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처음 보았을 때, 이거구나 싶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나는 내 소설에게 혹은 내 삶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주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먹먹한 마음과 숨 쉴 수 없는 공간성을. 이 영화가 나온 이후로 영화와 같은 제목의 주제곡은 여러 가수들에게 리메이크 되어 지금까지 우리의 귓가를 감싸 돌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만인데, 아무렇게나 살면 어떠랴. 그냥 나 편한대로 살다 가면되지, 하고. 우리가 예술을 지망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뚜렷이 전달되거나 설명하기는 어렵다. 소설가 전경린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무당과도 같아요. 쓰지 않으면 내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거든요. 죽기 싫어서, 아니 살고 싶어서 쓰는 거죠.” 영화 속에서는 시한부 인생을 지닌 남자가 등장한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나 절망은 묻어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뿐이다. 예술가들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얼마 전 유행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나온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살잖아…….” 인간이란 가끔씩 자신의 죽음을 망각하곤 하지만, 그걸 잊고 살지는 않는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가끔 죽으면 평생 잘 텐데 뭣 하러 잠만 자냐는 말을 하기도 하니까. 다시 말해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란 얘기다. 죽지 못해서, 아니 살기 위한 어떤 이유가. 우리가 하는 손짓과 눈짓에도 삶이 묻어나게 되어 있는데, 하물며 예술이란 창작행위에 아무런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미술학부 학생 한 명만 잡고 그림을 왜 그리느냐하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나오면 나는 앞으로 문학을 하면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귀까지 자른 고흐의 그림을 보고 어떻게 붓을 놓을 수가 있겠어요? 해바라기처럼, 고흐에게 진 빚 때문에라도 계속 그려야죠.”

  

   타인의 눈을 의식해야만 한다. 나도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하면, 차디찬 골방에 틀어박혀 담배만 피다가 결국엔 폐병에 걸려 죽는 하찮은 존재라고.(물론, 현실적으로 예술을 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들, 심지어 주변 친구들까지 다들 걱정을 한다. “소설을 뭐 하러 써, 돈도 못 버는데……. 네가 무슨 취직이야? 너도 졸업하고 갑갑하겠다.”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충만해져 있는데 주변에서는 내 인생이 이미 바닥을 들어냈다는 듯이 불쌍히 여기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백날 설명해봤자 그들의 인식에 깊이 뿌리박힌 예술가에 대한 관념과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다행이다. 누군가 “글(소설)을 왜 써?”하고 물으면, 나는 대답을 못한다. 가끔 “그냥 입학해버렸는데 어떻게 해, 그렇다고 F학점 맞을 수는 없으니까 써서 내야지.”하고 말해버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예술을 하는 내 인생에 대한 확신이 없다. 잘나가는 신경숙이나 김훈 같은 소설가 이름 들먹이면서 책 하나 내면 몇 억씩 벌수도 있다고 떳떳이 말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게 두려움은 아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예술가가 되는 건 타고난 재능이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남들의 동정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 길이다란 포부를 꺾지 않는 고집, 그것이 필요하다고. 내 멋대로 하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