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내가 못돼먹기는 정말 못돼먹은 모양이라고..

별로 읽을 생각이 없던 책이었는데 다른 인터넷서점에 일시 품절이라는 문구가 보이는 순간

아직 판매중인 서점들을 찾아돌아다니다 결국 카트에 얌전하게 집어넣은 책..

이상하게 홈쇼핑의 매진임박이나 한정수량이라는 말에는 별로 끌리지않는데 인터넷서점에

그것도 다른 책도 아닌 로설들에 있는 일시품절 혹은 절판이라는 문구만 보면 어떻게해서든

구해서 읽고말겠다는 오기아닌 오기가 불끈 솟아오른다. 못돼먹은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누구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저렇게 살신성인의 자세로 의료봉사에 앞장씩이나 서시는데

누구는 못된 심보로다가 못읽게된것같은 책이나 골라다니고 있고..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금산그룹의 회장님을 아버지로 둔 강묵의 속내는 심히 편치않았다.

느닷없는 아버지의 호출로 자그마치 열네시간이나 되는 비행시간을 감수하며 가서 기껏

강아지가 아파서 불렀다는 소리를 하실 요량이면 바로 그길로 돌아서서 나올 작정을 하고

있을 정도로 강묵은 아버지와의 부자관계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호인으로

불리우는 아버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강아지 한마리도 안타까워 하시는 분이셨지만 정작

당신이 그들을 돌보고 있을때 아버지의 눈길을 받고싶은 아들은 외면하시던 분이었다.

감정에 치우치는 아버지를 보면서 강묵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노선을 생각하고 있었고

아직까지 그 결심은 흔들리지않고 있었다. 그때 강묵이 펼친 신문에서 보인 낯익은 여자..

처음으로 강묵의 인생에 패배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그녀 서연교였다.

늘상 이등이라는 위치에 서서 일등인 연교의 뒤를 바라만보고있던 아픔은 하필이면 연교가

처음으로 강묵의 가슴에 설레임을 전해준 첫사랑이라는것과 맞물려 더 큰 상처로 다가왔었다.

고등학교 삼년내내 연교의 뒤만 따라다녔다. 늘상 한걸음 앞인 연교를 한번도 추월하지

못하고 삼년내내 한걸음뒤에 처져서 그렇게 만년이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내야했고

그 고등학교 삼년의 기억은 강묵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암울했던 시간들로 기억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의료봉사자 명단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연교를 보았을때 느낀 감정은...

 

아프리카에 있던 송이사가 건강문제로 귀국하고 그 자리에 아들인 강묵이 대신 가달라는

부친의 요청을 받았을때만 하더라도 당연히 강묵은 재고의 여지가 없을정도로 단호했다.

그러나 송이사의 비서였다던 도비서가 내미는 서류속에서 낯익은 이름을 보았을때 처음의

그 단호함은 어디론가 스르륵 사라지고 일단은 그곳으로 가보는것으로 회유를 한다.

그렇게 내딛은 땅 그곳에서 연교를 만나기전 일단은 준비된 호흡부터 했지만 호텔 어디에도

연교의 흔적은 보이지않았다.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도비서로부터 전해들은

말은 연교가 호텔의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자주 나가 있다는것..사람좋은 송이사는 대체로

연교가 하는대로 내버려둔듯 하지만 규칙과 절차라는 과정은 공연히 있는것이 아니다.

도비서로부터 새로 부임한 이사가 찾는다는 말을 들었을때 연교는 일단 잘못을 시인하고

양해를 바랄 생각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 반가움에 덥썩

소리부터 지르고 만다. 공과사를 분명하게 하자는  강묵에게 어쩐지 서운함을 느끼는 연교.

 

처음 보았을때부터 석영은 연교에게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반짝이는 빛같아서 석영의

한마디에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고 이 오지까지 와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그런 연교의 석영바라기 사랑을 아는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었다. 연교가 석영을 바라보는

것은 소녀가 연예인을 바라보며 동경하는것과 같은 모양새라고..석영이 아내인 은혜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때도 그리고 이혼을 결정했을때도 연교는 한번도 석영이 불행하기를

바라지않았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석영을 바라보는 연교의 사랑을 연예인을 동경하는

것과 같은 모양이라고 했던 뜻을 강묵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해하게 된다.

어딘지 모르게 까칠하고 거리감이 생길것 같았던 강묵이 연교를 대신해서 병원의 잡일을

도와주고 거리에서 다친 아이를 제몸 아끼지않고 구해주는것을 보았을때 연교의 마음은

점점 더 깊어만 진다. 그리고 이제 세상에 혼자이던 연교가 마음을 내릴곳을 찾는다..

 

강묵의 입장에서 보면 모자랄것 하나없는 한번도 비교경쟁에서 져본적없는 자신이

하필이면 지가 마음에 담은 연교에게 늘 진다는것이 자존심 꽤나 상하는 일이었을듯 싶다.

그러니 꾸역꾸역 아프리카까지 가서 연교의 상사노릇 해보려고 그렇지않았겠나.

그런데 막상 연교를 야단치는 상사노릇을 하다보니 기분이 썩 좋을것도 없더란 말이지.

어려서 좋아했던 여자를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으니 호감의 불씨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인데다 지가 바라보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바라보는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면

더욱더 불길이 타오를것은 자명한 일이고 그러다보니 결말이야 뭐 당연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