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단편을 읽기 전에는 기대하는 것이 있다. 시종일관 긴장이 팽팽할 것, 해학과 풍자가 있을 것, 그리고 여운이 남을 것.

 

아홉 편의 단편이 실린 김애현의 '오후의 문장'

내가 바라는 것이 비교적 적절하면서도 해학적인 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아마 등장 인물들의 속성 때문인 것 같다.

 

두드러지게 흰 피부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놀림을 받는 광채, 난쟁이 아들과 두 다리가 없는 아버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만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노인, 경제적 무능으로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대필작가, 실종된 아들을 기다리며 그 집 주변을 4년 째 맴도는 엄마, 유부남을 사랑하고 체념하는 여자,사촌지간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야기 등

 

그 중에서 유난히 여운이 남는 두어 작품은 '빠삐루파,빠삐루파' 와 '래퍼K'

 

'빠삐루파,빠삐루파'는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난쟁이로 대표되는 소외된 계층의 빈곤한 삶. 이 작품에서는 두 다리를 잃은 (추측하자면 험한 현장의 일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성인 난쟁이 아들이 주인공이다. 기저귀를 착용해야하는 아버지를 위해 무엇이든 돈이 되는 일을 해야하지만, 신체적 결함으로 취직을 할 수가 없다. 겨우 들어간 곳은 어떤 프로덕션의 FD보조. 말이 좋아 보조이지 그런 홀대와 막노동이 따로없다. 그리고 턱없이 박봉이다.

 

'나 같은 FD보조는 받는 만큼 일해서는 안된다. 물론 일하는 만큼 받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적은 돈이라도 꼬박꼬박 받으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적게 받는다고 일도 그에 맞게 했다간 신참내기 보조에게 일을 뺏기기 십상이다.' (본문중에서)

 

십오분짜리 유아프로그램의 주인공 빠삐루파 역을 따내지만, 열악한 촬영현장과 그 탈로 인해 생긴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은 결국 아토피를 일으킨다. 탈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신체불편한 아버지를 부양해야한다. 그 기저귀 값을 생각하면 탈을 놓을 수가 없다.

 

이것이 어찌 빠삐루파만의 일이겠는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 나라의 모든 가장들의 고통이며 인내일 것이다. 그런 생각에 자꾸 연민이 생기는 작품이다.

 

'래퍼K'

이 작품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그 노랫말은 그 당시 가출 청소년들에게 많은 귀감을 주었고 그래서 거리를 헤매던 많은 아이들을 집으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노래, 컴백홈.

 

래퍼K는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와 랩을 주고 받은 사람이면 모두 자신을 믿고 긍정하게 된다. 성적을 비관하는 소녀에게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정폭력 남편에게 시달리다 자살을 결심한 주부에게 희망을... 그렇게 래퍼K의 랩은 기적처럼 종교처럼 일종의 치유제가 되는 것이다.

 

아홉 편의 이야기는 그렇게 야단스럽지도 경쾌하지도 않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이야기와 정서가 섬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