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당신의 집에 그녀가 스며든다.
스며든다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것이 그녀는 아무도 해칠 생각이 없이
다만 전기만을 섭취하면서 잠시 당신이 모르는 어느 공간에 있기때문이다.
당신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는건 오로지 전기요금고지서 그것뿐.
그것이 아니라면 그녀가 당신의 집에서 기거하다 사라져도 당신은 그녀라는
존재가 존재했었는지조차 모를것이다. 그렇게 제이가 와이의 공간에 스며들었다.

와이가 제이의 정체를 눈치챈것은 어마어마한 전기요금고지서에 적인 금액때문이었다.
단칸방에 가까운 와이의 공간에서 전기세가 삼십만원이 나온다는것은 기계의오류
밖에는 해명할 방법이 없지만 한전에서는 새로운 가설을 내놓는다.
누군가 와이의 공간에서 전기를 훔쳐쓰고 있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가까스로 범인을 잡게 되었는데 그 범인이 바로 제이다.
몸에 전기가 흘러 가까이 오면 안된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기세 삼십만원이라는 고지서는 제이의 말을 믿으라고 하는것 같았다.
가로등이 우는 시간에 태어났다는 제이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와이에게는 만지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제이보다는 당장의 전기요금이 문제였다.
전기에서 쓸쓸한 맛이 나서 와이의 공간에 머무르고 싶다던 제이를 치울곳을 
생각해 낸 와이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젠장 케이란 녀석 또 시작이다.

왜 하필 케이라는 녀석이 자살을 시도할때마다 그걸 발견하는게 와이인지 
참 모를 일이다. 와이입장에서 보면 돈많은 자식이 할짓이 없어서 죽고 싶어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않는데 케이라는 녀석은 사는게 더 힘이 든단다.
케이에게 제이를 맡기고 떠나려는데 제이가 싫은 눈치다.
왜 그게 또 그리 반가운 마음이 드는지 알 지 못할 일인데 자세히 보니 케이의 귀가없다.
아니 자기가 고흐도 아닌데 왜 귀를 자르고 야단이냐고?
귀를 자름으로서 그나마의 자유를 얻었다고 하는 케이를 보면 부자가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것도 같다.

그렇게 제이의 집을 찾아 열쇠공인 와이와 귀하나를 자르고 자른 귀를 애지중지하는
우울증에 심하게 걸린 케이가 여행을 떠난다.
와이는 늘 케이가 자신의 여자친구들을 욕심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케이는 여자들의 핑계였을뿐 자기가 먼저 손을 내민적은 없다고 한다.
제이를 바라보는 케이의 눈이 딱 그렇다. 와이의 것을 욕심내는 그 표정.
그렇게하면 우울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는듯이 여겨지는 와이의 눈빛.

제이는 도시로 나왔지만 도시에서는 그녀도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걸 알아버린다.
가질수가 없는데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욕망하는 그녀는 다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무욕의 상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한다.

"어떤 작가가 그랬어.무욕보다 더한 만족은 없고 만족할 줄 아는 만족만이
영원한 만족을 준다고. 도시가 달콤한 건 사실이지만 그 달콤함이 더해지면
쓰기 마련이야"p238

여행은 끝났고 제이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녀의 부재를 알리는건 
칠백육십원이 적힌 고지서와 내부가 비어있는 플러그.
그녀는 제이는 정말로 전기를 먹고 살았던 것일까.
전기요금고지서와 플러그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 지 헤매는 와이.

영화 [빈집]에서는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집을 차지하고 
앉아 음식을 먹고 빨래를 하던 주인공이 있었다.
그러더니 이번 소설에서는 빈집에 들어와 전기를 먹고 사는 그녀 제이가 나온다.
문득 집을 비우고 다시 찾게 되었을때는 다시 집안을 한번 쯤 둘러보게 될것 같다.
나도 모르는새 빈 공간에 누군가 왔다 갔다는 흔적을 찾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