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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이 독서 다이어리 3>>

공부의 달인 - 호모 쿵푸스

- 고미숙 / 그린비 -

청소년들이여, 호모 쿵푸스가 되어라! Boys, be Homo Kungfus!

◦ 질문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

“지금부터 여러분은 천일작전에 돌입해야 합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교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때 학교는 전쟁터였다.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터’.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전쟁은 종식되었는가?

전쟁이 학교를 넘어 전 방위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키우라고, 특목고를 거쳐 아이비리그로 유학을 가야 한다고, 자격증과 학벌에 올인 하라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공부. 아니 전쟁에 대하여. 지금까지 어떤 종교, 어떤 이데올로기도 이렇게 전폭적인 신앙을 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신앙이 높아질수록 교실은 붕괴되어간다. 왜? 학교보다 학원이 더 경쟁력이 띠어나니까 학원이 최전방에서 학생들을 지휘하고 학생들은 기꺼이 그 권위 아래 복종한다. 경쟁력의 함정에 스스로 걸려든 꼴이다. 자승자박!

하지만, 진정 놀라운 건 그게 아니다. 그 누구도, 어떤 청소년도 이런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그게 더 끔찍한 일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평생 남이 제출한 질문지에 답을 쓰느라 바쁠 테니까. 그건 실로 청춘에 대한 모독이자 삶을 노예화하는 지름길이다.

질문들은 세상천지에 널려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가 끝나는 것이라면, 생로병사에 대한 통찰력은 언제, 어디서 배워야 하는가? 학교에선 왜 독서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는가? 독서와 공부는 서로 다른 것인가? 교과서에 나온 지식들은 대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더 나아가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행복의 조건은? 나와 민족과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혹은 인간과 동물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인가? 등등.

공부란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것이다. “크게 의심 가는 바가 없으면, 큰 깨달음이 없다.”(홍대용)고로,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

◦ 더 이상 공부를 모독하지 마! ◦

‘쿵푸’, 곧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공부를 하기는 하되, 몸을 단련하고, 인생을 바꾸는 공부를 해야 한다.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 가고 그 다음에 또 취직 시험 공부하고, 취직한 담엔 또 승진 시험 보고, 평생을 시험의 늪에 빠져 살다 보니 공부 하면 성적밖에 안 떠오르는 거야.

인류 최고의 고수들이 쓴 고전을 읽어야 해. 고수들이 쓴 책은 머리가 아니라 몸 전체를 막 진동시킨다구. 그래서 자꾸 읽다 보면 차츰 몸: ’굴림’">일단 내공이 쌓이면 그 주변에 ‘에너지장’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막 끌리게 되어 있거든,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네!”

호모 쿵푸스가 되면 출세를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어. 돈과 권력 따위는 오히려 걸림돌일 뿐이지.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는데, 그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겠어? 더 중요한 건 그런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는 것 자체가 다 공부가 된다는 사실이지. 몸과 인생과 공부가 완전 하나 되는 오묘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1. 대전제 : 공부를 하거나 행복하지 않거나!

2. 소전제 : 행복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3. 결론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오케이?

Boys, be Homo Kungfus!

잃을 것은 낡고 병든 지식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부다.

프롤로그

‘세 개의 절망과 하나의 희망’이 있는 풍경

★ 절망 하나 : 맹목의 질주 - “아무 이유 없어!” 공부의 이유?

학교를 죽어라고 다니는 이유, 학원에 과외에 각종 사교육 시장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이유, 일류대학 명문학과를 기필코 가야 하는 이유, 그 모든 욕망의 뿌리는 10억(혹은 그 이상)이라는 돈이다.

교육열 자체야 뭔 죄가 있겠는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것, 그거야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에 속하는 것을. 문제는 그런 열망이 오로지 학벌과, 그리고 학벌은 다시 거액의 연봉과 고스란히 오버랩 된다는 사실에 있다.

저 지방 영재학급의 어린 중학생이나 이역만리 미국의 유학생이나 공부를 하는 목적은 단 하나. 10억인 셈!

그래 좋다. 부귀공명에 대한 욕망이야 인지상정이라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데? 사실은 그게 포인트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어보자. 큰 아파트, 외제 자동차, 부동산 따위가 정말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가? 그러면 다들 말문이 막혀버린다. 언제부터 그것을 욕망하게 되었는지, 또 그 욕망이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건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니까.

이 욕망의 질주에는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다. 그저 자본과 권력이 촘촘히 깔아놓은 레일 위를 열나게 밟아갈 따름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맹목의 질주 - 이게 우리 시대 공교육의 현주소다.

★ 절망 둘 : ‘누구냐? 넌!’ 대안교육의 현실

이념이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제도교육의 부조리보다 대안교육의 부재가 훨씬 더 심각하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건 대안교육이 전혀 대안적 삶을 창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안학교가 진정 대안이 되려면 가족의 지평을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그 비전이 학습의 장에서 치열하게 연마되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 점에선 아직 전망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난 나야.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거야.” 부모와 학교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묻는다. “근데, 내가 원하는 게 뭐지?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말해줘.”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학교도 부모도 교사들도. 결국 영화 <올드 보이>의 유명한 대사처럼, 그들은 자신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누구냐? 넌!” 이것이 공교육의 저편에 있는 대안교육의 현주소다.

★ 절망 셋 : 대학은 죽었다. 대학교육

학생들은 교수를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교수들 역시 학생을 지적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금 대학에는 사제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학생들은 출석 체크, 학점 관리에 목숨을 건다 .교수들도 그렇다. 1970~80년대처럼 휴강을 밥 먹듯 한다든가 수업을 ‘만담’으로 대충 때운다든가 하는 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말하자면, 학생이건 교수건 건전하고 착실한 대학의 주체가 된 셈이다. 그런데 사제관계가 증발되었다고? 그렇다! 모든 것이 갖추어졌건만, 오직 하나, 교수와 학생을 ‘스승과 제자’로 엮어주는 지적 파토스(일시적인 격정이나 열정 또는 예술에 있어서의 주관적, 감정적 요소)가 사라져버렸다.

대학은 더 이상 ‘큰 배움터가’가 아니다. 그럼 대학생들은 대체 뭘 하냐고? 취직 시험에 올인하고 소비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고, 노후 대책에 골몰한다. 청년이라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그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대학은 놀라울 정도로 균질적이다. 일류건 이류건. 서울이건 지방이건, 인문학이건 자연과학이건, 모든 대학, 모든 학문이 동일한 욕망과 비슷한 능력의 주체들을 생산해낸다. 이들은 전통적인 인텔리들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다. 기존의 인텔리들이 자본과 권력에 ‘봉사’해왔다면, 이들 신종 지식인들은 ‘자본, 권력, 지식’의 혼연일체를 구현한다. 이름하여, ‘테크노크라트’들(과학적, 전문적 지식이나 능력을 가지고 현대의 조직이나 사회의 의사결정과 관리,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 ‘기술 관료’로 순화) 이렇게 되면 결국 대학에서 지식이 존재할 공간은 사라지고 만다. ‘지식의 공간’이 없는 대학? 그건 마땅히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

☆ 희망 하나 : 대중지성 - “잡초는 범람한다”

학교가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달라붙은 ‘기식자’(테크노크라트)들을 양산해내는 동안, 그 외부에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저적 욕망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름하여 대중지성! 꿀벌이나 개미떼처럼 언제나 무리로 움직이고, 오직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대중지성은 ‘무리지성’이기도 하다. 대중보다 더 대중적이고, 지식인들보다 더 지성으로 충만한 집단. 테크노크라트들이 ‘지식, 자본, 국가’의 삼위일체 속에서 움직인다면, 대중지성들은 그 외부에서 ‘지성의 교해’에 몸을 던진다.

대중지성을 움직이는 힘은 오직 앎에 대한 열정이다. 생명과 존재, 삶과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들, 그것만이 그들을 지배한다. 그들은 외친다. 학벌, 자격증, 기득권 따윈 필요 없다! 우린 다만 앎에 목마르고, 공부에 굶주렸을 뿐이라고.

대중지성은 잡초처럼 범람한다!

이들은 어디로 튈지, 무엇과 접속할지, 그리고한다. 다만 분명한 건 ‘절망이 있는 세 개의 풍경’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은 오직 거기로부터 길어 올릴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Ⅰ. 학교, 공부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다.

발트해 연안의 거대한 숲, 나무와 나무 사이로 붉은 장막들이 나부낀다. 몰이꾼들이 요란하게 나팔소리를 울리며 한 무리의 늑대를 붉은 장막 쪽으로 몰아붙인다. 급한 여울과 가시덤불 사이를 날렵하게 달리던 늑대들이 장막 앞에서 흠칫, 멈춰 선다. 그저 펄럭이는 장막일 뿐인데, 대체 왜? 결코 넘을 수 없는 ‘금지의 선’이라 스스로 간주해버린 것이다. 우스운가? 혹은 불쌍한가? 하지만 ‘공부의 정글’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닐 그대들의 운명 또한 다르지 않다. 방법은 오직 하나, 정글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뿐. 하지만 죽어라 달려가다 다들 어떤 표지 앞에서 흠칫! 멈추어 선다. ‘학교식 공부’가 짜놓은 장막에 걸린 탓이다. 허공을 두루 덮는 새빨간 거짓말의 장막에. 하여 호모 쿵푸스의 제1초식은 ‘장막 너머로 도주하기’

1. 학교, 공부를 독점하다.

학교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노예로 만든다.

