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등산로 따라 걷다보면 색색으로 찬란하다. 어제보다 오늘 더 찬란하다.

 

실내 헬스장을 그만두고 산으로의 운동 선택은 탁월했음을 칭찬하고 싶다. 특히 지금처럼 자연이 옷을 갈아입는 때는 더욱이. 그 눈부심이 자꾸 나를 부른다. 그래서 요즘은 운동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운동을 간다기보다 그 빛깔이, 그 봉오리가 어제보다 얼마큼 변해있을까하는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 줄곧 터져나오는 한 마디. 아, 찬란하다. 찬란해.

 

 

'끌림'의 작가이자 시인인 이병률.

그의 시집 '찬란'에서 그 말을 배워서는 자꾸 써먹는 것이다.

50여 편이 실린 시집을 묶으면서 시인은 한 편마다 피와 땀을 담았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을 분만에 비유하기도 하니, 그만큼의 노고가 고스라니 담겨 있을 것이나,

 

무정하게도 나는 지금 딱 한 편만을 애지중지하고 있다. 시기적절하게 때를 잘 만나 그냥그대로 끌리는 '찬란'

 

때가 되니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고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꿈틀뾰족 새싹이 돋고 분홍,하양,빨강으로 꽃잎이 쑥쑥 자라 향기를 뿜어낼 때 나는 그 앞에서 찬란을 되풀이한다. 그 말 외에는 벙어리가 된 것처럼, 다른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한참 더 눈부신 찬란에 빠질테지. 그리고 또 연록에서 담록으로 진록으로 변해가고 시간이 흘러 형형색색이던 이파리가 질 때쯤 나는 그의 시집에서 또 그 시간에 어울리는 또 다른 시를 찾아, 애지중지할테지.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를 읊거나 '고양이가 울었다'를 읽으며 이별이나 스산함을 오롯이 느끼겠지. 그때 그럴망정 지금은 찬란을 워밍업하는 4월과 절정이 될 5월을 맞으며, 다른 일은 덮고 급한 것이 찬란예찬이려니, 실컷 찬란에 빠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