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조선 문인 김시습(金時習)의 작품.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만복사저포기(저포놀이가 맺어준 사랑)>, <이생규장전(이생이 엿본 사랑)>, <남염부주지(염마왕과의 대화)>, <취유벽정기(부벽정에서의 짧은 만남)>, <용궁부연록(물거품처럼 사라진 용궁 잔치)> 등 다섯 편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이 실려 있다.

(작품해설을 요약하여) 전기소설은 중국 당나라 전기소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근대 이전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애소설로 본다. 전기소설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남녀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다루거나, 이계를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내용을 쓴 작품들이 많다. 전기 소설을 읽어보면 시가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한다. 시와 산문이 섞여서 창작된 것은 시가 중심을 이루던 중세 문학의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나, 긍정적으로는 시가 작품 전체에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특성으로 중국, 한국과 함께 일본, 베트남의 문인들도 전기소설을 즐겨 읽고 창작했다고 한다.

중국 명나라의 구우(瞿祐)가 쓴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으나, 주제 의식이나 미학적인 면에서 독특한 성취를 이루어 한반도 전기소설을 대표한다.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창작하면서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전등신화>를 읽고 쓴 시 <제전등신화후>나, <만복사저포기>와 <등목취유취경원기>, <이생규장전>과 <위당기우기>, <용궁부연록>과 <수궁경회록> 등과의 관련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김시습은 열녀설화, 저포내기설화 등 민간 설화를 소재로 활용하고 남원, 송도, 평양 등 조선 땅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조선적인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시문이나 제문, 문답체 등 다양한 산문을 구사하여 생생하고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금오신화>의 특징은 비극적 현실 인식에 있다. 그 비극적 현실 인식이란 불의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작가 김시습의 비타협적인 삶의 자세에서 빚어진 것. 김시습은 세종 10년(1435)에 서울 한 무반 가문서 태어나 성종 24년(1493)년 무량사란 절에서 죽었다. 호는 매월당, 동봉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 재주가 뛰어나 장래가 촉망되는 수재였으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공부를 접어 평생 방랑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김시습은 계유정란을 통해 유교적 이상이 깨졌다고 보았다. 단종을 위해 목숨 바친 사육신이 있었지만 세상은 세조가 중심이 되어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신진 사림과 훈구 귀족 세력 사이 정치적 갈등은 치열해졌다. 이런 세상을 보며 김시습은 자신과 세상이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를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박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한다.

사상적으로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두루 섭렵한 박학한 학자였고, 시와 문장에 뛰어난 문인이나 삶은 불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단종을 폐위한 세조를 용납할 수 없었고, 그런 세조를 용납하는 세상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더욱 불우했다. 김시습의 비극적 세계 인식은 현실과 어긋난 그의 삶에서 빚어진 것으로, <금오신화>의 미학적 기반을 이룬다고 본다. 전편에 걸쳐 고독한 남성 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점, 의리를 중시하는 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점 등은 모두 김시습의 현실 인식과 관련이 깊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의 현실 인식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들로 주인공들이 처한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주인공이 겪고 있는 고독하고 부정적인 현실은 작가의 정치적 좌절과 이에서 비롯된 현실 인식과 관련 깊다. 그중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의 두 주인공이 경험하는 소외와 고독의 감정은 작가의 현실적 처지가 문학적으로 특히 더 강하게 형상화된 것이다. 다섯 작품 모두 새로운 만남이나 세상의 인정을 갈망하는 인물들이 만남을 이루거나 인정을 받지만 결국 다시 혼자 남게 되거나 세상을 등지는 결말로 끝맺는다.

그 모든 비극적인 결말은 <금오신화>가 불러내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보이는 세계와 결코 화합할 수 없기에 생겨난 필연적인 결과이자 생에 대한 김시습의 비극적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화합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은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들을 환기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장치는 환상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낳는다. 신라 말, 고려 초에 창작된 애정전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을 비롯하여, 몽유록이나 산수유기, 가전 등의 문학 전통을 잇고 있는 <금오신화>의 다섯 작품들은 조선 초기 한문학이 이룩한 시문과 산문의 미학적 성과를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읽을 때는 <남염부주지>가 흥미로웠다. 유학을 공부한 박생이 꿈에서 남염부주를 다녀오는 이야기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꿈속에서 이계를 다녀오는 몽유록 양식을 취한다는 점, 하나는 문답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다. 문답은 귀신, 천당과 지옥, 윤회, 정치 등 철학적인 문제에서부터 현실 정치에까지 걸쳐 이뤄진다. 김시습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헌데 그 방식이 매우 역설적이다. 현실에서는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불만을 품던 박생이 염라국에서는 통달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종국에는 염러왕을 이어 왕이 된다. 겉보기엔 무시무시한 염라국의 왕은 세상에서 충성을 다했던 인물로 요임금이나 순임금을 본받아 박생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현실로 돌아온 박생은 세상을 떠날 차비를 하고 망설임 없이 세상을 떠난다. 이는 곧 김시습의 현실이 염라국보다 못하다는 현실 부정 의식을 나타낸다.

