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하기엔 몸과 마음이 애매한 날, 애매한 차림으로, 우연하게 만난 책이 바로 '울기엔 좀 애매한' 이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손에 잡힌 책이었으나, 읽다보니 애매했던 기분이 일목요연, 상쾌해진다.

 

사실 난 만화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때 부터 만화책만 보면 머리가 띵하고 그 많은 그림과 말풍선을 따로또같이 조합시키려니, 눈과 머릿속이 막 산만해지면서 두통유발. 유난히 정독하는 습관인지라, 만화책또한 정독하려니, 왠지 나와 맞지 않았던 터. 그 후 만화는 소가 닭보듯, 그랬었다. '웹툰' 이란 말도 지난 영화 '이끼'에서 처음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감상하기에 그리 애매하지가 않다. 몇 장 넘기더니 내가 막 킥킥 댄다. 만화가 최규석, 남자다운 포스에 흡인력있게 생긴 모습도 좋지만,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니, 그의 개성을 나타냄인데, 어쩐지 사람 보는 눈이 따뜻하고 거기다 유머러스까지 한 문체라니, 일단 그에게 한 발작 홀릭이다.

 

초강력 미술학원에 미대 입시 애니반. 이 집단에서도 청춘들의 발목을 잡는 건, 역시 돈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돈보다 더 큰 힘, 꿈이 있다. 이 만화가 뿌듯한 것은,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꿈에 도전하는 입시생들의 끈기가 파릇파릇하기 때문이 아닐까. 재능과 젊음이 있기에 그 꿈을 놓치 않는 한, 꼭 이루리라 믿고 싶다.

 

이름만 원빈인 강원빈은 재능은 출중하나 가정 형편상 학원비도 제 때 내기 힘들다. 그러나 대학 입시 6개월 남기고 학원에 등록한 것은 참 잘 한 일이라 실력상승하는 순둥이 수능생이다. 작년 좋은 대학에 좋은 점수로 합격했으나 등록금을 마련못해 재수 중인 은수, 그도 역시 올해는 꼭 합격과 등록을 마치리라 틈새 알바를 하고 붓을 놓지않지만... 어쩐지 그들의 어깨는 무겁고도 가늘게 느껴진다.

 

(상놈)천민 자본주의를 비난하면서도 그야말로 천민양심으로 사는 서점 주인이나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돈과 맞바꾸는 종화선생, 돈받는 애들 일이라면 무엇이든 솔선수범하는 원장 등, 검은 속과 손을 가진 어른들의 개입은 어린 그들 앞에 더욱 높은 벽을 만들고 만다. 돈이 힘이고, 돈이 재능이라는 자본사회에서 없는자가 물러날 수 밖에.

 

그러나 절망스럽지 않다는것, 어떻게든 되겠죠, 그들의 어눌한 한 마디와 털털한 웃음과 몸짓때문인가. 시종일관 아이들의 능력향상을 위해 열성을 다하며 마지막 양심은 버리고 싶지 않은 태섭선생 때문인가. 역경을 웃음으로 승화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참 좋았다.

 

등장인물이 대부분 고등 수능생이다 보니, 그들의 참신한 은어나 말투가 그대로 반영되어 더욱 신선했다. 책 뒷 편, 작가노트 편에 보면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드러나는데, 요즘 고등생들의 말투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그들 무리를 뒤따르며 엿듣고 엿보았다는 대목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 송새벽, 순정만화가 송새벽은 여학생들의 소품을 준비하고 그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해서, 변태로 잠시 오해받기도 했던 장면. 그러고보니 만화가도 그렇게 발품 파는 수고가 있어야 훌륭한 작품이 탄생되겠다는 생각. 생생리얼.

 

'울기엔 좀 애매한'를 계기로 나도 만화를 읽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우선 최규석의 작품을 좀더 읽고 싶은 호기심이 막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