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은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의 남다른 출생은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어머니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고 교사가 되기를 재촉했지만, 마리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세계를 화폭, 양탄자와 벽지, 발레의 무대장치 등에 널리 펼쳐 나가며 진보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은 복잡했던 사생활과는 달리 섬세하면서도 단순한 형태에 파스텔 톤으로 감미롭게 채색되어 있으며, 지금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 도회풍의 감각적 멋을 보여준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다”라는 말을 남긴 그녀의 생에서 놀라운 건, 평생을 그림에 바친 뒤 70세에 이르러 ‘나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 소원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많은 번민 속에서 작품 활동을 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코코 샤넬 역시 여성이 사업을 운영하는 예가 없던 시기에 뛰어난 감각과 열정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기며 예쁘기보다는 자유롭게, 화사함보다는 세련된 단순함을 고집하는 샤넬의 스타일은 패션계의 교과서다. 이렇듯 ‘신화’를 이루어낸 샤넬이지만 그녀의 개인사에는 그림자가 제법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수녀원에 버려진 기억, 처음 파리 생활을 시작할 때의 위축감, 턱없이 부족한 교양과 신분 차이에 좌절한 경험, 성공한 후에도 계속된 가족과 연인의 죽음은 그녀에게 남모를 우울의 심연을 생겨나게 만들었다. 첫 연인이었던 카펠이 죽었을 때엔 지독한 우울증에 빠져 자신의 방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버렸다고.

이렇듯 두 여성의 삶은 당대에 일으킨 문화적 파장만큼 외로웠다. 주목받는 ‘뮤즈’의 삶이란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고독한 이면을 지니는가 보다. 그렇기에 동시대에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살았을 샤넬을 화폭에 담은 로랑생의 의도와 화법 또한 예사롭지 않다. 화면 속 샤넬은 한쪽 어깨를 관능적으로 드러내 그녀의 도전성을 보여주지만, 나른한 표정이 왠지 패션계를 호령하던 그녀답지 않다. 어쩐지 세간의 빗발치는 관심과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도전 속에 다소 지친 모습인 것만 같다.

앞서간다는 것은, 남들에게 도전 과제를 주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에 대한 편견이 로랑생과 샤넬의 시대엔 더욱 견고했을 터.

오늘도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누구나 요구하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의문을 제기하는 신여성들이 불철주야 직업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이여,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맞추려 너무 애쓰지는 말자. 그대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