<남염부주지> 초반에서는 중국인사와 철학적인 사유에 관한 언급들이 등장한다.

“박생은 일찍이 불교와 무당의 귀신설에 의문을 품고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뒤 <중용>을 참고하고, <주역>의 [계사]를 참고하여 의문을 다 풀었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중략) 어느 날 그는 한 스님에게 ‘천당지옥설’에 대해 질문하고 다시 의심이 나서 물었다. ‘하늘과 땅은 하나의 음양일 뿐인데 어떻게 하늘과 땅 밖에 또 하늘과 땅이 있단 말입니까? 그건 반드시 잘못된 말이오.’ 스님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려 답하지 못하고 죄와 복은 지은 대로 받는다는 견해로 답했다.”

“나는 일찍이 천하의 ‘이’는 오로지 하나일 뿐이라고 들었다. 하나란 무엇인가? 두 이치가 아니란 뜻이다. ‘이’란 무엇인가? ‘성’일 따름이다. 성이란 무엇인가? 하늘이 명한 것이다.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만들어 낼 때 ‘기’로써 형을 이루고 ‘이’ 또한 타고나게 한다. 이른바 ‘이’라는 것은 날마다 쓰는 사물에 각각 조리가 있게 하는 것이다. (도는 이가 우리 마음에 갖추어진 것이다.) 이를 끝까지 추구하고 성을 다하는 것, 즉 궁리진성은 이 ‘이’를 궁구하는 것이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여 앎에 도달한다는 것, 즉 격물치지는 이 ‘이’에 이르는 것이다. (중략) 천하에 어찌 두 가지 ‘이’가 있겠는가! 그것은 이단의 설이니 나는 믿을 수 없다.”

박생은 유학자로 성리학적인 관점의 ‘일리론’을 통해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유가에서는 귀신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다. 유가는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헌데 박생은 불교를 접하면서 유가사상과는 다른 점들에 의문을 갖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주역>을 읽다 잠이 들고 문득 한 나라에 도착한다. 그곳은 염라국이니 염려왕과 만난 박생은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중 유가인물과 불교인물에 대해 묻고 답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주공과 공자, 구담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 왕이 말했다. / “주공과 공자는 중화의 문물 가운데서 난 성인이고, 구담은 서역의 간악한 무리들 가운데서 난 성인이오. 문물이 비록 개명해도 사람들 중에는 성품이 잡박한 사람도 있고 순수한 사람도 있기에 주공과 공자가 그들을 이끌었고, 간악한 무리들이 비록 우매하지만 그중에는 기질이 민첩한 사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있기에 구담이 그들을 깨우쳤던 것이오. 주공과 공자의 말씀은 바른 것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물리쳤고, 구담의 법은 바르지 못한 것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물리쳤소. 바른 것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물리쳤으므로 주공과 공자의 말은 정직하고, 바르지 못한 것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물리쳤으므로 구담의 말은 황탄한 것이오. 정직하기 때문에 군자들이 따르기 쉽고, 황탄하기 때문에 소인들이 믿기 쉬운 것이오. 그러나 그 지극한 경지는 모두 군자와 소인들로 하여금 끝내는 바른 도리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지, 세상을 혹하게 하고 백성들을 속여서 이단의 도리로 잘못되게 하려는 것은 아니오.”

성리학 중심의 조선에서는 불교를 폄훼하는 인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정도전은 불교를 배척했다. 고려 시기 변질된 불교를 비판한 것은 아닐까?) 유학자였던 김시습이 불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유학자로서 입신양명할 수 없었던 현실 상황에 봉착한 김시습은 그 피난처로 불교사상을 택한 것이 아닐는지. 중국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금오신화>에 실린 5편 모두에 조금씩이지만 중국문물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