 아서는

급격한 외로움에 더욱더 폭식을 했고 어느새 그의 모습은 어머니를 닮아있게된다.

아버지는 아서를 자신이 사는곳으로 초대를 했고 아서는 아버지의 초대를 받아 가면서

한줌의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아서를 본 아버지는 절망어린 탄식만을 뱉을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버지의 새로운 가족들이 이미 둥지를 튼 채 자리잡고 있었고 어느곳에도

아버지의 마음속조차도 아서가 자리잡을곳은 없었다. 아직도 치유되지않는 상처...

 

켈은 샬린이 남긴 편지를 통해서 켈이 아버지라 믿었던 사람이 친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친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지만 샬린의 거짓말은 처음이 아니었기에 일단 켈을

찾아서 그에게서 진실을 듣기로 한다. 그리고 보는순간 켈은 또다른 켈이 자신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으나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또다른

허탈감이 밀려오는데, 그런 켈의 곁을 지켜주는 이웃사람들과 린지..약간의 오해로

켈은 린지와 헤어질뻔했었지만 어머니의 사망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에 대해

가감없이 린지에게 고백한후 둘의 관계는 평화를 찾게된다. 이제 마지막남은 숙제하나.

아서에게 편지를 보내 사실을 확인하는것..

 

며칠 묵혀두었던 편지를 보면서 아서는 자신에게 굴러온 행운을 모른척 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서에게는 허락되지않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것을 기꺼이 행운이라 생각하며

잡고싶었지만 그것은 그가 마음대로 선택할수있는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편지를 쓰는

아서는 이제 세상밖으로 걸어나올 차비를 마쳤다. 처음에는 전화벨이 울리고 다음에는

초인종이 울리고, 이제는 사람들과 섞여서 세상밖으로 나올 준비가 되었다.

 

처음 [무게-어느운둔자의 고백]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렸던것은 [언터처블-1%의우정]같은

것이었다. 다른 세상에 살지만 같은 허기를 가진 두사람이 만나면서 서로의 허기진 마음을

위로해주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전개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서와 켈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한번도 만나지않는다. 아서와 편지를 주고받는 이는 켈이 아니라 켈의 엄마인

샬린이고 아서를 세상밖으로 끌어내준것은 욜린다였다.그래서 이 소설이 조금 독특하게

읽혔던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내면의 상처를 털어놓지만 그것은 다만 고해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상처를 털어내는것으로도 치유가 되는 과정들이있었다.

이제 혼자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아서는 욜린다의 도움으로 무사히 첫발을 떼었고

린지의 도움으로 켈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숙제를 확인할수 있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는것, 다만 그것만으로도 살아갈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