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 간 김에, 자료실에서 최규석 만화책들을 검색해 보았다. 여러 권 있으나, 대출이 된 건지 제 자리에 없었고 '100도씨' 만 눈에 띄었다. 요즘은 최규석이 좀 궁금하다. 또 하나 놀란 건, 영화 '밀양'의 원작이던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 속 삽화를 이 사람이 그렸다는 것,우후~다.

 

그 때 그 그림들, 갑자기 선명해진다. 괴수에게 아들 잃은 엄마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아, 그림만으로도 섬짓했었다. 역시 보통 만화가는 아닌가보다 생각하며'100도씨'를 꺼내들었다.

 

5.18 민주항쟁이 이야기와 그림의 소재다. 어디다 내놔도 부족함 없는 대들보인 대학생 아들, 그 아들이 운동권 학생이 될까봐 안절부절, 전전긍긍인 엄마, 보통 엄마들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우리 아들만큼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얻어 행복하기를, 험한 일에 끼어들지 않기를, 그렇게 소시민이던 엄마가, 데모로 감옥에 갇힌 아들로 인해 살인고문,군부독재타도를 외치는, 의식있는 시민으로 거듭난다는 서사를, 짧지만 핵심있게 잘 담아냈다. 그렇게 민주화의 불씨는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한 삶의 문제였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 사람의 마음도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 100도씨 민주화 고지를 향한 부단한 열정과 희생, 총칼로 무장한 그들의 고문과 억압이 절정일때도 100도씨로 가기 위한 투쟁은 멈출수가 없었다. 99도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투사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만큼이나마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학교의 역사 보충 교재로 전국 학교에 배포되었다고 하는데,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 이야기, 딱딱한 몇 줄의 인쇄체보다 훨씬 강렬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지키려는 노력없이는 어느 날 사람 좋아보이는 어느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지도 모를'일이다.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옛날 친구, 현미가 생각났다. 삼복더위 장마철에 며칠씩 경찰에 쫒기어 숨어지내다가, 쉰내 쩐 몰골로 우리집으로 옷 빌리러 숨어 들었던 현미, 옥상으로 쫒겨갔는데 전경들이 무더기로 집어던진 지랄탄에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 경찰서에 끌려가 폭언과 폭행을 당했던 이야기 ... 생생해졌다. 운동권이던 그녀의 오빠도 어느 날 기차길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나도 함께 충격과 슬픔에 몸을 떨었었다. 현미의 소개로 그 오빠와는 펜팔로 소통하던 사이었는데.... 어쨌거나 참 무섭고 숨막히던 시절이 있었다.

 

두 권째 읽은 최규석의 작품이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빌리며 어떤지 살펴 보는 중인데, 아무래도 벌써 난, 그의 팬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의 그림이 좋고, 서사가 좋고, 그래서 느낌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