-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에서 -

학교의 이러한 속성은 “파시즘적이든, 민주주의적이든, 사회주의적이든 또는 대국이든 소국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나라에 있어” 거의 차이가 없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자금, 사람, 그리고 선의를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제도가 교육에 관여하는 것을 단념하게 만들고 있다. -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에서 -

즉, 노동과 여가, 정치 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 버린다. 결정적으로 그럼으로써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 식으로’재편한다. 그 결과 전 사회를 ‘학교화’한다는 것.

사교육은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학교식 공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학교의 이념을 가장 순수하게, 가장 극단적으로 실현해주는 것이 바로 학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인 것. 더 끔찍한 건.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교육기관을 늘리고, 학교에 대한 각종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의 형태나 경제적 수준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표면적 폐해보다 더 심각한 건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 전제들이다. 그것들은 아주 보편적이고 심오한 진리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전적으로 학교가 세상에 퍼뜨린 거짓말에 불과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새빨간 거짓말들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일이다.

2. 학교의 거짓말 하나 - 공부에는 때가 있다?

◦ ‘학번 공화국’ ◦

6, 3, 3, 4 학제. 이런 분포는 어디까지나 근대적 학교제도의 산물이다. 동일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같은 장소에 몰아넣고 같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 그럼으로써 모든 차이와 이질성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주 평균적이고 상식적인 존재, 곧 국민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학교에 주어진 소명이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1년 단위로 촘촘히 학년이 분화되고, 그에 따라 인맥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학번 공화국’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연령별 균질화가 만들어낸 가장 심각한 망상은,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어!’라든지, ‘이 나이에 무슨 공부?’, ‘젊었을 때 공부 못한 게 한이야’, ‘과정 끝났으니 이제 마음껏 놀아라’ 등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들이 다 거기서 유래한다.

공부란 ‘적당한 연령대에 오직 학교에서 하는 것’이라는 주술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간은, 아니 모든 살아 있음 자체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과정 아닌가. 아기에겐 모든 것이 공부의 대상이다. 아기들의 눈이 그토록 맑은 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질문과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건 학교에 들어가기 전밖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단계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인이 된 다음, 학교를 마친 다음에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치명적이다. 만약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두 가지 중에 하나다. 치매거나 죽음이 임박했거나.

‘고부엔 때가 있어’라는 거짓말은 단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를 학벌과 자격증 혹은 취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과 견고하게 유착되어 있다. - 시간의 사슬과 과정의 사슬. 고로, 이 두 개의 사슬은 동시적으로 폭파되어야 한다.

◦ 아줌마들의 ‘원초적 본능’ ◦

지금 대학에서는 공부와 실리를 ‘혼연일체’로 사고한다. 고등하교까지는 오직 대학을 위해, 대학에 가서는 학점․토익․고시․취업․유학 등 아주 구체적인 실리가 눈앞에 있어야만 공부를 한다. 우리 시대는 성차별은 사라진 대신 경제적 가치 외에는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하는 지적 주체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런 것은 공부가 아니다!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

이반 일리히는 주부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했다.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임금노동에 종속되어 있다는 뜻에서다. 임금노동 자체가 이미 ‘소외된 노동’인데, 그 뒤에서 그림자처럼 임금노동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가사노동이라는 것이다. 그 이중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인생과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는 것.

◦ 대학로와 ‘종삼’이 통하는 길 ◦

종삼에는 ‘프리모던’과 ‘모던’이 울퉁불퉁 뒤섞여 있는 불균질성이 연출되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대학로는 정말 밋밋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하여 모두들 그곳을 문화의 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건 문화란 세련되고 소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에선 젊은이들이, 종묘고원에선 노인들이 동일한 패턴으로 문화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건 두 문화가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 코드화되어 있고, 그리고 바로 그렇게 때문에 두 세대 간의 장벽이 만리장성보다 더 두텁다는 사실이다. 이 두 세대가 마주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노이의 지혜와 10대의 역동성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은 진정 없는 것일까? 근대 이전만 해도 10년, 20년 사이는 얼마든지 벗이 될 수 있었다. 인생 전?도 아니지 않는가. 우리 시대는 가족이건 사회건 그 어디에도 두 세대가 함께 뒤섞일 만한 공간은 거의 없다. 숫제 그런 발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게 다 근대 국민국가의 프로젝트, 특히 학교제도가 연령별로 세대를 잘게 쪼개 놓은 탓이다. 세대를 잘게 쪼개놔야 국민 전체를 관리․통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당장 세대 간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운동이 가능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공부!”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10대와 6․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일단 공부가 시작되면, 세대 차이는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다. 공부 앞에선 모두가 초발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 아이로 돌아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공부야말로 노화를 방지하고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 아닐까? 대학로와 종삼, 아니 청년과 노인이 ‘통’하는 길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 공부엔 때가 있다! ◦

공부란 궁극적으로 자기를 넘어서는 것일진대, 거기에는 우와 열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갈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따름이다.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다면 자기는 천 번 할 것이다.”(<<중용>>)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 하심,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학교가 쳐놓은 덫, 곧 공부와 나이를 오버랩 시키는 속임수에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우리 시대에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때’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틈이 나면’, ‘상태가 무르익으면’, 혹은 ‘때때로’ 뭐가 되었건 공자님의 속뜻은 ‘시도 때도 없이 무시로’ 계속 정진하라는 뜻이었을 터. 그러므로 공부엔 다 때가 있다! 숨을 쉬고 있는 때, 그때가 바로 공부할 때이다.

3. 학교의 거짓말 둘 - 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 제갈량과 허생 ◦

초야에 묻혀 밭을 갈며 살던 제갈량, 저력의 원천은 대체 무엇일까?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다.

남산 아래 묵적골에 살던 허생. 그가 묵적골에서 한 일은? 7년 동안 주구장창, 다만 독서를 했을 뿐이다.

그렇다! 독서야말로 골방에 앉아서도 혹은 초야에서 밭을 갈면서도 천하고금의 이치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제 가문이 망했으니 네가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구나.” 이 황당한 아버지에 따르면, 독서, 이 한 가지 일은 “위로 성현과 짝할 수 있고, 아래로 뭇 백성을 깨우칠 수 있으며, 그윽하게는 귀신과 통할 수 있고, 밝게는 왕있는 것”이니 부디 책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 책과 패스트푸드 ◦

이런 독서가 우리 시대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알다시피 한편에는 기형적인 독서 열풍이 있다. ‘영어와 논술’을 위한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기는커녕, 책을 ‘패스트푸드’로 만들어버리는 ‘나쁜’ 책읽기의 전형이다.

영어를 배우는 것 자체는 아주 즐거운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어란 그런 즐거움을 몽땅 날려버리는 가장 ‘엽기적인’ 공부가 되었다. 이런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가 곧 돈과 경쟁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돈이 깊이 개입하는 순간, 어떤 활동이든 졸지에 타율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과 경쟁력은 흡혈귀, 아니 거의 흡혈마왕에 가깝다. 지금 ‘영어’가 그 꼬라지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건 곧 제국식 삶을 고스란히 복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엔 영어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태도가 존재한다. 하나는 ‘네이티브’에 대한 맹목적 동경. 다른 하나는 적대적 거부감.

논술을 위한 독서도 그 점에선 마찬가지다. 논술을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학생들은 책을 읽을 생각은 않고, ‘논술에 대한 책’, ‘논술용 다이제스트’ 따위를 읽고 있다. 이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논술’을 위한 책들에 길들여지면, 그런 식으로 ‘양념이 된’ 책이 아니면 숫제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논술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독서를 멀리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역설이 일어난다. 이렇게 된 가장 근원적 요인은 학교에서 공부와 독서를 분리시켜왔기 때문이다. 학교식 공부법은 애초부터 독서는 그저 개인적 취미나 교양의 영역이고, 공부는 그것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용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는 이분법을 유포시켜왔다. 학교식 공부에서 독서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 독서는 고리타분해! ◦

그런가 하면 대안학교에서는 어떤가? 춤이나 미술, 영화 배우기도 바쁜데 독서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되묻기도 한다. 심하게 말하면 독서 빼고는 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 교과목과 더불어 독서까지 내팽개친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공부와 독서는 확연히 분리돼버렸다. 다양한 활동이 신체와 ‘통’하려면 무엇보다 근기가 튼실해야 한다. 근기란 쉽게 말하면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의 분포도’ 같은 것이다. 그릇이라고도 하고,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바로 이 근기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길은 단언컨대 독서밖에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왜 독서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학교는 없는 걸까?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력은 실로 심각하다. 실용적 이익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스스로 찾아서 읽는 게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토론 수업이니 자기주도 학습이니 하는 것도 세계와 대상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는 법이다. 헌데, 대체 독서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눈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지금 대학생들은 도무지 질문을 할 줄 모른다. 사회에 대해서건 삶에 대해서건 질문이 없다. 왜? 독서를 하지 않으니까. 질문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지 않으니 질문이 없고. 오, 이 악순환의 고리!

독서가 변방으로 밀려나버리자 고등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사회에 나가서도 공부란 여전히 성적과 동일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 방면에 아는 게 전혀 없는데도 강의를 들을 수 있나요?” 이게 대체? 정도 알아야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발상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공부란 곧 성적이라는 등식이 작동한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간에 이래저래 평생을 성적에 발목이 묶여 사는 셈이다.

4. 학교의 거짓말 셋 - 창의성만 있으면 만사 OK?

