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 위로받고 싶다.

   우리들의 삶은 늘 우울하다. 휴일의 무료함을 안겨주는 석양이나 쓸쓸한 가을의 오후 풍경을 바라볼 때면 어쩐지 내 모든 것이 서늘해진다. 시간을 버리듯 따라갔던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꼭 그런 느낌이었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 후회할지 모르던 철없던 중학생시절이었던 것 같다. 깊어가는 토요일 밤,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어느 채널에선가 화면 가득 모래바람이 일렁이고 있었고, 크레디트가 올라 갈 때가지 나도 모르게 그 영화에 빠져들고 말았다. 영화 제목도 모르고서. 그때는 내가 이 영화의 처음부분부터 본 것인지, 중간부분부터 본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내가 바그다드 카페에 앉아 있었던 것은 중반부부터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바그다드 카페에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을까.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와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돌려도 보고, 옆으로도 누워 보고, 엎어져 보기도 했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눈을 떴을 땐 팔 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아침이었다.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일상처럼 여겨지는 시계 바늘 소리는 두 귀를 훑고 지나갔다. 내 지나간 시간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생활의 무기력함 앞에 나만의 추억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만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열한 번째 손가락이 없으므로 나는 그저 <바그다드 카페>를 꽤 여러 번 보았구나 생각한다. 이제는 내 머릿속에 들어박혀 있을 정도다.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면서도 내가 지금 이 순간 무얼 해야 되는 거지? 하는 고민을 할 때마다 나는 바그다드 카페에서 숨어 지내곤 했다. 불친절한 브렌다의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창밖에서 신경질적인 브렌다의 통성을 지운 건 자동차 바퀴가 성을 내며 일으킨 모래 먼지였다. 브렌다의 멈출 줄 모르는 짜증에 급기야 브렌다의 남편이 집을 나간 것이다. 울고 있는 브렌다란 여자, 아직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걸까? 그건 나 홀로 세상에 고립되었다는 존재의 빈 자리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야스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타났다. 태양을 등 진 채였다. 야스민 또한 브렌다처럼 남편과 다툰 뒤의 외딴길이었다. 이처럼 야스민과 브렌다, 그녀들은 영화의 초반부터 쓸쓸한 존재로서 외로움을 표상한다. 브렌다는 쌀쌀맞은 눈초리로 야스민에게 “하룻밤이죠?” 하고 묻는다. 여행자 수표에 사인을 하던 야스민은 “아직 몰라요!” 하고 대답한다. 그녀들의 첫 교감이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빈자리를 망연히 바라본다. 커피향이 조금 묻어 있다.

   난 늘 위로 받길 원한다. 가슴 안에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고백하건데 나는 떠나시는 선생님 앞에서 당당히 책상에 올라 설 수도 없고, 친구의 노트를 위해서 먼 길을 떠날 자신도 없으며, 바다를 보지 못한 시한부를 위해 도망자의 노릇을 할 수도 없다. 이렇듯 작디작은 일상 앞에 내 무릎은 몇 번이고 접혀진다. 하지만, 이런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이나 주변의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타인의 눈에 나는 타인이고, 누군가에게 타인일 나의 눈엔 영화 속 주인공 또한 타인일 뿐이다. 너와 나, 우리에겐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고 믿어왔다. 저기에 있는 야스민과 브렌다, 어쩐지 나를 닮았다. 그녀들이 울며 웃는 모습은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비가 올 때 커피를 찾는다. 어쩐지 내게는 커피가 우울함을 없애주는 것만 같아서다. 요즘 내 기분은 우울했다. 그런데, 행복한 우울이라면 너무 역설적으로 들릴까? 발코니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데,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빗방울은 내 뺨과 귓불, 쇄골까지 적셨다. 축축했지만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였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으면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것을 실감하는 것은 어찌됐거나 즐거운 일이다. 떠나간 사람의 빈 자리, 어쩐지 듣기만 해도 쓸쓸해진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서워 영원히 사람을 안보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얼마 전 드라마의 대사 중에 사람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산다고 했다. 우리는 또한 헤어질 걸 알면서도 만나지 않는가. <바그다드 카페>란 영화 앞에서 나는 자못 솔직해진다. 차마 야스민과 브렌다 곁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이 영화가 내게 인생의 전환점이나 삶을 넘어서는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또한 개인적인 내 생각으로는 영화 한 편이 우리네의 인생을 뒤바꾼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바그다드 카페>가 내게 준 것처럼 누군가에게 “안녕!”하고 먼저 인사를 건넬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