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브롱 산에서 양치기를 하는 목동은 사람구경을 할 수 없지요. 보름에 한 번씩 주인집에서 식량을 싣고 오는 노라드 아주머니나 꼬마 미아로가 오는 날만 손꼽으며 양들과 생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면 관심사는 오직 하나.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관한 소식. 한 번도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붙여본 적은 없죠. 주인집 딸이니까요.그저 먼 발치에서만 보았을 뿐에요. 도도하고도 아름답고 사뿐한 모습.

 

아가씨에 대한 관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이런 저런 안부들을 묻습니다.

'그런 것들이 보잘것 없는 목동인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 때 내 나이 스무살이었다고. 그리고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그 때 내 나이 스무살이었다고'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 스무살은 왠만한 것들이 용인되는 나이가 아닌가요. 심지어 객기마저도 '젊으니까,젊어서 한때' 라고 이해하는 판에, 사랑인데요. 티끌하나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아가씨를 향한 사랑요. 스무살은 그 어떤 사랑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나이이며 그런 목동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보름치의 식량이 오기로 한 날, 소나기가 내렸고 식량을 실은 나귀 방울소리가 늦게서야 들려옵니다. 그런데 놀랄 일은, 그 나귀를 몰고 온 사람은 노라드 아주머니도 미아로도 아닌, 바로 주인집 아가씨, 꿈에서도 그리던 스테파네트 아가씨였다는 것이죠.

 

세상물정 모르고 천진스럽기만 한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목동이 사는 오두막을 둘러봅니다. "그러니까 여기가 네 방이란 말이지? 여기서 혼자 밥도 먹고 잠도 잔다는 말이야? 얼마나 외로울까. 그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고 무슨꿈을 꾸면서 잠이 드니?" 명랑하고 호들갑스러운 아가씨 말에 목동은 속으로 대답합니다. '아가씨, 바로 아가씨를 생각하면서 지낸답니다...' 이것은 목동의 진심인 것을요.

 

"잘 있어, 목동아." 꿈길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는 아가씨.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나귀 발굽 밑의 돌멩이가 내 심장 위에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우두망찰해진 목동,아마 더 커져 버린 그리움에 마음을 가눌 수 없었을거에요. 그 돌이 자신의 심장을 치는듯 아프고요. 목동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아가씨는 그렇게 무심히 떠나버리는데, 해질 녘이 다 되어 아가씨는 다시 나타나지요. 소나기로 소르그강이 불어났기 때문에요.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것 같은 아가씨를 위로하는 목동 "아가씨,7월의 밤은 짧아요. 조금만 참으면 아침이돼요."

 

정성껏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목동은 오두막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요.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잠을 이룰 수 없던 아가씨는 밖으로 나와 하늘빼곡한 별들을 발견합니다. "어머나, 많기도 해라!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이렇게 많은 별은 본 적이 없어. 너는저 별들의 이름을 아니?" "그럼요, 아가씨. 자 보세요!...." 목동은 그렇게 한없이 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목동의 어깨 위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잠이 든 아가씨, 그녀를 아침이 올 때까지 지켜주지요. '나는 수많은 별들 가운데 가장 가냘프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뤼브롱 산에서 외로이 양치기를 하던 스무살 시절, 그 목동은 지금 몇 살 쯤 되었을까요. 알 수 없지요.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고 가끔, 소나기가 내리거나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날에는 아마도 그 날 밤을 생각할지 모릅니다. 분명 스테파네트 아가씨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을거에요. 그녀는 지엄하신 주인댁 따님이고 '나'는 목동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때를 회상할때마다 행복한 미소를 짓겠죠.

 

'별'은 너무도 멀리 있어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눈부시고 또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니 목동에게 있어 그 '별'은 스테파네트 아가씨라 할 수 있겠지요. 그처럼 가슴 안에 별처럼 빛나는 사람 하나쯤, 간직하고 산다는 것,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요. 목동도 별만큼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그런 추억을 안고 있기 때문일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