◦ 시설과 서비스로 승부한다 ◦

독서와 공부를 분리한 것 못지않은 황당한 거짓말이 또 하나 있다. 창의성에 대한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주도 하에 ‘신지식인 운동’이 개시된 이후, 우리 교육의 모토는 창의성을 갖춘 주체를 키워내는 것이었다. ‘창의성이 곧 경쟁력이다’ 개성, 독창성, 능동성 등 온갖 좋은 용어들이 그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창의성? 참, 좋은 말이다. 문제는 창의성의 구체적 내용이다. 누구를 위한, 누누에 의한, 어떤 창의성인가가 문제라는 거다.

가장 두드러진 건 시설과 서비스의 세련됨을 창의성과 그대로 오버랩 시키는 경향이다. 시설만 바꾸면 창의적 역량이 절로 고양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다.

특히 참을 수 없는 건 학술 심포지엄의 형식이다. 심포지엄이란 향연, 곧 지식을 통해 축제를 벌이는 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횡행하는’ 심포지엄들은 축제는 고사하고 그야말로 인간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 틀에 박힌 질의와 응답이 이어지고, 당연히 청중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반 일리히에 따르면, 학교가 유포한 환상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 사람들을 제도적 서비서에 길들이는 것이라 한다. 즉, 서비스가 좋아질수록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착각한다는 것. 학교가 많아지면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고 착각하고, 고속도로가 뚫리면 생활수준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 결과는 자립적 활동력을 상실한 신체, 곧 제도에 길들여진 노예들을 길러낼 뿐이다. 우리 교육 현실이 딱 그 꼴이다. 시설과 서비스는 나날이 좋아지는데, 학생들은 창의성은 커녕 나날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환경은 아무리 좋아봤자 환경일 뿐이다. 좋은 집에 산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듯, 시설과 환경이 좋다고 해서 창조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삐가번쩍한 외양이 아니라, 환경과 주체 사이의 능동적 교감이다. 만약 그런 과정이 부재한다면, 사태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늘 어딜 가건 좋은 시설과 서비스를 기대하게 되고, 그게 없을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신체가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렇다. 학생들이건 학부모들이건 교수들이건 요즘은 문제가 있다면 일단 외적 여건을 탓하기 바쁘다. 여건만 좋으면, 지원만 충분하면 활동은 저절로 굴러가리라는 발상, 이것이 바로 학교가 퍼뜨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락한 거짓말의 덫이다. 진정한 창의성은 폼나는 공간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습 주체와 공간이 어우러져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아주 강도 높은 학습의 장을 연출하는 것, 창의성이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한다.

요즘 아이들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체력은 꽝이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텅 빈 학교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 ‘학교 없는 사회’를 꿈꾸었던 이반 일리히, 일리히에 따르면, 의무교육이 교육기회의 평등처럼 생각되는 사회에서는 이이들이 수업을 받는 것과 학습(공부)을 하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게 된다. 학교가 공부에 대한 모든 표상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

◦ 렛잇비! -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 ◦

그럼, 여기서 잠깐. 창의성이 갑자기 범국민적 모토가 된 배경을 한번 짚어보자.

이건 전적으로 IMF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유연성을 반영하는 용어다. 지금은 상품이 시장에서 먹히려면 차별성이 뚜렷해야 한다. 쉽게 말해 튀어야 한다. 그러자니 사회 전체가 온통 창의성, 개성, 사고력 따위를 떠들어대기에 바쁜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창의성이란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기획력, 신상품 개발의 아이디어 따위를 의미한다.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아니라, 포장과 이미지를 적당히 바꿀 줄 아는 능력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간 학교들이 거죽을 바꾸는 데 그토록 치중했던 것도 나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주지하듯 그건 창의성이란 말과 정확히 모순된다. 콩도르세는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배치를 거스르면서 전혀 다른 욕망의 지도를 그려낼 수 있는 과감성, 전혀 다른 삶을 창안할 수 있는 상상력, 뭐 이런 것들이 창의성의 진짜 의미에 값한다.

의리, 우정, 신의 - 창의적으로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가치를 몸에 익히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만 발상을 바꿔도 세상엔 기막힌 일들이 널려 있다. 그럼 이런 식의 창의성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시설에 대한 환상만큼이나 잘못된 것이 자율성에 대한 신화다. 물론 자율성과 창의성은 나란히 간다. 문제는 자율성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데 있다. 좀 의식 있는 학부모나 교사들은 마치 어떤 종류의 훈육이나 강압이 없으면 그게 곧 창의적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독서를 멀찌감치 밀어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들 역시 “독서를 강조하면 자율성을 억압하는 게 아닐까? 라고 지레 후퇴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렛잇비!’와 자율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프롤로그에서 봤듯이 그건 그저 대책 없는 자유, 정처 없는 방황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공부는 즐거운 일이 되고 노는 일은 공부하는 일과 통할 때 공부도 진정한 공부요 놀이도 정말 즐겁다”는 경지를 실현하는, 아니 그걸 실현하기 위해 매진하는 교육은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지금 같은 시대에 그냥 내버려둔다는 건 청년기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설치해놓은 빽빽한 그물망에 그대로 걸려드는 걸 의미한다.

카프카가 말했듯이, 추상적인 자유란 없다. 다만 지금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턱이 있을 뿐. 그 문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그 만큼의 자유의 공간이 열리는 법이다. ?? 치명적 중독성. 거기에 한 번 붙들리면 헤어나기가 어렵다는 것. 그게 바로 억압이다. 그렇다면, 그때 자유란 ‘그 억압에 얼마만큼 저항할 수 있는가’, ‘그에 맞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법이다.

덧붙이자면, 토론이건 체험학습이건 그것이 강도 높은 학습의 과정이 되려면 고도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바꾸겠다는 치열한 의지도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주 유치한 수준에서 헛바퀴만 돌 따름이다.

창의성에 대한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듯, 자율성에 대한 실로 자율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자율성은 자치 하향평준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하향평준화는 교육 평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잘하는 사람은 더더욱 잘하게, 못하는 사람 역시 조금씩 향상되게, 우월감과 열등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공교육에서도 자율성을 명분으로 교실을 방치하는 사이, 학습의 주도권은 다 학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간 학교가 성적과 성공의 신화를 세상천지에 유포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원이 테크닉 면에서 훨씬 더 세련되고 완벽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실의 붕괴’는 이미 예고된 재앙에 해당된다. 아무튼 자율성이고 창의석이고 간에 교육의 성패는 현장에서 판가름 나는 법이다. 그리고 현장이 살아 있으려면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의 절대적 신뢰가 필요하다.

Ⅱ.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발트해 연안의 숲에서도 간혹 장막을 뛰어넘는 아주 특별한 늑대들이 있다. 장막을 그저 장막이라 여기고 휘리릭!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거짓말의 장막 너머로 도주한 호모 쿵푸스들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원대한 비전, 심오한 지혜, 우주적 농담으로 가득찬 고전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학벌, 위계, 돈과 명예 따위는 말끔히 잊어버려라! 필요한 건 다만 두려움 없는 용기와 지칠 줄 모르는 끈기뿐. ‘노하우’는 책과 우정!

하여, 호모 쿵푸스의 제2초식은 ‘천 개의 고원’을 향하여, ‘거침없이 하이킥!’

1. 새로운 지도 그리기

진정 공부의 대안을 마련하고 싶다면, 거죽을 폼나게 바꾸고 좀 더 그럴 듯한 서비스 장치를 가동시키는 것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제는 ‘좀 더 양질의’, ‘좀더 합리적인’ 것을 지향하는 어설픈 절충이나 미봉책에 집착할 게 아니라, 훨씬 더 나아가 학교식 공부의 기원이자 토대인 근대성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학교는 어디까지나 20세기 근대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정말로 학교식 공부의 대안을 꿈꾼다면 근대적 제도교육의 틀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운동이 요구된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관념과 습속이 근대성에서 연원하는 것이라면, 탈근대란 그러한 틀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삶의 공간을 창안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근대적 모색에는 아주 다양한 길이 있다. 고전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고전이란 시대의 통념과 억압을 뚫고 삶과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탐색한 전위적 텍스트를 말한다. 고전이야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미래’가 아니고, ‘미-매’인가?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이지만,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곧 도래할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전이 바로 그렇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고전! 고전의 전위성에서 머지않아 ‘지금 여기’로 도래할 삶의 지혜와 비전을 길어 올릴 것, 이것이 학교식 공부, 근대적 교육을 넘어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나선 ‘호모 쿵푸스’의 전략이다.

2. ‘앎의 코뮌’에 접속하라!

◦ ‘유년기’라는 함정 ◦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은 주희가 10대에 던진 것이다. 근대적 제도교육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고작 열두세 살짜리가 우주를 사유하고, 사물의 이치를 깨우치겠다고 달려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가족과 학교와 사회의 보호 속에서 순진무구하게 뛰어 놀아야 할 그 어린 ’유년기‘에 말이다. ’유년기‘란 무엇인가? 잘 알다시피 유년기란 연령별 학습제도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이반 일리히의 말에 따르면, “제도로부터 얻어진 분별력에 의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연령별 분별 자체가 다름 아닌 학교교육의 소산이다. 즉, 학교는 아이들을 ’유년기‘라는 연령대에 묶어놓고 그 단계에 맞는 사고만을 주입함으로써 나머지 다른 능력을 몽땅 회수해버린 것이다. 그래야만 교사와 어른에게 기꺼이 복종하게 될 것이므로. 어디 그뿐인가. 유년기는 소년기, 소년기는 다시 청년기를 만들고, 그에 따라 연령별 학습을 정착시킨다. 결국,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말해 유년기라는 개념에 포획되는 순간, 공부와 삶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소외가 일어나게 된다.

