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만화로 만든 인문고전 50선 중 48번째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소개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을 한 마디로 철학적 문제를 없애려고 철학을 한 철학자로 설명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철강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공학을 공부하나 이윽고 영국으로 건너가 버트런드 러셀의 영향(<수학의 원리>등)을 받고 철학도의 길을 걷는다.

 

철학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와 철학의 본성을 깊이 탐구하고자 한 인물이다. 그는 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언어의 구조와 한계를 이해하려 했고, 이를 통해 인간 사고의 구조와 한계를 가늠하고자 했다. 그는 논리학 이론과 언어 철학에 독창적이고 중요한 사유 체계를 제시하는데 서로 다른 두 시기에 정반대의 관점을 취한 두 저작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를 남긴다. 이 두 저작은 힘겨운 추론과 뛰어난 상상력의 결과물로서 20세기 분석철학의 전개를 주도한 고전으로 평가된다.

 

비트겐슈타인이 제기한 물음은 ‘우리의 언어는 세계를 어떻게 반영하는가?’이다. 그는 언어가 세계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알 때야 인간이 비로소 세계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세계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기존 철학자들은 진리는 무엇인지, 존재란 무엇인지 등과 같은 거창한 물음들에만 집착하여 언어와 사고 본연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즉 그러한 질문들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과연 그러한 질문을 어떻게 던질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본 것.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철학이 세계에 대한 진리를 제시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도 부정한다. 무의미하고 현학적인 질문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며 철학적 문제들은 해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할 것이라 설명한다.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철학의 목적은 철학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기에 그를 ‘철학을 없애기 위해서 철학을 한 철학자’로 본다는 것. 긍정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좀 더 자각적인 것으로 만들고 철학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도입한 철학자로 평가할 수 있겠다.

 

비트겐슈타인의 저술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먼저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사상의 핵심과 특징들을 소개한다. 7장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저술들 특히 <철학적 탐구>에 중심을 두고 그의 언어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차례는 다음과 같다. 1장 <철학적 탐구>는 어떤 책?, 2장 비트겐슈타인은 누구?, 3장 프레게와 러셀에 대하여, 4장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5장 언어는 세계를 그린다, 6장 명제란 무엇일까, 7장 <논리철학논고>에서 <철학적 탐구>로의 전환, 8장 파리통에서 빠져나오기, 9장 언어는 게임이다, 10장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11장 사적 언어란 없다, 12장 비트겐슈타인과 우리 등. 부록으로 그와 관련된 인물과 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형이상학/칼 포퍼/비판철학/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논리학/지인들 : 러셀, 케인스, 스라파/오스트리아 빈 : 프로이트, 쉰베르크, 아돌프 로스)

 

부록 내용 중 그의 언어철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논리학과 비판철학을 살펴보자. 우선, 논리학은 논증을 다루는 학문으로, 논증의 참과 거짓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일체 활동을 연구한다. 논증이란 하나의 결론과 하나 이상의 전제가 결합된 것으로 어떤 주장이 참임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 논리학은 논증 구조를 살피고 그것이 참인 형식을 지녔는지 아니면 오류가 있는지를 판단하여 보다 명료하고 정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논리학에서는 인간 지식을 크게 두 종류로 본다. 하나는 개별적 사실들을 통해 일반적인 지식을 이끌어내는 귀납적 방법에 의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연역적 지식이다. 두 경우 모두 명제들 간 관계에 따른 추리를 통해 어떤 특정 지식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때 이들 간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논리학인 것. 인간은 분명한 사고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명료한 사고 규칙을 따르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수사적인 표현으로 상대를 설득하기도 한다. 이렇듯 분명한 사고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오해나 오류(때로는 고의적인) 등이 발생함으로 다방면에 걸쳐 ‘논리’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논리학의 입장이다.

 

다음으로, 비판철학을 살펴보자. 칸트에게서 비롯된 비판 철학에서 ‘비판’이란 대상을 검토하고 객관화하여 그것의 범위와 내용, 한계를 규정한다는 의미로 정의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서문에서 인간의 이성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이해하려 함으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즉 의지의 자유, 영혼의 불멸성, 신의 존재에 관한 물음들은 우리의 이성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이나 그런 물음들은 우리의 이성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기에 답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 칸트는 이성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이성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비판 철학이란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이다. 칸트는 이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성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 짓고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제시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에 선을 그어 우리의 언어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자 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표현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칸트의 비판 철학 대상이 ‘순수 이성’이라면, 비트겐슈타인의 비판 철학의 대상은 ‘언어 현상’이다. 이러한 비판 철학의 노력 덕분에 인간 이성과 언어 각각의 가능과 한계가 명확해질 수 있었고 이성과 언어의 남용을 경계하는 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알아보자. 어머니에게 ‘나 배고파’라는 말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초기 저작 <논리 철학 논고>의 관점에서는 이 말이 ‘나’는 현재 배고픔이란 상태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후기 <철학적 탐구>의 관점에서는 ‘나 배고파’라는 말은 ‘빨리 밥을 줘’라고 요청하는 말로 해석된다. ‘나’는 현재 느끼는 배고픔의 상태를 지시해서 보여 주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었는가하는 점이다. 언어는 그 쓰임이 중요하다는 것.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언어가 어떻게 쓰이는가를 안다는 것이며 그는 이러한 언어의 쓰임새를 게임에 비유하여 표현한다. 언어 역시 하나의 이상적인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닌 무수히 많은 언어 게임들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무수히 많은 언어 게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언어 게임의 본질’ 같은 것이란 없다. 서로 공유하는 법칙도 없다. (오직 게임 간 다방면에서의 유사성이 있을뿐) <철학적 탐구>에서 핵심적 개념 중 하나가 언어의 가족 유사성이다. 그는 이제껏 철학자들이 한 일이란 축구 게임과 농구 게임을 일치시키는 ‘억지’와도 같다고 비판한다. 그는 일상 언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그것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서술하는 작업이 철학자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철학적 탐구>에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에 관한 주장들은 ‘일상 언어’에 대한 관심을 철학계에 불러 일으켰다.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철학이 ‘언어적 전회’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