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경리씨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분이 원주에서 손수 일군 먹거리로 해 주던 그'집밥'을 그리워하고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을 그리 슬퍼하더니 그 걸음 뒤따라 가신 작가 박완서씨. 지금쯤 다시 마주앉아 문학이며 이승에서의 이야기로 따뜻한 날들 보내고 있을까. 이렇게 큰 별들의 짐은 문학계에서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큰 어른을 잃은 것 같아 생각할수록 아쉽다.

 

박완서(1931-2011)

책을 낼 수 있어서 기쁘고 그것을 자식들에게 뽐내고 싶다던 분이다. 또 글을 쓸 기력이 아직 남아 있어서 기쁘다며 그 동안 쓴 글들을 묶어 펴낸 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그러나 이 책이 그녀의 마지막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녀에게 문학은 '어려울 때마다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구한' 희망이고 구원이었다고 고백할 만큼 삶의 버팀목이었다. 개인사의 아픔을 딛고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가질 수 있었던 것 또한 창작에의 열렬한 애정 덕택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 시대상과 지역문화 (그녀의 고향)를 생생히 알 수 있어서 좋다. 작가도 고향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즐거움과 그리움이 넘쳐난다. 또 6.25전쟁의 체험과 이후의 불행은 여러 소설에 반영이 되어 있으니 그 또한 우리 현대사의 간접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전쟁의 후유증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를 담백하고도 신랄하게 비판하여 놓은 작품들 모두가 주옥같으니 어찌 그 분의 업적을 쉽게 잊을 수 있으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작품이 나왔을 때던가.

그녀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무리 봐도 엄마뻘 되는 그 분의 유년 생활이 16년 동안 시골에서 살았던 나의 어린시절과 어쩌면 그리 닮아 있던지.

 

옆에 있던 사람에게 왜 그럴까 물었더니, 아마 박완서씨가 부자로 잘 살았거나 혹은 네가 가난하게 살았거나가...아닐까해서, 그런가? 그런가보다하고 박장대소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격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공감대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 그녀 작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와 닮은 습관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가는 항상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하는 벽이 있다고 한다. 나이가 있으니 밤새 못 깨어날까봐, 혹은 외출해서 돌아오지 못할까봐,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이 집을 방문했을 시, 남부끄럽지 않기 위해 항상 뒷자리를 정갈하게 하는 습관. 어쩐지 그 분의 성품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나도 요즘들어 그런 버릇이 생겼다. 박완서씨는 연세가 있어서라고 하지만, 나는 하도 세상이 험하니,언제 어느때 사건사고를 접할 지 모르니, 유비무환으로 집정리를 하고 외출하려고 노력한다.

유사시, 누가 우리 집을 대신 와야할 때, 나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 설거지통도 비우고

빨래통도 비우고 침실 이불정리도 하고 또 벗어놓은 옷도 개어놓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장난스럽게 그 분을 향해 '찌찌뽕'이라도 외치고 싶은 것이다.

 

겉표지가 작가의 미소를 닮은 듯, 예쁜 이 책 안에는 그녀의 다양한 신변잡기가 있지만, 특히 노년에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한 시골마을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여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그 외에도 후배들 책이나 본인의 작품 이야기, 가족이나 작가 선후배 이야기, 문화 다반사, 사건 사고에 대한 비평이나 시사, 여행 에피소드 등. 그 연세에도 다방면에 식을 줄 모르는 관심을 보이며 끝까지, 작가적인 열정을 놓지 않았던 분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떠났지만, 우리 곁에는 그녀의 작품들이 있으니,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나만의 느낌은 아니겠지. 그래 참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참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