◦ 학교와 ‘코뮌’의 차이 ◦

근대 사회에서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으로서만 작동된다. 고로, 학교를 들어간다는 건 그 제도적 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선생을 만나 어떤 학문을 터득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학교의 위상, 그 학과의 사회 진출 비율, 그게 선택의 유일한 척도일 뿐이다.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그 시절엔 공부를 한다는 건 어떤 스승의 문하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근대 이전,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혹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스승을 만난다는 건 바로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뜻이었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어떤 경기에 오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자 의기투합하는 벗을 모으는 일이었다.

◦ 꿈은 이루어진다! ◦

그렇다면, 학교의 제도적 속성이 부여하는 이 끔찍한 소외로부터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 무엇보다 고전의 지혜를 적극 응용해야 한다. 즉, 자기가 선 자리를 제도적 울타리가 아니라, 스승을 만나고 벗을 부르는 배움터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인생역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전의 시대에 좋은 부모란 자식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주는 존재였다.

이제부터라도 발원의 내용을 좀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어느 대학을 가건 혹은 평생 대학을 가지 못하더라도 좋은 스승과 벗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대학을 못 가는데 어떻게 스승을 만나냐고? 충분히 만날 수 있다. 대학 밖에도 멋진 스승들은 얼마든지 있고, 또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나를 이끌어줄 존재들은 계속 출현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인복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인생이 180도 바뀌는데 천 일 아니라 10년인들 못하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간절히 기원하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

◦ 공부는 ‘네트워킹’! ◦

학교가 부과한 통념들로부터 탈주하여 ‘앎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가장 먼저, 학생들과 함께 세미나를 시작하면 된다. 소규모일지라도 사제 간에 ‘즐거운 공부’의 장을 만들어가고, 그게 사방으로 퍼져 나가 집합적 관계망을 만들면 그게 곧 ‘앎의 코뮌’이다. 가장 쉬운 방식은 세미나 때마다 소박한 파티를 여는 것이다. 세미나를 지식의 향연이자 음식의 향연이 되게 하는 것.

사제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새로운 공부를 시도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동료들을 불러 모아 살아 움직이는 학습망을 조직하라.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곧 공부다.

왜 공부는 여럿이 함께한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가. 함께 모여 고전의 명문장들을 암송하고, 함께 토론하고, 그것으로 다양한 게임과 놀이를 만들어내고, 또 그 공부를 바탕으로 또 다른 ‘밴드’와 결합하고. 이게 바로 지식의 향연이다.

3. 암송과 구술 - 아는 만큼 행복하다!

◦ <<변신>>과 <<오감도>> ◦

<<변신>>과 <<오감도>>를 눈으로 묵독을 하면 한없이 무겁고 진지하고, 또 난해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그걸 소리 내어 읽는 순간, 그 작품들은 전혀 다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 암송의 힘 ◦

암송은 암기와 다르다. 암기가 묵독에 기초한다면, 암송은 청각에 기초한다. 암기가 개별적 활동이라면 암송은 집합적으로 이루어진다. 암기가 두뇌 플레이라면, 암송은 신체 운동이다. 좋은 공부는 반드시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 따라서 몸을 소외시키지 않는 공부, 그게 진짜다!

암기를 잘하는 건 남보다 우위에 설 수 있어도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여기가 바로 포인트다. 이 두 공부법의 차이는 사회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전혀 다른 효과를 야기한다.

혼자만의 ‘외딴 방’에서 지적 정보를 머리에 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암기의 정체다. 그리고 이것은 지식의 사적 소유 및 독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개별적으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법은, 지식이란 한 개인의 두뇌의 산물이거나 노력의 결과라는 환상을 낳게 된다. 즉, 남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공간’ 자체가 지워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학교는 지식을 철저히 사적 생산물로 취급한다.

이런 계몽과 시혜의 구조를 깨뜨리려면 공부법 자체가 ‘개인의 밀실’에서 ‘대중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암송은 바로 그 점을 환기시켜주는 공부법이다. 암송은 형식 자체가 집합적 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지식의 사적 소유라는 주술에 걸려들지 않는다. 암송의 배치 속에선 뛰어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서로를 소외시킬 필요가 없다. 뛰어나면 뛰어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소리를 합치면 되는 것이다.

임기식 공부는 학습 진도를 넘어서기 어렵지만 암송으로 하는 공부에는 진도가 따로 없다. 누구든,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동서고금의 어떤 것이건 상관없다. 마음과 몸을 열어놓기만 한다면, 원대한 지혜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다. 암송은 정말, 힘이 세다!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

근대 이전, 모든 교육은 소리를 통해 이루어졌다. 암송한 다음, 뜻을 익혔다.

낭송이 지니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은 소리를 통해 몸의 안과 밖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집합적이다. 즉 혼자서 할 때조차 그것은 외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큰 소뢰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기의 목소리만큼 낯선 것이 없다. 실제로 녹음을 해서 들어보면 누구나 자기의 목소리가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곧 목소리야말로 내 안의 타자인 것이다. 따라서 낭송이란 일상적으로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집단적으로 암송을 하노라면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도 터득할 수 있다. 동시에 나의 목소리와 타인의 목소리가 뒤섞일 때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지식과 몸의 소외가 극복된다. 소리를 내려면 두뇌보다는 몸이 적극 반응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낭송을 한다는 건 체력과 기운의 분포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 앎의 신체성! 이것이야말로 학교식 공부가 망실해버린 원리가 아니었던가.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방법이 가장 단순한 학습법이라는 점이다. 경전을 터득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도 암송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교육에선 이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주입암기식에 대한 거부반응에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교수법만이 더 효과적이라는 환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신체적 무능력. 특히 요즘 학생들은 홍ㄴ지기는커녕 목소리에 기가 쑥 빠져 있다. 목소리야 말로 카리스마의 원천이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낭송을 하면 된다. 성대 좋아지지 머리 좋아지지, 일석이조! 이왕 목소리와 말을 훈련하고 싶다면, 인생과 우주를 논하는 수준 높은 글들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소리들과 접속을 하면 그 기운들이 그대로 내 몸 안으로 들어올 터, 몸에 좋은 음식이나 약은 다 찾아 먹으면서 왜 좋은 소리를 담을 생각은 않는지!

암송이 암기보다 기억의 효과 면에서 열 배 이상 좋다는 뇌과학적 보고가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암송은 신장에서 뇌까지 신체의 전 기관을 역동적으로 회통시켜주는 기막힌 공부법에 속한다.

‘소리의 공명을 통한 세대 간 공감의 장’을 마련하는 데도 효과만점이다. 연암은 말했다.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요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져도 해이해지지 않고 천해져도 제 분수를 넘지 않는다. 어진 자라 해서 남아돌지 않고 미련한 자라 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암집>>

◦ 구술, 리더십과 유머의 원천 ◦

암송과 더불어 중요한 공부법 하나가 구술이다. 구술이란 어떤 상황이나 문맥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이다. 달리 말하면, 대상을 장악하는 힘, 대상과 교호하여 새로운 국면을 연출하는 테크닉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말하기를 훈련하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보의 계열에 ‘서사적 육체’를 입힐 수 있어야 비로소 지식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각의 폭주에 휘둘리다 보면 아주 짧은 단위로 명멸하는 스펙터클에만 길들여져 버린다. 그와 더불어 장면들을 연결하는 내러티브의 능력은 점차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는 날로 번성하는데, 역설적으로 소통 단절은 더더욱 심화되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지식 검색과 프리젠테이션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정보와 정보 사이를 연결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소통보다는 독백에 더 가까운 글쓰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데 길들여지면 온라인상으로는 정신없이 자기 생각을 쏟아내고, 실제 현실에서는 거의 자폐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는 기이한 캐릭터가 되기 쉽다.

구술능력이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라, 삶과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의 표현이다. 살에 대한 통찰 혹은 애정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엮는 능력이 생기고, 거꾸로 이약의 맛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과 인생에 대한 깊은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 훈련을 하기 전에 이 능력을 먼저 키워야 한다. 즉, 책을 읽은 다음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쓰게 하는 것보다 먼저 그것을 자기식 어법으로 재현해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는 두 가지를 욕망하게 된다 .하나는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또 하나는 자기의 말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를, 이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술 능력은 리더십으로 연결된다. 사실 리더십의 많은 부분은 상황을 ‘언어화하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걸 하나의 주제로 엮을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그는 그 그룹의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환기해야 할 사항이 다름 아닌 유머다. ‘유머,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살이에서 웃음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진정한 유머는 무엇보다 사건과 사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관찰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결국 유머의 기술과 구술 능력은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이야기를 잘하다 보면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도 한다. 이렇게 현장을 장악하는 능력이 커지면 그게 다름 아닌 리더십이다.

이 정도면 구술 능력이 리더십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학교식 공부’는 말 따로 몸 따로 삶도 따로 논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 같이 있으면 좀 재수 없으니까. 고로, 이런 썰렁한 배치를 바꾸려면 말과 몸과 삶이 일이관지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떻게? 암송과 구술이 그리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 세계에선 앎이 커질수록 내공이 무르익고, 아는 만큼 행복해진다.

4. 독서로 인생역전! - 호모 부커스

◦ 책과 우리 시대 ◦

앎의 코뮌에 접속하고, 암송과 구술을 익히고, 그걸 통해서 리더십을 터득하는,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든? 바로 독서다. 거듭 말하지만, 학교가 퍼뜨린 가장 질 나쁜 거짓말은 공부로부터 독서를 분리시켰다는 사실에 있다. “책 보지 말고 공부해!” 학교에서 독서는 공부가 아니다. 학교를 아무리 다니다 한들 독서하는 힘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약용이 말했듯이, 독서는 “세상을 경륜하는 것은 물론 귀신과 통하고 우주를 지탱하는” 위대한 공부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될 테니까 말이다.

