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당에 담긴 종부의 삶 

(뚝심으로 피워 올린 꽃)을 읽고

  글과 사람이 같은 경우는 드물다. 소설이나 동화처럼 쓰는 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글 속에 작가의 좌우명이나 삶의 방향, 가치관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것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이라는 이름을 빌리고 보면 약간의 허구나, 삶을 조금은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스스로의 인성을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좀 더 극적인 재미를 더 하기 위해서 슬픔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수필에서도 종종 보게 된다. 붓 가는 대로 쓰되 작가 자신의 삶을 대변한다는 수필의 표현이 아름답다고 삶까지 그렇지는 않다. 문장력이 뛰어나다고 달변인 경우도 드물다. 꽤 꼿꼿한 선비정신을 표방한 수필가를 만난 적이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표리부동을 읽고 실망한 것도 글과 사람을 동일 선상에 둔 나의 판단 오류였다.

  회고록은 어떨까? <뚝심으로 피워 올린 꽃>은 이런 생각조차 갖지 않고 읽었다. 작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동화마저도 자신의 삶을 대변할 정도로 진솔한 글을 쓰는 사람이 류진교선생님이다. 하물며 회고록이야 삶이 그대로 녹아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무려 374쪽이다. 책의 분량으로 이럴 때 원고량은 얼마일지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들었던 고난의 세월이 드문드문 빠진 곳도 있었다. 물론 이미 냈던 콩트집과 두 권의 동화에 나눠서 실은 이야기들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누가 봐도 유쾌한 사람이다.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풍채도 넉넉한 사람이다. 작가 자신이 육중한 몸이라고 표현을 했을 정도로 보는 이를 숨차게 할 거구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거구에 걸맞은 덕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거구와 달리 옹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용렬함에 질리게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작가는 그렇지 않다.

  회고록에 나타난 것처럼 부부는 남에게 퍼주기를 즐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부부다. 평생을 짠순이처럼 살아서 이룬 꿈이 종가복원이었다. 일흔을 넘긴 지금 돌이켜 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종부로 들어가서 살았던 세월은 암울함이었다. 종부와 학식은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 역시 그랬다. 깡촌에서 하늘만 보고, 문중만 믿고 사는 종부에게 대학졸업이라는 관문은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작은 실수에도 '대학까지 나왔는데도...' 가 지청구 앞에 접두사처럼 붙었다. 도시에서만 자라서 종가의 법도를 알 리 없어 어리둥절하기만 해도 '대학까지 나왔는데도...' 를 들먹였다. 시어른들이 드러내놓고 구박을 한 건 아니지만 대학졸업이라는 말이 굴레처럼 스스로를 옥죄는 생활은 왠지 억울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빈한하기 그지없는 종가의 종부에게 시동생들은 짐이었다. 남편은 군미필자로 군대를 간 사이 혼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였다니 그 막막함이 읽는 이에게 종가탈출을 권하고 싶게 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봉제사접빈객을 으뜸의 도리로 여기는 종부 역할은 저버릴 수 없다는 사실은 암담하기도 했다. 한 해에 열댓번이 넘는 제사를 지내면서 학교로 출퇴근을 하는 일은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졸았던 얘기며, 받아쓰기 시간에 당치 않은 낱말을 불러줬던 일을 책에 적을 만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더구나 막내 아들의 비행으로 속을 썩었고, 아들이 마음을 잡은 후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또 속을 썩었던 작가의 세월은 안쓰러웠다. 다만 거룩한 모성애만은 참으로 빛났다. 그 모성애가 없었더라면 아들은 지금쯤 수렁에서 허덕일 것이었다. 그랬는데 아낌없는 후원으로 누구보다도 튼튼한 재력가로 거듭난 이야기는 쾌거 중의 쾌거였다.

  놀라운 일은 종가의 겉치레를 벗긴 사실이다. 유교사상의 가장 큰 폐해가 바로 봉제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아름다운 전통이긴 하다. 정도가 문제일 뿐이다. 조상이라고는 하나 누군지도 모르는 뿌리까지 일일이 찾아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여간한 부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오랜 전통과 관습인 데다 나쁜 것이 아니기에 선뜻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감히 시행을 서두르다가는 책임없는 대소가의 욕만 먹기 일쑤인 것이 봉제사관습이다.

  그렇지만 어느 대에선가 해야 할 일이다. 반드시 간소화되어야 할 일을 해낸 류진교 선생님. 그 과정에서 남편의 손찌검까지 있었지만, 묵묵히 참아내고 개혁의지를 실행하고야 말았다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음 먹은 시점에 당장 시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후대에게까지 짐으로 넘겨줄 일은 하고 싶지 않은 작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70평생을 겨우 374쪽에 다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난의 세월이라고 해서 눈물을 짜내도록 적을 일만도 아닐 것이다. 해학을 지닌 작가이기에 고난의 세월도 즐겁게 헤쳐나온 자전적 이야기. 더구나 종가의 의미마저 퇴색된 이 시대에 종부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낸 이야기가 편안하게 읽히는 것도 아마 지은이의 성품 덕분일 것이다.

  편하게, 단출하게만 살려고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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