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예술이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 이 책은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동양 예술 정신의 기본 내용이 되는 것들을 살펴본다. 크게 음악과 미술에 관련된 것과, 이론이나 학설로는 유가와 도가의 예술 철학을 그 배경으로 소개한다.

 

동양의 전통적인 것은 서양의 그것과는 크게 달라 보인다. 음식, 옷, 집, 길, 우물, 숟가락, 책, 모자, 장신구 등 생김새나 사용 방법이 달랐다. 또한 부모와 자식, 부부, 친구 등 사람들 사이의 예절이나 세상을 보는 눈, 종교적인 생각 등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생각과 태도도 다르다. 동양의 음악과 미술 등 예술 역시 서양과 차이가 있다.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이들을 동양과 서양 각각으로 분리해서 가르치고 공부하는데, 이는 그 출발점, 재료, 기교, 학습 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 예술이나 서양 예술이나 예술이 지녀야 할 불가결의 요소는 있다. 바로 아름다움, 즐거움, 자유, 창조성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미(美), 악(樂), 풍(風), 유(遊), 교(巧), 신(神) 등 총 6가지 주제로 동양 예술을 살펴본다.

 

1장 ‘미(美)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는 ‘이왕이면 다홍치마’의 의미, 아름다움과 양羊(<이양도>,<설문해자>,<논어>),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노자>, <장자>, <미인도>) 등을 이야기한다.

 

2장 ‘악(樂) 즐거움을 노래하는 음악에 빠지고’는 음악은 즐거운 것(<설문해자>, <중용>), 덕을 노래하는 음악(<예기>, <시경>, <논어>), 예를 노래하는 음악(‘주자’, ‘정이천’, <경국대전>, <악학궤범>), 백성과 함께해 더욱 즐거운 음악(<용비어천가>) 등을 이야기한다.

 

3장 ‘풍(風) 바람 따라 들려오는 소리 한 줄기’는 ‘땅의 소리, 하늘의 소리’(김홍도<군선도><송하선인취생도>), ‘하늘의 즐거움을 노래하다, 함지의 음악’(유가<종묘제례악><문묘제례악>, <장자>), 최고의 음악은 즐겁지 않다(도가) 등을 이야기한다.

 

4장 ‘유(遊) 거닐고 헤엄치고, 이만한 놀이가 없어라’는 봄나들이 간다(수 전자건<유춘도>, 송 장택단<청명상하도>, 신윤복<연소답청>, <논어>),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기(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장자-소요유>, 강희안<고사관수도>), 물고기의 즐거움(작가 미상<어락도(장자와 혜시)>, 북송 유채<낙화유어도><군어희조도>,), ‘자유를 꿈꾸는 나비, 화폭에서 날다’(신사임당<초충도>, <십장생도>) 등을 이야기한다.

 

5장 ‘교(巧) 기교와 서투름, 모두에게 아름다움이’는 먼저 바탕을 희고 깨끗하게(<논어>, <시경>, 송 정사초<묵란도>), 타고난 바탕과 문화의 조화(청 해강<산수도>, 정섭<묵죽도>), 서투름의 아름다움(김정희<부작란도>),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어(<성경>, 정선<인왕제색도><정양사도>, 문청<누각산수도>, 조희룡<매화서옥>, 강세황<영통동구><옥호정도><무기연당도>) 등을 이야기한다.

 

6장 ‘신(神) 정신 통일과 잊음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니’는 소중한 것은 전해 줄 수 없다(<장자>, 전기<매화초옥도>),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안견<몽유도원도>, 한석봉<한호유문>), 마음 비우기(<장자>, 장승업<호취도><추정묘유도><삼인문년도>) 등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 사상과 예술 정신의 뿌리는 춘추 전국 시대 혹은 그 이전까지 소급된다. 춘추 전국 시대에는 (수많은 학파와 사상가라는 말뜻을 가진)제자백가가 등장한다. 이들이 내놓은 이론과 학설은 혼란한 시대를 바로잡고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백성을 고통에서 구해 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이나 학설은 무척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제자백가 가운데 예술과 관련 유가와 도가 이론이 가장 대표적. 공맹을 대표로하는 유가와 노장을 대표로하는 도가는 예술 정신 및 기타 여러 측면에서 큰 대조를 이룬다. 유가에서는 엄숙하고 절도 있는 형식미를 추구한다면, 도가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다. 유가에서는 균형미와 전통을 중시한다면, 도가에서는 불균형과 변화 그리고 창의성 등을 중시한다. 또 유가에서는 인공미를 중시한다면, 도가에서는 자연미를 중시한다. 인간 및 그 사회의 도덕성을 중시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타고난 자연성과 자연적 질서를 중시하는가 하는 점은 유가와 도가를 구별 짓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창의성과 전통의 파괴를 주장하는 도가가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을 더 중시한다는 점은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예술이란 원래 인위가 가해져야 하는 것이고, 창의성은 바로 이 인위적인 행위 속에 있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기 때문.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자연 속의 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추구하는 것과 예술 정신은 반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도가에서는 의도적으로 듣기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일이나, 보기 좋은 색깔과 형태를 추구하는 행위를 반대한다. 그러나 예술을 논하는 자리에서 예술 행위 그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최고의 표준이 자연이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가에서는 왜 자연을 표준으로 삼을까? 도가에서는 자연을 완벽한 존재,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가에서 자연에서 벗어난 것을 거짓이고 불완전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이나 대상의 자연성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면 그것은 인위라기 보단 자연의 표현이고, 따라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진실된 것이라고 본다.(요즘도 많이 언급되는 ‘진정성’이란 표현이 이와 유사할 듯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한 관심사인 것. 또한 구체적인 기교보다는 심신의 수양을 더 중요한 문제로 여긴다.

 

 

동양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혹은 집을 짓는 등의 기능을 추구하는 단순 기술자로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을 통해 고상한 인격이나 높은 도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원했던 것. 즉 단순한 기능공이 아닌 도통한 사람 혹은 달인의 경지를 추구한 것이다. 저자는 그 경지를 다른 말로 예술적 경지라 표현한다. 기술자와 예술가의 차이는 손 기술만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정신의 수양까지 포함하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여기에 동양 예술 정신의 특생이 존재한다. 예술은 단순히 손재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고양된 정신적 경지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와 도가는 철학과 예술론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점에서 상반된 관점을 지닌다. 그럼에도 예술이 기술이나 기교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점에서는 두 사상이 일치한다. 유가에서는 예술에서 인격의 완성과 도덕성의 함양, 사회적 교화의 효용성을 발견했고, 도가 특히 장자는 예술 속에서 도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다. <장자>에 등장하는 그 많은 기술자들은 실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모두 예술가들이며, 그들 역시 자신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도통한 기술자, 즉 예술가로 불러 주기를 원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창조적 영감은 기교적인 데 있지 않고 자신을 풀어 놓고 잊는 데 있다.” - 장자와 장승업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