독서는 단지 지적 능력의 보완이나 정보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시각의 군림, 감각의 폭주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입구가 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반문화 곧 카운터컬처에 해당한다.

‘대중지성’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독서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 책과 몸 - 찰떡궁합 ◦

시각의 폭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이것이 외모지상주의랑 바로 연결된다는 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섹시하다’는 건 ‘난 너한테 성욕을 느껴!’, ‘난 너랑 자고 싶어’ 이런 표현이 아닌가.

이에 발맞추어 이제 성형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마침내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몸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처럼. 실제로 우리 시대 여성들은 점점 더 마네킹을 닮아가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섹시하지만, 생명에의 의지는 홀연 증발해버린 마네킹 말이다.

그렇다면 얼굴도 멋있어지고, 몸도 건강해지면서 동시에 삶의 비전이 확 열리는 길은 무엇일까? 바로 독서다! 초야에 묻혀 있던 제갈량, 그가 천하를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독서였다. 묵적골에 숨어 있던 허생, 세상에 나오자마자 나라의 부를 한손에 움켜쥐고 마음껏 주무를 수 있었던 저력 역시 독서였다. 유비는 그냥 한눈에 제갈량의 그릇을 알아봤다. 그의 얼굴과 몸에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흘러넘쳤기 때문이다. 허생은 또 어떤가? 변부자는 이름도 묻지 않고 즉석에서 만 냥을 내준다. 허생의 내공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종류의 신체가 된 것이다. 고도의 감응력을 지닌 신체가. 그리고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바로 그런 고도의 감응력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신체적 근기를 바꾸지 못하면 마주치는 관계가 달라질 턱이 없고, 결과적으로 동일한 삶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말로 멋진 몸을 만들고 싶다면 제대로 된 전략을 짜야 한다 .송나라 때의 유명한 기철학자 장재가 말했듯이, “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배움의 핵심은 다름 아닌 독서다. 책을 읽으면 제갈량이나 허생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든 신체의 에너지와 기운의 분포를 바꿀 수 있다. 책을 읽으면 발로 그만큼 거기에 담긴 사유의 파동과 입자를 내 안에 온축하게 되는 거야 당연지사 아닌가.

책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선 몸 전체의 감각과 기운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근기가 좋아야 책을 읽을 수 있고, 거꾸로 책을 읽으면 근기가 좋아지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지극히 평범하고 평생 동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독서 밖에 없다.

◦ 책과 연애, 그 은밀한 접속 ◦

몸짱․얼짱이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짝짓기에 대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즉, 폼나는 연애를 하려면 무조건 외모가 멋있어야 한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럼, 연애와 독서는 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너무 깊고 은밀해서 눈치 채기가 좀 어렵기는 하지만.

독서 없는 연애는 앙꼬 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내 몸의 내공을 결정짓는다. 따라서 사랑의 패턴은 삶의 패턴과 나란히 함께 간다. 사는 건 엉망인데, 사람은 멋지게 되는 경우는 없다. 절대! 따라서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 안에 사랑을 지속할 힘과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으면 대상에 상관없이 그냥 끝나버리는 게 연애다. 권태 아니면 변태 - 이게 근대인이 통상적으로 밟아가는 ‘연애의 정석’이다. ‘뻔한’ 코스를 벗어나 나만의 특이하고 강렬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먼저 그런 존재가 되면 된다. 스키노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랑 따위는 없다. 그러니 운명적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의 운명을 바꾸어줄 만한 능력을 가지면 된다. 그리고 그걸 터득하는 길은? 오로지 독서밖에 없다!

사랑은 삶의 모든 과정을 멈추게 하고,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랑들과 함께 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존재론적 표현인 것이다. 이름하여 ‘걸으면서 사랑하기!’

뭔가 특별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사랑을 통해 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공부를 해야 한다.

◦ 오래된 미래, 도래할 과거 ◦

‘그럼, 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하지?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으면 되나?’ 답은 간단하다. 아무거나 읽으면 안 된다. 반드시 내 몸과 운명을 바꿔줄 책을 읽어야 한다. 일단 나보다 훨씬 폭넓게, 강렬하게 살았던 분들이 쓴 책이어야 할 테지? 또 저자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의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책, 생사를 가로지르는 원대한 비전이 담긴 책이어야겠지?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책,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한 책,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책 등등. 그런 책들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른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매트릭스이기 때문이다. 그런 책과 접속하는 순간, 나는 단번에 우주적 존재로 도약한다. 앉아서 유목하기! 골방에 앉아서도 천하의 이치를 관통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독서의 세계에 저대로 발을 들여놓고 싶다면, 먼저 고전을 문학, 그것도 서양 문학 중심으로 사고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장 좋기로는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옥루몽>> 등과 같은 장편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프루스트나 보르헤스 등 사상적 깊이를 갖춘 서양 소설과 함께 읽는 것이다. 소설적 재미도 맛보고, 동시에 사유의 힘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노자와 장자, 사서삼경 등 동서양의 사상사를 넘나들어야 한다. 물론 이건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된 미래 혹은 도래할 과거로서의 고전! 아득한 과거와 첨단의 미래가 어우러져 진검승부를 펼치는 낯설고 경이로운 시공간, 이 매트릭스에 접속하는 순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너무 광대해서 엄두가 안 난다고? 돈 워리! 일단 클릭하고 보라! 클릭의 노하우는 간단하다. 암송과 구술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은 눈이 아니라 소리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기질이 바뀌고 내공이 쌓이는 법이므로.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진정 박탈당한 것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었다. 그는 말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비범함은 인간이 예술, 문학, 수사학, 철학, 그리고 자유라고 하는 독특한 개념으로 자신의 인간됨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을 재창조했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재창조의 순간에, 고립됐던 개인적 생활이 끝나고 비로소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시대에 공부란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중에서도 고전과 접속하는 것이다. 뭔가 다르게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호모 부커스’(책 읽는 존재)임을 환기해야 하리라.

◦ 고전, 우정의 메신저 ◦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치자고. 근데 대체 어려운 책들을 어떻게 읽어내냐구?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친구를 불러 모으면 된다. 혼자서는 산책도 한 시간 이상 하기 어렵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초짜들도 설악산을 거뜬히 넘곤 한다.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노하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혼자서는 어렵다. 하지만 친구들을 규합하여 함께 읽어 가면 끝까지 갈 수 있다. 학교에 가는 이유도 그렇다. 솔직히 친구들이 아니라면 일곱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을 어찌 학교에서 보낼 수 있으랴.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왜 책을 읽는 건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독서야말로 친구와 함께 할 때 진정 빛나는 활동이다. 왜냐하면, 책이 맺어주는 인연은 그 책의 내공만큼이나 깊을 터이기 때문이다. 운명적 만남이란 다름 아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일생 동안 제대로 된 우정을 나눌 공간 자체가 없다.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은 다 여기서 비롯한다. 친구를 만들 수 없는 무기력감, 소통의 가능성이 꽉 막혀버린 데서 오는 막막함.

고전을 읽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돈과 권력, 기타 다른 종류의 위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학벌과 세대, 직업과 성별의 경계를 간단히 넘어서 찐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전의 지혜도 배우고 평생을 함께 할 친구도 사귀고. 지혜와 우정, 살아가는 데 이보다 더 멋진 자산은 없다. 고전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우정의 메시저인 셈이다. 캬~

중국철학사의 이단아 이탁오는 역시 <<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승과 친구는 하나다. 스승이면서, 친구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가 아니”라고.

이반 일리히는 예프투센코의 시를 빌려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둠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 속에서 친구를 얻는다면, 어둠 또한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친구를 사귀려면 좋은 제도나 서비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새로운 관계 속으로 진입하고 우발적 마주침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그런 네트워크를 확장하면 그것이 바로 2부의 서두에서 말한 ‘앎의 코뮌’이다. 고전의 지혜를 통해 삶과 문명의 비전을 탐구하는 ‘앎의 코뮌’이 전 세계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 그것이 덩이줄기처럼 얽히고설켜 삶의 새로운 양식이 창출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인터-꼬뮈넷’이다. ‘인터-꼬뮈넷’의 이념을 연암의 입을 빌려 큰소리로 외쳐보자.

천하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글을 읽는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 - <<연암집>>

5. 글쓰기는 신체를 어떻게 단련시키나

◦ 공부의 최종심급, 글쓰기 ◦

모든 공부가 귀환하는 최종심급,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검객이 무술의 초식을 익히듯, 악공이 악기를 다루듯, 한 수 한 수 터득해가는 장인적 과정의 산물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절차탁마하는 과정 속에서 신체가 전혀 다른 조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시중에 범람하는 논술을 위한 글쓰기 전략들은 유치찬란한 모법답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테크닉으로서도 엉망이지만, 근본적으로 글쓰기가 신체의 문제라는 걸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수준 미달이다.

◦ 서곡 ◦

스승을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평생 배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먼저 간절히 염원하라.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스승(아니면 도반)을 만나게 해달라고,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정 안 되면 책을 통해서라도 꼭 만나야 한다. “자신의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

◦ 차이를 구성하라 ◦

첫 번째 과제는 ‘너 자신의 눈으로 자료를 보라’, ‘너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설정하라’는 것이었다. 차이를 구성하라는 것.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

그 때 내가 배운 건 텍스트를 사랑하는 법, 텍스트와 몸을 섞는 법이었다. 대상이나 방법론이 무엇이건 지식인이라면 일단 자신이 던진 물음과 ‘온몸으로’ 마주하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과녁을 행해 달려가는 화살처럼 말이다. ‘화살-되기’

세상 가득히 앎의 흐름이 있고, 나는 단지 그 흐름 속을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는 것을.

