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몽고메리의 <앤>전집을 선물로 받아놓고 10권짜리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먼저 읽기 시작한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블루 캐슬>.

29살의 노처녀 밸런시는 예쁘게 생기지도 않았고, 집안 형편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며, 자기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닌 인습에 사로잡힌 집안에서 엄격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하루 세 번 정해진 식사 시간을 놓치면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정해 놓은 날짜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추워도 난방기구를 켤 수 없는 집. 여유롭지 못한 살림때문에 친척들의 눈치만 보고 하고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없는 삶. 더구나 예쁜 사촌과 늘 비교당하며 시집 못간 설움에 하루하루 살고 있던 밸런시는 어느 날 심장이 아파 병원에 가게 되고 자신이 1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 그 후 그녀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짜피 1년 밖에 살지 못할거라면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살아보자' 싶은 마음에 엄마의 말도 안되는 억지에 반항하고 친척들 비위 맞추던 일도 그만두고 갑갑한 집을 떠나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는 집에 가정부로 취직을 하게 된다. 그녀의 엄마와 친척들은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울고 매달려보지만 밸런시는 더이상 그녀가 살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바니라는 마을의 악명높은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하며 그의 섬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블루캐슬'을 만나게 된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자신만의 성 '블루캐슬'이 바로 그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니는 알고보니 엄청난 갑부의 상속인이었고, 밸런시의 진단결과는 다른 사람과 바뀐 것이라 행복하게 살게 된다.

어찌보면 너무나 간단한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의 감수성과 표현력은 정말 예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단순히 연애소설이 아니라 밸런시가 인습을 깨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성장소설의 느낌이 더 강하다. 간만에 지친 마음에 행복함을 안겨주는 좋은 책을 만났다.

나도 나만의 블루캐슬을 갖고 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밸런시의 친척들처럼 나도 현실에 안주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까를 더 신경쓰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기 보다는 남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하고 있는 내모습이 조금은 답답하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도 나만의 뭔가를 찾으려 노력하면서 살아야겠지. 무엇이 나의 블루캐슬이 될 수 있을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