◦ 일이관지 ◦

“착상은 흥미롭지만 논리가 거칠다” - 내게 던져진 두 번째 과제는 이것이었다. 나는 간신히 호리의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꿰는 법을 알지 못했다. 한 편의 글, 아니 단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선 ‘검을 버리고 악기의 현을 고르는’ 것처럼 처절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신체와 감성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배움이란 그렇게 스승과 선후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소통 작용이라는 것을 몸으로 터득한 것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 하나의 논리로 관통할 것 - 이 두 가지가 내가 석사과정 내내 갈고닦은 글쓰기의 초식이었다.

앎과 삶, 글과 신체의 결합, 지식의 거대한 순환, 글쓰기의 집합적 배치 등 지금 연구실의 주요 강령을 이루는 토대를 나는 철학으로 배우기 이전, 현장에서 실감으로 체득했던 것이다.

◦ 지전능변 ◦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비움’은 배움의 필수적 조건이다. 끊임없이 비울 수 있어야 더 큰 앎이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은 내 평생의 사우 -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존재 - 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통해 우주 만물이 다 텍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삶이 되는, 이런 경지를 일러 유목적 글쓰기라 할 수 있을까? 유목적 글쓰기엔 정해진 코스나 전략이 없다. 대상과 주제, 즉 상황조건에 따라 수시역변하는 수밖엔 없다.

전쟁에는 교본이 벗다. 어설프게 교본을 따라가다가는 십중팔구 지고 만다. 기억에 의존해서도 안 된다. 전쟁에서 반복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당면한 전세에 최대한 집중해야만 이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현장에 있는 모든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글의 원리 또한 마찬가지다. 적의 통태를 살피듯 오감을 열어놓고 매 순간 삶을 주시해야 한다. 삶에 대한 무한긍정, 그것이야말로 연암식 글쓰기의 전략전술이다.

◦ 글쓰기와 운명 ◦

“내 글을 읽고 나서 단 한 사람이라도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참 좋겠어요.” 그렇다. 생각의 지도를 변경하고 삶의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글, 그것이 내가 꿈꾸는 글쓰기의 지평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참으로 놀랍게도 문체는 그 사람과 닮아 있다.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거꾸로, 문체를 바꾸고 싶으면 모름지기 표정을, 몸을, 삶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집단 속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약속과 시간을 지킨다, 눈과 귀를 몽땅 열어둔다. 즐겁게 공부한다, 배운 만큼 실천한다 등등. 그런 점에서 글쓰기 수련은 내게 관계를 구성하고 조직을 운용하는 지혜를 터득해가는 과저이기도 했다.

“생긴대로 쓰고, 쓰는 만큼 살아간다.” 호모 쿵푸스의 글쓰기 이념은 이 한 구절로 압축된다. 용맹정진!

Ⅲ.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학습하라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책과 몸 사이, 공부와 삶 사이의 경계가 문득 사라져버리는, 책도 없고, 책 아닌 것도 없는 그런 질주를. 공부를 한다는 건 그저 이 흐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러므로 호모 쿵푸스의 마지막 초식은? ‘인디언-되기’ 혹은 인디언과 함께 춤을!

1. 평생의 일대사

고전에서 말하는 공부는 ‘평생의 일대사’라는 사실이다. 주자와 양명의 일화가 보여주듯, 공부란 삶과 존재를 다 거는 것이었다. 공부란 결코 언어와 문자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 언어와 문자는 여러 과정 가운데 하나일 뿐, 물을 기르고 나무를 하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과정이 다 공부에 속했다. 거듭 말하지만, 책을 읽어야 우주적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면 또 한 번의 비약이 일어난다. 즉, 언어와 문자의 경계를 넘어 세상 모든 것이 ‘책’이 되는 경이를 체험하게 된다. 그야말로 문자와 몸과 세계가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앎은 행위에서 시작되고, 행위는 앎의 완성”(왕양명)이 되는 ‘지행합일’의 경지, 이것이 바로 고전의 학인들이 지향했던 공부의 진경이다. 경지에 도달하면, 생사는 말할 것도 없고 존재와 일상, 감정, 심지어 호흡까지도 다 공부의 자원이 된다. 불행히도 근대 지식은 이런 역동성과 충만감을 다 잃어버렸다. 앎이 일상과 분리되면서 외부와의 소통을 거절한 대가다. 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먼저 몸과 분리되었고, 그와 동시에 삶과 분리되었다. 그 결과 공부는 한없이 협소한 전문 영역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어떤 수준의 품성을 갖고 싶다거나, 삶의 어떤 의미를 깨우치겠다거나, 혹은 생사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하는 식의 발상은 전혀 없다. 적어도 공부라고 하면 존재 자체가 특별한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고전의 스승들은 우리로 하여금 공부에 대한 좁은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도록 종용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공부의 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 책, 그리고 존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책으로 변환하는 것. 책을 읽으면 삶이 보이고, 일상을 잘 관찰하노라면 책의 지혜가 확연해지는 식으로. 좀 유식한 문자를 써보면, ‘하학이상달’(아래로부터 배워 높은 데에 이른다), 곧 “물 뿌려 바닥을 청소하고 예절을 갖춰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미묘한 이치를 탐구하여 신묘한 경계로 들어서는 길이다” 요컨대, 인생에는 단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고전이 말하는 공부법은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학습하고, 지식․기술․경험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주는 순간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망 형성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과제”라는 ‘탈학교’의 전망과 아주 행복하게 조우한다.

2. “천지에 가득한 책의 정기”

고전의 시대엔 무엇보다 자연이 최고의 책이자 스승이었다. 자연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고전 공부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 된 건 그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만 있다면, 삼라만상이 다 신비로운 기호로 가득 찬 문장이라는 것을 절로 터득하게 된다.

자연을 통한 우주적 충동은 ‘지금, 여기’의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누추한 현실에 대한 무한긍정과 그대로 잇닿아 있다. 천지만물의 생동하는 기운이란 저 아득한 허공을 맴도는 초월적 개념이 아니라, 삶의 내재적 평면을 질주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부란 이 구체적 현장과도 매끄럽게 접속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진짜 공부법이다.

3. 몸과 일상, 문명의 거처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공부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연암 시대처럼 자연의 기호를 읽어낼 기회도, 능력도 거의 없다. 문명이 자연을 저 아득한 변경으로 몰아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이 문명이 곧 텍스트가 되는 셈이다. 어찌 보면, 몸과 일상이 문명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몸이 곧 삶이고, 일상이 곧 세계다. 일찍이 율곡 이이가 갈파했듯이, “지금 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이 일상생활 가운데 있음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게도 높고 먼 데 있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공부는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는 자포자기해버린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자폐증 앓는 사회 ◦

일 년에 자살하는 인구가 3만 명이나 되고, 그 중에는 10대들도 아주 많다고 한다. 이유는? 대부분 스트레스 혹은 의욕 상실. 그런 애매한 이유로 목숨을 끊다니. 그래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그런 애매함이야말로 자기로부터의 소외, 더 구체적으로는 욕망으로부터의 소외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외의 근본 이유는 욕망을 표출할 통로가 단절되었다는 데 있다. 욕망이란 외부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증식․변용되는 법인데, 그 통로가 막혀버리면 욕망의 흐름이 차단되어, 일종의 자폐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단지 소비의 자유만이 대폭 확장되었을 뿐, 사람들은 외부와, 아니 자기 자신과 교통하는 법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턴엣 악플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건 사실 고스란히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자기의 일상을 낭비할 수 있을까도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와 교신하고 싶은데,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은데, 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고립감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외부에 대한 적개심을 낳는다. 이보다 더 심각한 자폐 증세가 있을까? 이것은 내부로 향하면 자살 충동이 되고, 밖으로 향하면 원인도 목적도 없는 공격 심리가 된다.

삶을 망각하고 죽음을 향해 치달리게 하는 문명, 우리의 일상은 바로 거기에 터를 내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모든 것이 다 공부거리다. 사라고 싶으면 도서관엘 가라, 아니, 일상을 책으로 변환하라!

◦ 사랑, 이보다 훌륭한 텍스트는 없다! ◦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행복조차도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특히 현대인들은 행복이 뭔지 잘 모른다. 그저 이유도, 목적도 없이 돈!돈!돈!을곤 연애밖에 없는 듯하다. 사람들의 행복의 열쇠는 연애에 달려 있는 셈이고, 고로, 행복하기 위해선 연애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사람들은 날마다 시시때때로 연애를 학습한다. 드라마와 포르노를 통해. 혹은 광고나 뮤직비디오, 아니면 연애소설이나 만화를 통해. 문제는 그런 걸 학습의 과정이라 생각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가르쳐주는 게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배우는지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주입당하고 있다. ‘희노애락애오욕’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대중문화에서 주입당한 그대로 반복한다.

지금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주입하는 사랑의 공식구는 인정욕망과 죽음충동이다.

먼저, 인정욕망에 대하여. 공공연한 표현이야 말로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해준다고 서로 깊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정성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타인의 시선에 가두는 인정욕망에 불과하다. 그래서 허망하다. 이렇게 인정욕망에 길들여지면 당연히 외적 조건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된다. 남들이 보기 좋은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을 위한 것으로. 참, 희한한 이타주의(?)다 근데, 그럼 그게 사랑인가? 쇼 혹은 비즈니스지.

사랑의 진실을 꼭 불행을 통해서만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이런 걸 자꾸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랑은 불행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통념에 빠져들게 된다. 타나토스(죽음충동)로서의 에로스! 이것은 일종의 허무주의다. ‘지금, 여기’의 삶을 부정하고, 불행과 상처를 과장하면서 자학과 피학 사이를 오감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허무주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긍정이자 변이와 생성의 여정이라는 걸 망각하게 된다.

연애는 불과 100년도 안 된 개념이다. ‘love’의 일본식 번역어인 연애는 사랑 중에서도 특히 이성 간의 성적 끌림을 지창하면서 구한말 무렵 이 땅에 도래하였다.

그럼 그 전엔 연애를 안 했는가? 당연히 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연애의 문법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자의 인정 혹은 비극에 의해서만 그 순정성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존재 전체를 힘찬 ‘생성의 장’으로 이끄는 연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연애는 일단 행복의 조건이고, 또 그래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무조건 축복임에 분명하다. 내 몸이 전혀 다른 신체적 조성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몸의 기운이란 자연스레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는데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행복한 기운이 하나도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가짜거나 문제가 많다.

운명이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한다 해도 사랑 자체가 주는 행복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을 불행이라 여기는 건 그 상황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판단의 기준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적인 건 서로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향이다. 어떤 점에선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대보다 가족 문제가 더 악화된 감이 있다. 사랑의 지혜를 탐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역>>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부모 지식 간에도 적당한 상생상극이 필요하다. “나무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거나 떠버리는 것처럼, 자애롭기만 한 어머니는 결국 자식을 죽이게” 된다. “나무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가지를 쳐주듯이 아이에게도 적당한 극을 주야” 한다. “극을 받지 않은 사람의 생명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이성 간이건 가족 간이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

우리네 통념으론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공부는커녕 최소한의 이성도 잃어버리는 게 마땅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양명에 따르면, 공부는 바로 그런 순간에 해야 한다. 특히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번민에 휩싸일 때야말로 마음을 탐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마음의 탐구, 이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의 귀결처에 해당한다. 마음이야말로 가장 구체적이고 활동적인 범주에 속한다. 연애와 사랑이야말로 마음의 행로가 가장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장이 아닌가. 인생에서 그 장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걸 잘 활용한다면, 사서오경에 첨단과학까지도 훤하게 꿰뚫을 수 있다.

아무튼 사랑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헌신이니 배신이니, 복수나 애증 따위의 비루한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거기에는 “위반도 없고 별도의 처벌도 없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지혜 자체가 복이며, 어리석은 자에게는 어리석음 자체가 벌인 셈이다.” 그렇다! 사랑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거꾸로, 지혜를 갈고닦는 데 있어 사랑보다 더 훌륭한 텍스트는 없다!

◦ 질병과 죽음 - 최고의 스승 ◦

아토피나 암은 마음의 질병이라고 한다. 사실 몸과 마음의 경계를 선명하게 구획하기가 어렵다. 몸이??로 반영한다. 문제는 이 둘이 따로 놀기 시작할 때다. 몸이 마음을 버리고, 마음이 몸을 돌아보지 않게 될 때, 그때부터 병이 싹트기 시작한다. 외부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절망감이 공격과 적대를 낳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외부와 소통하는 데 있어 웃음 보다 더 강렬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웃음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현대인들은 그만큼 웃음에 인색하다. ‘거리두기’와 ‘자의식’에 길들여진 탓이다. 남을 웃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잘 웃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것, 그것은 늘 명랑한 웃음으로 표현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웃음에는 반드시 좋은 관계들이 전제된다.

그와 관련하여 선천성 근육장애를 앓는 미국 코미디언의 이야기는 실로 흥미진진했다. 그야말로 웃음이 몸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마침내 삶을 바꾸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 장면이었다. 누구도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람들은 병이 닥쳐오면 그때부터 고통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한다. 죽음이 삶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걸 그제서야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죽음을 사유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삶에 대한 성찰도 깊어진다. 특히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탐구해야 할 주제다. 절대 오해해선 안 될 것이 죽음은 결코 노년의 테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드라큘라가 아닌 한, 죽음에 대한 공부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철학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 운명애를 터득하라! ◦

운명의 열쇠는 바로 몸이 쥐고 있다. 역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주는 우주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무늬이다”.

사람이 막 태어났을 때 탯줄을 자르고 첫 숨을 들이킵니다. 그때 그 시점을 지배하던 우주의 기운이 백지에 프린트가 찍히듯 나에게 복제됩니다. 내가 태어난 ‘연월이시’는 내 ‘운명의 코드’가 되어 나만의 정체성이 됩니다. 물려받는 DNA에 사주라는 지울 수 없는 무늬가 새겨지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웃음), 역학의 틀에서는 그렇습니다. - 임성원

공동체 생활을 해보면 이게 정말 실감이 난다. 오조지 몸이 부딪히면서 일으키는 ‘어울림과 맞섬’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러한 신체적 직관력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합리성과 이성이라는 척도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초래했고, 그것은 다시 몸과 정신의 분리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운명을 저 멀리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것인 양 간주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의 삶은 늘 불확실성과 우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합리성과 우발성의 발안한 동거!

운명이 궁금하냐? 그럼 네 몸을 잘 관찰해 봐. 네 몸의 동선과 습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활동. 그게 바로 너의 운명이다.

최고로 좋은 운세란 운명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이름하여, 운명애. 운세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다가오는 지금, 여기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운세가 어디 있으랴.

◦ “네가 먹는 음식이 바로 너다!” ◦

함께 먹는 음식은 모두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에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준다는 것, 나아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합적 공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고기는 기본적으로 다른 음식과 공존하기가 어렵다.

“멕시코에선 이이들이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를 먹고, 미국에선 맥도날드에서 쓰레기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먹거리와 음식 문화에 대하여 본격적인 탐구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먹거리를 사유하기 시작하면, 의생활 및 주거공간까지 한눈에 다 조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마디로, 내 일상의 흐름이 한눈에 다 조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마디로, 내 일상의 흐름이 한눈에 파악된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나는 어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와 밥, 그 속에 내가 있다. 고로, “네가 먹는 음식이 바로 너다!”

4. 스승, 배움의 전령사

◦ 스승과 친구 ◦

일상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되면, 거기에는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가 사라진다. 누구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배움의 흐름에 들어가게 된다. 이탁오가 말한 바, “스승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의 의미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공부란 바로 잘 배우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위대한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건 어떤 구체적 이념이나 원리라기보다 배움의 열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교사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열정을 가르쳐라. 두려움 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 그것만 가르쳐라!

◦ 감염과 촉발 ◦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이것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이 취한 최고의 교육법이다.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함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서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 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지금 대학원의 지도교수와 지도학생의 관계가 딱 그렇다. 사제관계를 엮어주는 건 배움의 기쁨이 아니라 학점과 학위, 장학금, 취직 등의 이해관계가 전부다. 대학이 큰 배움터라면, 교수들은 다름 아닌 배움의 전령사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건 실로 힘든 일이리라. 이 척박한 현실에서 희망을 일구는 길은 단 하나, 교사가 먼저 공부에 미치는 것뿐이다. 따지고 보면 본래 교사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이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마땅하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공부를 접었으면서 자식들한테만 공부를 강조하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따지고 보면 부모 자식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도 공부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부모는 단지 배움으로써만 자식을 가르칠 수 있다. 부모 자식 혹은 친척들이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왜 상상조차 하지 않는가? 가장 싸게, 가장 밀도 있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 말이다.

힘과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산에 올라갈 수 있듯이, 배울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길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 천하를 그래 품안에 ◦

삶의 지혜와 문명의 비전은 천하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니, 천하를 가슴에 품고 나아갈 때라야 그런 지혜와 비전이 가능하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늘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하며, 건곤을 작게 여기고 우주를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여겨야 옳다.”(정약용) - 배움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학교는 공부를 독점함으로써 전 사회를 학교화하고 말았다. 자격증과 학벌, 국경 등 온갖 차별을 뼈와 살에 사무치게 만들어버리는 불모적 공부법! 하지만, 그런 공부를 전복해버리면 천하가 다 배움터가 된다. 순임금과 공자가 천하를 품에 안을 수 때문이다. 필요한 건 다만 배움의 열정뿐. 그러므로 스승이란 무엇인가? 가장 열심히 배우는 이다. 배움을 가르치는 이, 배움의 열정을 촉발하고 전염시키는 배움의 헤르메스, 그가 곧 스승이다.

◦ 덧달기1 : 공부의 달인들 ◦

내 주변에는 촉발과 감염의 능력을 가진 헤르메스들이 수두룩하다.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와 삶이 일치하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진정 공부의 달인들이다. 그들은 가르쳐주기보다 배우기에 바쁘다. 그래서 나는 그들 곁에서 그들의 열정을 잽싸게 훔치거나, 그들의 능력을 슬쩍 복제하곤 한다. 훔치기와 베끼기 - 이것도 괘 괜찮은 공부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부의 달인들 ‘속에’ 있어야 한다. ‘사이에서 존재하기’ - 이거야말로 아주 수준 높은 무공에 속한다. 이걸 터득하려면 특히 지구력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곰처럼 밀고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달인들 ‘사이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노자 : 왕성한 호기심, 성실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애정

김영만(가명) : 공부란 다름 아닌 ‘앎의 코뮌’에 접속하는 것임을 일찌감치 터득하고 있었던 거다.

◦ 덧달기2 : ‘공부와 밥과 우정’이 있는 풍경 ◦

노하우는 ‘밥심’ I 밥은 일용할 양식일 뿐 아니라, 함께 먹으면 신체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우리가 밥을 먹는 건 곡식에 담긴 ‘정, 기, 신’을 먹는 것이라 한다. 정, 기, 신은 바로 생명의 원동력이다. 그러니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그 순간 동일한 ‘생명의 장’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잘 먹지 못하면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한다.

‘사이’에서 존재하기 I 암송을 강조하는 건 지식과 몸이 하나라는 걸 깨우치기 위한 방편이다.

잘 먹고 잘 산다 하면 꼭 돈을 떠올리지만 그건 정말 난센스다. 모든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면서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뭣하는가. 그런 사람에겐 우울증 아니면 자폐증밖엔 길이 없다. 그걸 벗어나려면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어떤 음식이든 즐겁고 유쾌하게 먹을 수 있는 능력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희로애락은 그 자체로는 번뇌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거기에다 자신의 전도망상을 덧씌움으로써 스스로 번뇌를 쌓아간다. 그게 바로 두 번째 화살이다.

나는 하루 종일 밥과 공부사이, 사람과 사람사이. 불교와 뇌과학 사이를 그저 오갔을 뿐이다. - ‘사이에서 존재하기’. 공부란 이렇듯 나라는 주체가 어떤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배움과 가르침의 흐름 속을 유영하는 것이 아닐까.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공부 또한 그러하다. 공부하면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뭔가를 얻게 될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공부하는 순간, 공부와 공부 사이에 있다는 바로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5. 공부는 어떻게 혁명과 조우하는가?

◦ 고향은 없다! ◦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이다. 미숙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 자신의 사랑을 세계 속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 고정시킨다. 강인한 자는 그의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고자 한다. 완벽한 자는 그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린다.

12세가 독일 출신의 신학자 성 빅토르 위그가 쓴 <<공부>>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에게 공부란 ‘완벽한 독서’를 지칭한다. 그에 따르면 공부란 고향으로부터 한 발자국씩 작별을 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향이라는 표상 자체로부터 행되기 위해서다.

고향은 언제나 기억이라는 표상을 환기한다. 기억이란 고향의 상실과 아름답던 시절에 대한 동경 등과 연계되어 있는 탓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이들은 고향을 떠남과 동시에 ‘반-기억’을 수행하여야 한다. ‘반-기억’은 일종의 망각 능력이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몽땅 지워버리는 식의 망각은 아니다. 중요한 건 기억이냐 망각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과거의 기억을 삶의 새로운 배치 속으로 밀어 넣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건강한 자에게 기억은 ‘약속할 수 있는 능력’, 곧 ‘의지의 기억’이다. 자신이 의욕한 것을 잊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는 능력, 그 때문에 그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고병권)

요컨대,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 ‘가장 억압받고, 가장 소외도지 않은’ ◦

억압이 주체의 외부, 곧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소외는 존재와 삶 사이의 괴리로부터 야기되는 것이다. 즉, 삶에 대한 통찰이 수반된다면 지독한 억압을 당하는 처지라 하더라도 소외를 극복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시간을 견뎌내고 일상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단언컨대 혁명이 아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억압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억압에 저항하고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 그것이 곧 혁명이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가? 공부로부터 시작한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공부. 이 공부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힘이 생길 때 비로소 존재의 근원적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소외 되지 않은 자만이 구조적 억압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 소외오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고, 삶을 조직하고, 천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부귀하면 부귀한 대로 공부할 일이요, 빈천하다면 빈천한 대로 공부할 일이다”.

이 억압과 소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가 발 딛고 있는 곳을 배움터의 배치로 바꾸고, 지식의 향연을 구가하는 학습망을 조직할 것. 지식을 통해 자유를 누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요컨대, 스스로가 ‘호모 쿵푸스’임을 자각해야 하리라.

◦ 유목 혹은 마법의 변신술 ◦

일상의 억압적 배치를 전복하는 운동이 될 때 공부는 혁명과 조우한다. 고향이라는 장소성을 제거하고 기억이라는 중력 장치를 해??로 변이한다. 다시 말해 이 유목적 여정은 마법의 변신술을 수반한다. 더 놀라운 건 저 높은 경지에 오른 다음엔 다시 일상으로 회향한다는 사실이다 - ‘평상심이 도’다. 앎이란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아니, 일상의 흐름 속에서 표현되지 않는 앎이란 더 이상 앎이 아니다. 일상과 혁명과 유목 사이의 끝없는 순환! 결국 배움이란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것, 곧, ‘원초적 본능’에 다름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네 삶에서 매일 하고, 평생을 해도 변함없이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공부 말고 달리 무엇이 있는지를.

◦ 에필로그 ◦

공부해서 남 주자!

◦ 삶이냐? 소유냐? ◦

사람들은 재산을 누리기보다 섬기기 바쁘다. 뼛속 깊이, 자본의 노예인 것. “삶이냐, 소유냐?” 이 고전적 질문은 이제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삶의 주인이 될 것인가,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가?”

◦ 지식은 ‘사건의 흐름’이다! ◦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에 기초한다. 따라서 사적 소유가 곧 정체성을 구성한다. 내가 가진 것, 나의 소유, 나의 재산이 곧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삶과 소유의 혼연일체!

생물은 자기 완결적이고 자율적인 개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물과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상호 교환하는 공동체이다. 숨을 쉴 때 우리는 나머지 생물들과 연결된다. - 린 마굴리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즉, 생명은 기본적으로 연기적(연속)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유에의 집착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넘어 근본적으로 ‘반생명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지식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식인들은 지식을 사적으로 소유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식인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다시피, 대학은 이 사적 소유를 강화시켜줌으로써 ‘지식, 권력, 자본’의 삼위일체를 구현하는 주체들을 생산해낸다. 하지만 사적 소유 일반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소유 또한 지식의 종말로 이어진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학의 붕괴가 바로 그 생생한 증거다.

그러므로 새로운 공부법은 무엇보다 지식의 사적 전유를 해체함으로써 시작도어야 한다.

앏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에 떠도는 정보의 흐름, 혹은 우주적 신비 혹은 말의 길을 특정한 방식으로 ‘절단, 채취’한 것이다. 그것은 한 개별 주체의 두뇌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원천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몸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하나의 흐르는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지식 또한 사건의 흐름일 뿐이고 따라서 끊임없는 순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지식을 소유하는 순간 지식은 소멸한다.

◦ 책을 영원히 ‘소유’하는 비결 ◦

책은 정해진 주인이 없고, 선을 즐거??. - <<연암집>>

무엇이건 누군가 홀로 독점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삶과 삶의 흐름을 막는 질고기 되어버린다.

책에 담긴 지식이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듯이, 책 또한 누군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잠시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을 벗들에게 나누어주라. 그러면 벗들의 어짊이 증식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벗들로부터 그 어짊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니.” 소유를 포기함으로써 책의 지혜와 더욱 ‘찐하게’ 접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기막힌 역설!

◦ 미꾸라지 - 되기 ◦

자신의 본능대로 움직일 뿐인데, 다른 이들에게 절로 생명의 기운을 전파해주는 존재! 이것이 근대 이전, 지식인들이 추구한 이상형이다.

이탁오가 말하는 대인은 앞에 나온 도인에 비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친근하다. 하지만, 그 함의는 대체로 비슷하다. 충만한 능동성으로 약자들을 비호해주는 존재. 훈계하고 가르치는 계몽적 교사가 아니라, 직관과 열정으로 타인들에게 삶의 지혜와 힘을 나누어주는 존재.]

나이․학벌․국적․성별을 넘어 어디서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언제 어디서건 ‘앎의 코뮌’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즐기며 삶의 경이를 발견할 수 있는 존재. ‘미꾸라지-되기’ 혹은 도인의 경지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공부는 뭣 때문에 하냐고? 남들에게 퍼주기 위해서다! 얼마나 많이 퍼줄 수 있느냐가 나의 내공을 결정한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공부의 달인’들처럼 퍼준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퍼주게 된다. “다만 힘차고 유유히 장강과 대해를 헤엄쳤을 뿐인데, 그 기운으로 다 죽어가는 뱀장어들을 살려낸 미꾸라지”처럼 말이다. 고로, 공부해서 남 주자!

공부하자! 그것이 본능인 것처럼, 아니 본능으로 공부하자!

공부는 공부 자체로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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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몸으로 하는 것 모두가 공부이다. 내 지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도 공부이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아이들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2살 된 딸아이가 열심히 울어대고 열심히 먹는 것, 열심히 자는 것도 모두 공부이다. 우리는 학교 때문에 공부를 잃어버리고 살았다. 책 중에서도 교과서로만 하는 시험에 나오는 내용을 보는 것을 공부라고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만 공부했다. 이제야 “이 내용이 시험에 나오나요?”라고 물었던 학생들의 물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하라고 말했던 내가 어떤 ‘공부’를 하라고 했던 것인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학교에 퍼트린 거짓말의 충복 노릇을 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나이에 관계없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그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공부이다. 그렇게 해서 습득된 지식은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지식의 공유, 그리고 배움. 억압과 소외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찾아나가는 과정으로써의 공부를 해야한다.

나는 선생이다! 나는 먼저 배움의 길로 들어섰고 평생 배워야 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배울...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가자! 나는 호모 쿵푸스다! 아~~뵤~~~!

공부하거나 살아가거나!!!

학습법, 고전, 인문학, 고미숙, 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